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우리는 수많은 '당연한 말'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선택은 현명하고 어떤 삶은 뒤처졌으며 특정 집단은 사회 문제의 원인이라는 판단이 반복된다.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설명은 점차 생략되고 어느새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널리 퍼진 말이 곧 사실인 것은 아니다. 익숙한 명제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생겼는지, 무엇을 근거로 유통되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김민의 꼬치꼬치]는 사회에서 사실이나 정답처럼 받아들여지는 명제를 다시 들여다본다. 통계와 제도, 시장 구조와 실제 사례를 통해 그 말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서부터 과장되거나 왜곡되는지 따져본다. 무조건 반박하거나 냉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가 어떤 판단과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편집자 주] |
신문사 홈페이지의 경제면을 열면 코스피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기사가 쏟아진다. 출근길과 점심시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야기가 들리고 휴대전화에는 종목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한다. 가족과의 통화에서도 주가는 빠지지 않는 화제다.
2026년 대한민국에서 주식 이야기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투자 정보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사지 않으면 늦는다", "월급만 모아서는 가난해진다"라는 경고가 따라온다. 무엇을 기준으로 얼마나 뒤처진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지만 기준이 모호해 오히려 불안이 커진 모습이다.
오늘의 명제
최근 증시 활황을 계기로 "노동소득만으로는 자산을 축적할 수 없으며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라는 말이 확산하고 있다. 남들이 얻는 수익과 기회에서 자신만 제외될 수 있다는 포모(FOMO·소외 공포)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커졌다.
하지만 무엇을 어느 정도 모아야 자산을 축적했다고 할 수 있는지부터 명확하지 않다. '뒤처진다'라는 말도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인지, 집과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 기사에서는 자산 축적을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거주할 집과 은퇴 후 생활비를 준비할 경제적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를 기준으로 모든 사람이 지금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해야 경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지 따져봤다.
팍팍한 생활 먹고 자란 포모
투자 필수론이 확산한 데에는 팍팍한 경제 현실이 영향을 미쳤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가구 근로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증가했지만 실질 소비지출은 3.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투자 등에 쓸 수 있는 흑자액은 3.1% 감소했다. 전체 명목소득은 2.4% 늘었지만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쳤다.
최근 몇 년간 가계소득이 계속 감소한 건 아니다. 명목소득은 대체로 늘었지만 물가와 소비지출이 더 빠르게 오르면서 실질소득이나 가계 흑자액이 정체·감소하는 분기가 반복됐다. 생활비를 감당하면서 집과 노후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체감에는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시가 급등하자 투자는 경제적 불안을 벗어날 수 있는 통로처럼 주목받았다. 월급만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시장 상승에서 자신만 제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나 투자 필수론을 키운 것이다.
거래 늘어날수록 이득 보는 증권사
투자 필수론이 확산하는 과정에서는 누가 안정적으로 이익을 얻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투자자가 거래를 통해 수익을 낼지는 매수 가격과 매도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반면 주식 거래가 늘어나면 증권사는 수탁 수수료를 얻는다. 증권사에는 더 많은 고객을 시장에 참여시키고 거래를 확대할 경제적 유인이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 61곳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4조327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4428억원)보다 77.1%(1조8843억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작년 당기순이익(9조6455억원)의 44.9%에 달한다. 한 분기 만에 작년 연간 순이익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벌어들인 셈이다.
같은 기간 전체 수수료 수익 또한 6조6929억원으로 98.9% 늘었다. 특히 주식 거래대금이 증가하면서 수탁 수수료 역시 165.8% 급증한 4조3020억원을 기록했다. 펀드 판매와 투자일임 등 자산관리 부문 수수료도 89.4% 증가한 672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근거로 금융회사가 투자 불안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투자자의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시장 참여와 거래량 증가는 증권사의 수입으로 연결된다. 증시 활황기에 계좌 개설과 주식 거래를 유도하는 광고·이벤트가 집중되는 이유다.
