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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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맨 노블레스 2026-07-22 14:00:00 신고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Nothing. Not one single thing. Ashes.

아무것도요. 재만 남았죠.
TITLE: ROLLING THUNDER REVUE: A BOB DYLAN STORY BY MARTIN SCORSESE
DIRECTOR: MARTIN SCORSESE
YEAR: 2019
TIME: 142MIN
CHANNEL: NETFLIX



마틴 스코세이지와 프랜 레보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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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중 밥 딜런과 앨런 긴즈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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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갈 길 가는 거지! | 최정훈(밴드 잔나비 보컬)

밥 딜런과 마틴 스코세이지의 조합, 지나칠 수 없다.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노 디렉션 홈: 밥 딜런〉과 〈조지 해리슨〉을 애정하고, 처음엔 애플TV의 〈마틴 스코세이지: 거장의 초상〉을 추천할까 고민도 했다. 프랜 레보위츠의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은 최소 열 번은 봤을 거다. 그의 다큐라면 따져 묻지 말고 당장 본다. 〈롤링 선더 레뷰: 마틴 스코세이지의 밥 딜런 이야기〉는 딜런을 필두로 당대 최고 아티스트들이 모여 유랑단을 꾸리는 여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내가 동경하던 이들이 마치 어벤저스처럼 우르르 등장한다. 딜런과 잭 케루악의 추억을 나누는 앨런 긴즈버그, 풋풋하고 어리숙한 시절의 패티 스미스, 고집스러운 조니 미첼, 그리고 옛 연인 조안 바에즈까지. 심지어 샤론 스톤도 나온다. 그 빛나는 위인들 한가운데 우뚝 선 딜런을 조명하는 듯하지만, 카메라는 유랑단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여준다. 특히 무대 뒤에서 관계자들이 타임테이블을 다듬는 장면은 정말 신랄하다. “메디치 같은 가문은 많지 않아요. 자원이 필요한 창조적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해요”라는 짐 지아노풀로스(파라마운트 픽처스 CEO)의 인터뷰 뒤, 앨런 긴즈버그의 코너가 5분에서 2분으로 줄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네가 시를 읊으면 사람들이 떠날 거야”라는 한 스태프의 친절한 설명도 이어진다. 긴즈버그도 아쉬운 내색을 하지만, 수긍한다. 이 외에도 인기 없는 뮤지션의 이름이 가차 없이 지워지는 장면, 또 그 틈을 타 이간질하는 이들의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찾아간다. 중심에 선 딜런도 마찬가지다. 자료 영상에서도, 인터뷰에서도 그는 중재하거나 존재감을 뽐내려 하지 않는다. 소란한 현실 한가운데서 묵묵히 자신만의 이상을 실현하려 애쓴다. 그 모습은 음악인으로서 내가 좇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롤링 선더 레뷰가 남긴 유산이 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딜런은 이렇게 답한다. “아무것도요. 재만 남았죠”. 허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남김없이 불태운 자신과 동료들, 그 시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해가 뒤섞인 치열한 공동체 안에서 저마다 자리와 의미를 집요하게 찾아내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나와 내 동료의 지나온 시간이 포개졌다. “묵묵하게 내 갈 길 가는 거지!”

TITLE: SIGNÉ CHANEL, MARC JACOBS & LOUIS VUITTON, THE DAY BEFORE
DIRECTOR: LOÏC PRIGENT
YEAR: 2005, 2007, 2009
TIME: 27MIN × 5 EPISODES, 75MIN, 52MIN × 10 EPISODES
CHANNEL: ARTE


스틸 컷.


스틸 컷.


스틸 컷.


스틸 컷.


