영화 '호프' 포스터. /연합뉴스
평화로운 마을에 외계인이 침공하자 주민들이 숨겨둔 총을 꺼내 들었다면, 이들은 영웅일까 범죄자일까.
영화 '호프' 속 극단적인 재난 상황은 흥미로운 법적 질문을 던진다. 민간인의 중무장과 경찰의 연락 두절이라는 영화적 장치를 통해, 우리 법이 비상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짚어봤다.
*해당 콘텐츠에는 영화 '호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계인 쏜 건 무죄라도, 평소에 총 숨겨둔 건 '실형' 대상
영화 속 성기와 주민들은 유탄발사기 등 군용 자동화기로 무장하고 외계인에 맞선다. 이를 본 범석(배우 황정민)이 "국가에 신고한 총인가?"라고 묻는 장면은 현실적인 법적 쟁점을 정확히 찌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의 자동화기 소유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에 따라 총기 소지는 관할 관청의 허가가 필요한 사안이다.
대법원은 이를 "관할 관청에 재량권이 유보된 재량행위"라고 판단하지만, 군용 총기류는 결격사유가 없더라도 아예 민간인 허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무허가로 총포를 소지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행위는 모두 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다.
그렇다면 외계인이라는 끔찍한 위협 앞에서 총기를 사용한 것도 처벌받을까. 법적으로 무기의 '사용'과 '소지'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우리 형법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으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는다.
외계인의 공격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법 무기를 '쏜 행위' 자체는 피난 행위의 상당성이 인정되어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총을 '가진 행위'는 면책되지 않는다. 무기 소지는 계속범(범죄 행위가 일정 기간 계속 이어지는 범죄)에 해당한다. 외계인이 쳐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불법으로 무기를 보관하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총포화약법 위반 책임은 그대로 지게 된다.
경찰의 "지원 불가" 통보⋯합리적 판단과 직무유기의 경계선
영화 속 또 다른 답답함은 경찰의 대응이다. 외계인이 쳐들어온 아수라장 속에서 범석이 상부에 인력을 요청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산불 때문에 지원 불가"라는 황당한 회신뿐이다. 심지어 통신마저 두절된다.
외계인 침공에 경찰이 오지 않은 상황,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까. 핵심은 경찰의 우선순위 결정이 '합리적인 재량'이었는지에 달렸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관은 긴급 상황 발생 시 합리적으로 판단해 조치할 권한이 있다.
동시다발적 재난 속에서 경찰이 "산불 진압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해 인력을 배치한 것이 합리적인 재량 범위 내였다면, 국가배상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했다"고 입증되면 상황은 반전된다.
과거 법원은 실종 신고 사건에서 경찰이 매뉴얼을 명백히 위반하고 출동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경찰이 외계인 관련 신고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방치했다면 직무상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통신 단절 원인도 법적 책임의 중요한 변수다. 지진이나 산불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불가항력적 통신 두절이라면 국가의 귀책사유를 묻기 어렵다.
반면, 최근 이태원 참사 판결에서 법원이 지적했듯 112 신고 대응 시스템을 부실하게 운영했거나 경찰의 관리 소홀로 통신망이 먹통이 된 것이라면 직무상 과실이 인정되어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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