팍팍한 생활 속에서 시작된 불안에 증시 급등과 투자 홍보, 성공 사례를 강조하는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오늘날 투자는 선택할 수 있는 수단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 자산 축적 효과는
그렇다면 투자는 실제 자산 축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2026년 1분기만 보면 상당수 투자자가 주식으로 수익을 냈다. 신한투자증권이 자사 고객 가운데 해당 기간 국내 주식을 매도한 개인투자자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80%가 수익을 실현했다. 수익 고객의 평균 수익액은 848만원이었고 나머지 20%의 평균 손실액은 496만원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를 전체 개인투자자의 성과로 확대하기는 어렵다. 신한투자증권 고객 가운데 해당 분기에 주식을 매도한 사람만 분석했기 때문이다. 2026년 1분기에 증시가 급등했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승장과 하락장을 함께 포함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내 대형 증권사의 2020~2022년 개인투자자 약 10만명을 분석한 결과 국내외 자산을 합친 전체 투자성과는 같은 기간 주식시장 수익률보다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거래비용을 반영하면 손실 투자자가 이익을 낸 투자자보다 많았고 시장 수익률을 의미 있게 웃돈 투자자는 소수에 그쳤다.
두 자료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증시가 크게 오른 짧은 기간에는 다수 투자자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시장 상황이 바뀌고 투자 기간이 길어지면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가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은 같지 않다.
출발선 따라 다른 수익
투자 성과는 시장 상황뿐 아니라 기존에 보유한 자산과 경험에 따라서도 달랐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서 투자자산 3억원 이상인 국내시장 투자자의 2020~2022년 누적 순수익률은 5.8%로 동기간 한국 주식시장 수익률을 웃돌았다. 국내시장 투자자 중 투자 경력이 3년 이하인 집단의 순수익률은 –28.8%였지만 10~15년 투자자는 –6.5%, 15년 이상 투자자는 –5.5%로 손실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투자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500만원 이하 투자자는 평균 2.7개 종목을 보유했지만 3억원 초과 투자자는 12.9개 종목을 보유했다. 고액 투자자가 국내외 주식과 ETF에 자산을 분산한 것과 달리 소액투자자는 국내 주식 투자의 비중이 높았다.
보고서는 투자자의 능력 때문에 자산이 늘어난 것인지, 자산이 많아 다양한 정보와 전략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인과관계를 단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같은 시장에 참가한다고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인된다.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사실은 가계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자산은 전년보다 8.0% 증가했지만 하위 20%는 6.1% 감소했다. 상위 20%의 평균 자산은 13억3651만원으로 하위 20% 1억5913만원의 8.4배였다.
가계가 한 달을 생활하고 남기는 돈의 격차는 더 직접적이다. 2026년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물가를 반영한 실질 흑자액은 월평균 –43만8000원으로 201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상위 20% 가구는 월평균 344만5000원을 남겼다. 두 집단의 실질 흑자액 차이는 388만4000원이었다.
투자 필수론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요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생활비를 쓰고도 매달 수백만원을 투자할 수 있고 누군가는 기존 소득만으로 소비지출을 감당하지 못한다. 남는 돈이 다르면 투자 기간과 손실 감내 능력,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결론 : 투자 필수론은 절반만 맞다
"노동소득만으로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우므로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라는 명제는 절반만 맞다.
물가와 소비지출이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해 월급만으로 현재 생활과 미래 준비를 병행하기 어려워졌다는 진단에는 근거가 있다. 장기간 적절하게 분산된 투자가 자산의 실질 가치를 지키고 불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사람이 지금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투자 성과는 시장 상황과 자산 규모, 경험, 매매 방식에 따라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일부 가구에는 손실을 감당할 돈은커녕 투자에 넣을 여유자금 자체가 없었다.
투자 필수론은 사람들에게 같은 출발선이 주어진 것처럼 말한다. 누군가 투자하지 않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금융 지식과 노력,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투자할 수 있는 금액과 기다릴 수 있는 시간부터 소득과 기존 자산에 의해 좌우된다.
주식은 경제적 안정을 만드는 한 가지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계좌를 개설한다고 생활의 불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 여부를 묻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은 '왜 아직 주식을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손실이 나도 생활을 유지할 돈이 있느냐'다.
투자하지 않으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투자할 돈이 남지 않는 삶이 사람들을 시장 밖에서부터 뒤처지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모(Fear Of Missing Out, FOMO)= 남들이 하는 경험·정보·기회에서 나만 제외될까 봐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뜻한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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