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단 작가] 아직 사회 초년생일 때 디올 매장에 진열된 가방을 본 일을 잊을 수 없다. 이불 작가와 콜라보한 디올의 한정판 가방으로, 올해 상반기 화제였던 드라마 ‘레이디 두아’에서 캐릭터의 특징을 드러내는 강력한 오브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가방을 처음 본 당시, 럭셔리에 무지한 상태로 명품 판매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인을 만나러 강남의 한 매장으로 향하던 중 걸음을 멈추고 넋을 뺐다. 깨진 유리처럼 표현된 플렉시 미러가 이목을 집중시켰고, 손자국 하나, 작은 흠집도 금세 티가 날 것 같았다. 조심해야하는 물건은 언제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 세계에 150점 뿐인 희소성 역시 매력적이었다. 한 달 월급보다 비싼 가방을 탐했다는 배덕감 때문인지 아직도 그 날이 선명하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았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작가의 세계관에 깊게 빠져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값 나가는게 꼭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가격의 당위가 의심되는 물건을 바랬던 적이 없던 시절, 그 무구했던 1막이 이불의 레이디백과 함께 끝났다. 더불어 브랜드가 가진 헤리티지와 개인의 작업 세계의 상호작용이 이렇게 인상적이라니. 작가라는 사람들은 분야와 소재, 관념의 한계를 깨고 전에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구나 싶었다. 예술이 전시장 밖을 나와도 예술로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게 됐다. 17년도에 만들어진 가방이 26년도 드라마 속에서 재조명된 점 역시 흥미롭다.
작년 리움에서 진행된 개인전이 아직 좋은 관람으로 남아있는데, 현재 진행 중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소장전에서도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불 작가는 여성의 신체와 기계의 결합, 소거를 이용해 기술과 인간의 불완전한 관계성, 인간이 꿈꾸는 완벽함에 대한 허구와 욕망을 표현한다. 아름다운 폐허를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들 역시 그녀의 대표작으로, 볼 때마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이불 작가의 설치작품 앞에서 이른바 ‘작품 멍’ 때리는 시간이 특히 좋았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선 그녀의 작품들은 현대 사회에 보편적인 질문을 건넨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은 과연 축복인지, 인간의 본질과 아름다움에 대해, 불완전과 완전이 대립된 개념인지에 대한 이야기들.
이불의 작품을 보며 영원과 삶, 죽음을 떠올리는 관객 역시 적지 않다. 이런 질문들은 문학이나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예술은, 이불의 작품들은 그 어떤 매체보다 독자적인 경고를 보내면서 결론을 도출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듦으로 겸허히 질문을 이어간다. 이불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이유는 감상과 함께 나름의 답을 고심하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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