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딸·10년 암 투병 아내 건사했던 가장"…일터에서 흉기에 찔려
피의자 '정당방위' 주장에 "일방적 살해…고인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욕"
(천안=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암투병하는 아내와 지적 장애를 앓는 딸 살리겠다고 몸이 부서지도록 일만 했던 사람이에요. 교회 나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에어컨을 설치하러 갔다가 세입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A(69)씨의 유가족과 동료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A씨의 아내(65)는 22일 연합뉴스에 "남편은 당초 알려진 것처럼 피의자와 말다툼이나 몸싸움을 벌이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피의자가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절규했다.
A씨는 지난 3일 오후 2시 40분께 충남 천안시의 한 다가구주택에 에어컨을 설치하러 갔다가 50대 세입자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범행을 목격한 A씨의 동료(74)에 따르면 B씨는 이들이 집에 찾아온 당시부터 흉기를 휘두르기까지 15∼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폭언과 욕설을 늘어놓았다.
도를 넘은 비방을 듣다 못 한 이들이 철수하려 하자 B씨는 대뜸 A씨를 향해 집 안 바닥에 묻은 것을 닦으라고 지시했고, A씨는 자신이 묻힌 것이 아니니 닦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A씨의 동료는 연합뉴스에 "B씨가 당일 에어컨 설치 문제로 집주인과도 갈등을 겪었다. 우리가 찾아가자마자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왔다"며 "원래부터 집 안은 지저분한 상태였고, 에어컨 포장도 뜯지 않았던 터라 바닥에 뭐가 묻을 만큼 작업을 한 것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바닥을 닦지 않고 짐을 챙겨나가려는 A씨의 행동에 격분한 B씨는 현관문 근처 주방으로 달려가 흉기를 빼내 들고 순식간에 A씨의 가슴과 복부 등을 세 차례 찔렀다.
흉기에 찔린 A씨는 이후 소지하고 있던 공구를 휘둘렀지만, B씨의 추가 공격을 저지하려는 방어 행동에 더 가까웠다는 게 동료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까지 4차례에 걸친 경찰·검찰 참고인 조사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견지하며 '살인의 동기가 됐을 만한 말다툼과 몸싸움이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러나 B씨는 수사기관에 A씨가 먼저 공격했다고 진술하며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현장 감식, 혈흔 행적 분석 등 관련 수사를 벌여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후 사건을 검찰로 넘긴 상태다.
A씨의 유가족들은 B씨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엄정히 수사해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A씨는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프리랜서 에어컨 설치 기사로 일하면서 4세 지능에 머무른 30대 중반 딸과, 10년째 대장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져 왔다.
신앙심이 두터웠던 그는 같이 살고 있는 딸과, 독립해 분가한 아들 모두 끔찍이 아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팍팍한 살림살이 탓에 밤낮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는 것을 거의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는 게 가족의 얘기다.
장애와 투병으로 당장 생계유지부터가 막막한 남은 가족은 극심한 불안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 유가족은 "살인해놓고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것은 평생을 신앙생활을 해온 고인에 대한 모욕이자 하루하루 지옥 속을 걷고 있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욕"이라며 "부디 가해자가 엄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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