옷 때문에 누가 죽진 않으니까 | 이선영(프리랜스 패션 에디터)

“옷 때문에 누가 죽진 않으니까.” 내 상사 올리비에는 말했다. 그는 알라이아 헤드 쿼터의 PR 디렉터. 나는 귀를 의심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쇼 때문에 아틀리에의 모든 이가 등이 굽은 채 바느질에 매달렸고, PR팀은 초대 손님의 RSVP와 좌석 배치로 공황 상태였으며, 주인공인 무슈 알라이아 역시 한 달째 피팅과 수정을 반복하며 새벽까지 스튜디오의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런 우리 모두에게 패션은 세상의 전부였고, 패션을 위해 밤낮을 하얗게 불태웠다. 그런데 ‘옷 때문에 누가 죽진 않는다’니. 그럼 이게 다 뭐라는 거지. 로익 프리장의 다큐멘터리를 처음 접한 건 그로부터 2년 뒤였다. 익히 알고 있는 풍경이었다. 〈시네 샤넬〉의 아틀리에에서는 장인들이 마감과 씨름하고, 〈마크 제이콥스 & 루이 비통〉에서는 세계적 디자이너조차 불안과 압박 속에서 결정을 내린다. 〈더 데이 비포〉에 이르면 패션쇼 직전의 긴장감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모두가 곧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분주하지만, 감독은 그 소동을 심각하고 비장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 모습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사랑스럽기까지하다. 프리장의 다큐멘터리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는 패션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웃지도 않는다. 오직 패션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둘 뿐이다. 완벽하게 완성된 런웨이보다 쇼 직전의 혼란을, 결과물보다 과정 속 우연과 실수 같은 인간적 순간을 기록한다. 그의 다큐멘터리 속 패션은 신성한 창작물이기 이전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생동하는 풍경이다. 게다가 프리장의 내레이션은 극의 백미다. 짙게 묻어나는 프랑스 억양,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목소리는 패션계 특유의 우아한 권위를 가볍게 무너뜨린다. 덕분에 매끈하게 다듬어진 럭셔리 하우스의 세계는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거대한 인간 극장처럼 비쳐진다. 권위와 허세를 걷어낸 자리에는 창작의 기쁨과 유머, 에너지가 반짝인다. 돌이켜보면 나의 상사 올리비에와 프리장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패션은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유희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TITLE: SCORE: A FILM MUSIC DOCUMENTARY
DIRECTOR: MATT SCHRADER
YEAR: 2016
TIME: 93MIN
CHANNEL: GRAVITAS VENTURES (극장 개봉 후 VOD)

우리가 사는 세상의 꼴 | 배순탁(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영화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음악 중 ‘스코어(Score)’라 불리는 연주곡을 다룬 작품이다. 여러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한쪽에서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최고라고 외치면, 다른 쪽에서는 한스 짐머야말로 현대 스코어의 왕이라고 주장할 게 분명하다.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누군가 끼어들어 “닥쳐라, 존 윌리엄스야말로 왕이시다”라고 외치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다. 언급한 세 사람 모두 다큐멘터리에 등장한다. 영화음악 거장이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한다. <사이코>의 샤워 신처럼 음악이 영화의 감정과 서사를 어떻게 완성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즐거움이다. 내게 더 흥미로웠던 점은, 그 거대한 협연 속에서 발견한 ‘삶’이다. 오케스트라 녹음을 할 때 수많은 연주자가 같은 음을 연주하는 경우라도 각각의 소리는 미세한 수치로 조금씩 다르다. 연주자가 다르고, 악기 상태도 다르고, 연주를 하는 순간에 처한 환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얻는 게 있다. 코러스 효과다. 다르게 설명하면 ‘하나의 음이 두껍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만약 모든 음이 기계적 의미에서 똑같다면? 그 소리는 비인간적이어서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된다. 흔히 말하는 ‘불쾌한 골짜기’ 같은 거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꼴 아니던가. 음악을 세계로, 연주자를 우리로 치환하면 우리가 서로 다르고, 마땅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쉴 새 없이 흐르는 영화음악 명곡만으로도 감상할 가치는 충분하다.

TITLE: THE LAST DANCE
DIRECTOR: JASON HEHIR
YEAR: 2020
TIME: 48–50MIN × 10 EPISODES
CHANNEL: NETFLIX








My teammates came after me. They didn’t endure the things that I endured.

나를 따른 팀원들은 내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았다.

