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국 각지의 고3 수험생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몰려들고 있다. 시대인재와 두각 등 대형 입시학원들이 여름방학 특강을 잇달아 개설하면서 지방 학생과 학부모들이 방학 기간 서울에 머물며 수업을 듣는 이른바 '교육 원정'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단순히 학원만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숙소를 구하고 생활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만큼 교육을 위해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안팎의 비용을 지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해 거주까지 옮겨야 하는 현실이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인프라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름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서울을 찾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가 인근 원룸과 오피스텔, 소형 빌라 등을 한 달 안팎으로 임대해 생활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를 '깔세'라고 부르는 단기임대 수요로 분류한다. 방학이 시작될 때마다 지방 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침대와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시설을 갖춘 풀옵션 매물의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비용 부담은 상당하다.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은마아파트 단지 내 등록된 단기임대 매물은 총 4건이다. 보증금은 130만원에서 5000만원, 월세는 130만~310만원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여기에 학원비와 식비, 교통비 등을 더하면 한 달 동안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비뿐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까지 함께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단기임대 플랫폼 삼삼엠투에 따르면 대치동과 가까운 언주역 인근 한 매물은 1주일 기준 66만원에 등록돼 있었다. 이를 3주간 이용할 경우 주거비만 약 198만원이 든다. 학원비와 식비, 교통비 등을 제외한 금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름방학 특강을 위해 서울에서 생활하는 비용은 일반적인 사교육비 수준을 넘어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교육을 위한 단기 체류 비용이 커지고 있지만 지방 학생과 학부모들은 입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담을 감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명 강사진과 입시 정보가 대치동에 집중돼 있다는 인식이 강한 만큼 경제적 부담보다 교육 기회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남 사천에서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박정주 씨(51·여)는 "딸이 예체능을 했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라 실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한 달 정도 서울에서 생활했다"며 "당시 원룸 월세만 200만원 정도였고 학원비와 보증금, 생활비 등을 모두 합치니 대략 10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도 집 근처 학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아이가 계속 서울에 올라가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해 결국 결심하게 됐다"며 "1000만원이라는 비용도 부담이었지만 집에 두고 온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어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이 한 달 동안 번갈아 돌봐주셨다"며 "부모님들께 생활비도 보내드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까지 계속 생기면서 실제 부담은 훨씬 크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부모 김세린 씨(46·여)는 "여름 특강은 학기 중 부족했던 부분을 정리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이라 수험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겨울 특강보다 기간은 짧지만 지방에서도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대치동을 찾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은 서울에서 숙소를 마련해 유명 강사의 수업과 입시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같은 방학에도 동일한 교육 환경을 누리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로 가야 기회있다"…교육 인프라 집중에 커지는 지역 간 사교육 격차
지방 학생들이 방학마다 서울을 찾는 배경에는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 인프라가 지목된다. 대형 입시학원과 유명 강사진은 물론 대학 입시 설명회, 모의고사, 입시 컨설팅 등 핵심 교육 콘텐츠가 대치동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지방 학생들은 방학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기 위해 지역을 이동하는 현상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온라인 강의가 보편화된 이후에도 대치동을 직접 찾는 학생들이 줄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보다 대면 질의응답과 학습관리, 현장 분위기, 입시 상담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경험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같은 강의를 온라인으로 수강하는 것과 대치동 현장에서 직접 듣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이러한 교육 수요는 학원가 주변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적인 직장이나 업무 목적이 아닌 교육을 위한 단기 거주 수요가 방학마다 반복되면서 대치동 일대에서는 계절성 단기임대 시장이 하나의 고정 수요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원과 가까운 원룸과 오피스텔, 소형 빌라를 중심으로 단기 계약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교육 콘텐츠가 새로운 주거 수요를 창출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민 하나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방학이 시작되면 한 달 안팎으로 머물 수 있는 단기임대 매물을 찾는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며 "여름방학에는 비교적 짧게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겨울방학에는 특강 기간이 길어지면서 장기 계약을 원하는 수요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격차가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결과로 진단했다. 과거에는 명문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학군 프리미엄이 최근에는 유명 학원과 교육 콘텐츠가 밀집한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교육 인프라 자체가 새로운 주거 수요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경제력에 따른 교육 기회 격차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은 고비용을 감수하며 더 많은 교육 기회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같은 방학에도 동일한 교육 환경을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 간 교육격차가 경제적 격차와 맞물려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정석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교육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 방학마다 교육 목적의 단기 거주 수요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는 학교를 중심으로 학군 프리미엄이 형성됐다면 최근에는 유명 학원과 교육 콘텐츠가 지역의 주거 수요까지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고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은 수도권에 교육 자원이 집중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지역 간 교육 인프라 격차를 줄이고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경제력에 따른 교육격차와 사교육 의존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