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반도체와 조선을 중심으로 수출과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산업계 체감 온도는 업종별로 엇갈렸다. 정유는 타이트한 제품 수급을 바탕으로 양호한 수익성을 이어가는 반면 석유화학과 2차전지는 공급과잉, 낮은 가동률, 누적 투자 부담이 겹치며 하반기 신용도 하방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로써 산업 전반 회복세보다 업종별 현금창출력과 사업재편 성과가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 석유화학·2차전지 ‘노란불’…메모리반도체·조선업 개선세
최근 신용평가업계 분석에 따르면 상반기 기업 신용등급과 등급전망 상향 건수를 하향 건수로 나눈 비율은 1.50배로 지난해(0.86배)보다 높아졌다. 6월 말 기준 등급 방향성도 긍정적 16개, 부정적·하향검토 13개로 전체적으로 향상됐다.
메모리반도체와 조선, 방위, 전력기기 등 수요와 수주가 뒷받침되는 업종에 개선이 집중됐다. 반면 석유화학과 2차전지, 철강, 건설은 산업 전망과 신용 전망 모두 부정 평가됐다. 수출 호조가 산업 전반 동반 회복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업종별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업종별 신용도 차이도 이를 잘 보여준다. 개선 업종은 인공지능(AI)과 전력 인프라, 방산처럼 수요가 확인된 분야에 몰렸다. 반대로 범용 제품 비중이 높거나 대규모 선행투자를 한 업종은 실적이 일시 반등하더라도 재무지표 개선이 받쳐주지 못했다. 같은 제조업 내에서도 수요 질과 투자 회수 속도가 경쟁력을 가른 셈이다.
가장 부담이 큰 분야는 석유화학이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해 2조원 적자에서 올해 흑자로 돌아섰다. 이익 개선은 원료 가격 상승기에 나타난 래깅 효과 영향이 컸다. 이후 유가와 나프타 가격이 내려가고 주요 제품가도 동반 약세를 보이며 하반기에는 역래깅 부담과 스프레드 축소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무 부담도 여전하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주요 석화업체 합산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20조2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22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2028년까지 에틸렌 약 2800만톤, 프로필렌 약 1800만톤 신규 설비가 예정돼 있어 수급 개선도 쉽지 않다. 비우호적 업황이 길게는 2029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 배경도 여기에 있다.
석유화학업계 하반기 관건은 제품 가격 반등보다 구조개편 실행력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대산과 여수 일부 사업재편은 실행 단계를 앞뒀지만 다른 지역 설비 조정은 이해관계 및 비용 분담 문제로 진척이 더디다. 설비 감축이 실제 공급 축소와 고정비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법인 통합이나 자산 매각만으로 재무구조를 회복하기 어렵다.
정유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올해 1분기 합산 6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효과가 반영된 가운데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 수급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석화 부문 부진과 달리 윤활유도 양호한 이익 기조를 유지했다.
다만 이를 완전 체질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유 4사 합산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42조2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45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고유가에 따른 운전자금 부담에다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와 배터리 투자, 계열 석유화학 사업재편 비용까지 겹친 영향이다.
향후 유가와 정제마진이 정상화되면 현재 이익이 차입금 축소와 투자 부담 완화로 연결될지가 업계 관건으로 꼽힌다. 정유 본업의 호조세가 비정유 부문 부담을 얼마나 상쇄할 수 있는지도 업체별 실적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 2차전지, 제품별 생산역량 강화 과제로…사업재편 시험대 올라
2차전지도 외형 성장보다 제품별 생산력 차별화에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완성차업체 전동화 속도 조절과 하이브리드 확대, 중국 업체 중심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확산으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주력 제품 수요는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낮은 가동률과 감가상각비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재업체들도 동박과 분리막, 전해액을 중심으로 실적 부진 및 차입금 부담을 안고 있다. 올해 상반기 주요 2차전지 업체들 신용등급 변동은 없었지만 산업과 신용 전망 모두 부정적으로 제시됐다.
2차전지업계 돌파구로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꼽힌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병목으로 북미 ESS 수요가 늘고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규제도 비중국 공급망에 기회를 넓히고 있다. 다만 수주 확대가 곧 수익성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 업체와의 원가 격차, 현지 생산비, 초기 가동률 부담 등을 넘어서야 한다. ESS가 기존 전기차 공장의 낮은 가동률 문제를 단기간에 해소하기도 어렵다.
결국 하반기 산업계 명암은 매출 증가보다 현금창출력과 재무 대응력에서 갈릴 전망이다.
정유는 양호한 마진의 재무 개선 연결이 과제로 꼽힌다. 석유화학업계는 구조개편 과정 손실과 자금 투입을 감당해야 한다. 2차전지 분야는 ESS와 LFP 전환이 실제 가동률과 현금흐름 개선으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다. 수출 호조에 가려진 산업별 ‘K자 양극화’ 시대는 각 업계에 사업재편 능력 입증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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