조던식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할까 | 손대범(농구 전문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농구 리그가 멈춘 시기에 공개된 농구 다큐멘터리다. 학창 시절 열광했던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를 다시 볼 수 있었기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또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 현시대 NBA에 익숙한 팬들과 소통할 새로운 화제도 얻을 수 있었다. ESPN은 불스 구단의 허락을 받아 한 시즌 동안 로커룸과 훈련 시설 등 현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SNS가 없던 시절, 선수들의 사적인 대화와 행동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NBA와 ESPN이 보유한 방대한 영상 아카이브도 인상적이다. NBA는 WWE와 함께 일찍부터 자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온 단체로, 넷플릭스 스포츠 다큐에서도 두 단체의 작품이 유독 돋보인다. 이 작품은 1997-1998 시즌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여섯 번째 우승 여정을 담고 있다. 구단과의 갈등으로 시즌 종료 후 결별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었기에, 조던과 불스의 마지막 여정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우승 과정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동료와 라이벌들의 구술을 통해 불스 왕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조던의 리더십과 승부욕이다. 누구보다 패배를 싫어했지만, 우승까지 7년을 기다려야 했던 조던은 다시는 그 감정을 겪지 않기 위해 자신과 팀을 혹독하게 단련했다. 그의 리더십은 ‘좋은 리더’라기보다 ‘폭군’에 가까웠다. “팀에 들어온 이상 제가 원하는 기준에 맞게 뛰어야 했어요. 그 이하는 용납하지 않았죠. 몰아붙일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했어요.” 기사와 책으로 접하던 이야기를 영상과 조던의 육성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결과적으로 조던은 “나를 따른 팀원들은 내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았다”라며 여섯 번의 우승으로 리더십을 증명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과연 조던식 리더십이 오늘날에도 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던 같은 상사와 함께하며 높은 성과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성과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더 행복하고 즐거운 조직 문화를 선택할 것인가. 실제로 라스트 댄스 공개 이후 기업 대상 리더십 강연에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과거와는 다른 반응을 체감했다.

TITLE: MEETING PEOPLE IS EASY
DIRECTOR: GRANT GEE
YEAR: 1998 TIME: 95MIN
CHANNEL: YOUTUBE








Meeting people is easy. But building a relationship is hard.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다.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찬란한 그림자 | 로라 스테푸(배가스 그룹 코리아 제너럴 매니저)

사람들 틈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라디오헤드의 음악 속에서만큼은 내가 속할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그 음악이 탄생한 레이블에서 일하고 있으니 소위 성공한 덕후다. <Meeting People is Easy>는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투어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영상이다. 멤버들이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은 전혀 없다. 마치 관객이 모든 장면과 백스테이지를 직접 목격하는 것처럼 촬영했다. 라디오헤드는 1997년 앨범 <OK Computer>로 인기의 정점에 올라 수많은 언론과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리드 보컬 톰 요크는 숨이 막힐 듯한 고독감에 휩싸였다. 투어가 진행될수록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소진되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을 거다. 심지어 커리어의 가장 성공적인 순간에도 말이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요크가 싱글 ‘No Surprises’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모습이다. 그는 물이 가득 찬 탱크에 머리를 담근 채 수중에서 힘든 기색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엄청난 노력과 수많은 테이크가 이어졌다. 그랜트 기 감독은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을 영국 TV 아침 방송(가볍고 재미있는 아침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영상과 교차 편집했다. 그 방송에는 MC들이 요크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음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즉 고독감과 우울감을 조롱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강렬하면서도 쓰린 장면이다. 또 라디오헤드의 사운드와 방향성이 다음 앨범 <KID A>에서 왜 그렇게 극적으로 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KID A>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걷어내고 훨씬 짙은 우울과 절망을 담았다. 후반부, 한 호주 기자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 이유가 더 선명해진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갇힌 예술가의 비극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건 일종의 수요와 공급 같은 거예요. 사람들이 내게 이런 걸 원하고, 이런 걸 듣고 싶어하니까 ‘좋아, 그럼 이런 걸 더 해야지. 다들 이걸 좋아하잖아’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게 수많은 뮤지션을 무너뜨리는 시작점이에요. 어느 순간 돈이 생기고,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죠. 이미 그들한테 잡아먹혔으니까요. 짊어지고 다녀야 할 짐이 어마어마하게 생기고,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사들인 것들, 얽매인 것들. 그 돈을 다 써버리면? 그게 바로 그들이 당신을 손에 넣는 방식이에요.” 업계를 떠나고 싶어도 경제적 책임과 쌓아온 커리어의 무게 때문에 결국 창작 욕구보다 주위의 기대를 우선시하게 된다는 뜻이다. 흑백의 ‘Creep’ 시퀀스와 함께 펼쳐지는 요크의 녹취는 다큐의 클라이맥스다. 산업과 대중은 계속 그들을 ‘Creep의 밴드’로 소비하려 한다는 아이러니가 응축돼 있다. 아티스트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들이 결코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레이블에서 일하는 내가 지녀야 할 신념이 아닐까.

TITLE: JIRO DREAMS OF SUSHI
DIRECTOR: DAVID GELB
YEAR: 2011 TIME: 81MIN
CHANNEL: NETFLIX




평범한 날들의 힘 | 임기학(프렌치 레스토랑 ‘레스뿌아’ 오너 셰프)

미식가라면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셰프 오노 지로(101세)와 그의 스시야 스키야바시 지로를 모를 리 없다. 지금 난 프렌치 퀴진을 하고 있지만, 재일교포인 할아버지도 외식업을 했고, 부모님 역시 스시집을 운영했기에 일본의 장인정신은 내게 꽤 익숙한 단어였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깊고 진한 울림을 남겼다. 대부분의 요리 다큐멘터리가 화려한 플레이팅과 극적인 성공 서사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은 반복되는 일상을 다룬다. 무언가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 반복과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한다. 과장된 연출은 없어도 81분간 지루할 틈이 없다. 지로는 인터뷰에서 좋은 재료나 화려한 기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복과 숙달 과정, 누군가는 지나칠 아주 작은 디테일에 대해 말한다. 최상의 참치를 고르는 눈빛, 손바닥으로 가늠하는 밥의 온도, 스시를 쥘 때 손끝에 실리는 미세한 압력 차이 같은 아주 작은 것들에 집착하며,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온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결국 요리의 격은 특별한 한 수가 아니라 축적된 시간과 감각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뒤에도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태도로 매일 같은 일을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아들과의 관계도 인상적이다. 많은 이가 성공한 장인의 모습에 집중하겠지만, 나는 그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지로는 지금도 아들을 구석에 앉혀 김을 굽게 한다. 기술은 시간을 통해 연마되고, 전통은 누군가 그것을 끈질기게 이어갈 때 비로소 전승된다. 내가 18년간 ‘레스쁘아’를 운영하며 소신으로 삼아온 말, ‘클래식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를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준 작품이다.

TITLE: EINSTEIN AND THE BOMB
DIRECTOR: ANTHONY PHILIPSON
YEAR: 2024 TIME: 76MIN
CHANNEL: NETFLIX(BBC STUDIOS 제작)




I am not only a pacifist but a militant pacifist.

저는 평화주의자일 뿐 아니라 전투적 평화주의자입니다.

선택의 무게 | 성지영(배우)

상징이 된 인물은 쉽게 평면화된다. 우리는 그들의 업적은 기억하지만 의심과 두려움, 후회 등 그들의 그림자는 종종 잊는다.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잊힌 부분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상대성이론을 만든 천재의 성공담이 아니다. 자신의 발견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한 인간의 초상에 가깝다. 평소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나 책을 자주 찾아보는데,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 그 시대를 통과했던 사람들의 감정선과 내면이 궁금해서다. 사람을 탐구하는 직업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오펜하이머〉 후반부,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나누는 짧은 대화가 기억에 오래 남은 것도 그래서였다. 그 장면에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책임과 윤리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가 응축돼 있었다. 두 사람은 긴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인슈타인이 궁금해졌다. “저는 평화주의자일 뿐 아니라 전투적 평화주의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은 호소에 가깝게 들렸다.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그의 발견은 원자폭탄 개발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핵무기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연구가 파멸의 연쇄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핵무기 통제와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냈고, 자신의 선택이 남긴 결과의 무게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갔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약 그가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미국의 핵 연구를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했을까. 우리는 흔히 선택을 개인의 의지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그 선택을 만든다. 나치의 확장을 목격하고 박해를 경험한 사람이 내린 결정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살아온 삶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이 남긴 결과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많은 사람이 의도치 않은 결과 앞에서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달랐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천재 과학자가 아닌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마주하려 했던 한 인간을 보았다.

에디터 이도연 사진 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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