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경쟁과 혁신을 통해 부를 만들지만 같은 힘으로 독점과 양극화도 키운다. 정부는 시장이 외면한 공공재와 안전망을 공급하지만 잘못 개입하면 비효율과 특혜를 낳는다. 임명현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문위원이 쓴 '나쁜 시장 좋은 정부'는 이 충돌을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는 논쟁에서 떼어내 자원을 누가, 어디에, 어떤 원칙으로 배분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시장의 이중성
21일 임명현 국회 재경위 전문위원은 저서 '나쁜 시장 좋은 정부'에서 시장을 공익보다 이윤을 좇아 움직이는 배분체계로 규정했다. 자본과 노동은 수익이 기대되는 곳으로 이동하고, 경쟁과 분업, 혁신은 생산성을 높여 새로운 부를 만든다. 시장을 선악의 잣대로만 재단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부를 만드는 같은 원리가 정보 비대칭과 외부효과, 지대추구와 독점도 낳는다는 점이다. 경쟁이 불공정해지고 독점이 굳어지면 시장은 가치 창조보다 가치 착취에 유리한 구조로 기울 수 있다. 시장을 방치할 경우 탐욕과 양극화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 임명현 재경위 전문위원의 진단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가 가격과 생산, 자원배분을 전면 통제하면 경제의 활력과 혁신이 떨어질 수 있다. 임 전문위원이 제시한 해법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아니다. 시장의 힘은 살리되 불공정과 약탈을 억제하고 시장이 채우지 못한 공적 수요를 책임지는 정부다.
▲좋은 적자·나쁜 흑자 기준
'나쁜 시장 좋은 정부'는 시장과 정부를 서로 떨어진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정부는 세금과 국채로 시장에서 재원을 조달한 뒤 복지와 공공투자, 교육과 인프라를 통해 다시 민간에 배분한다. 시장과 정부가 하나의 경제생태계 안에서 자원을 주고받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 관점에서는 정부 지출의 많고 적음만으로 정책을 평가하기 어렵다. 재정이 생산성과 안전망을 높이는 데 쓰이면 경제 기반을 넓힐 수 있다. 반대로 흑자를 냈더라도 필요한 투자를 미루고 경제·사회 기반을 약화했다면 좋은 재정으로 보기 어렵다. 책이 ‘좋은 적자’와 ‘나쁜 흑자’를 구분하는 이유다.
임명현 전문위원은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중산층 약화, 돌봄 부족, 양극화를 각각의 문제가 아닌 자원배분 구조와 연결된 과제로 본다. 기존 불균형 성장정책을 다시 쓰고 내수 확대와 균형발전, 중산층 복원, 소득보장과 돌봄체계 개편, 인구 분산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의 결론에는 이를 위한 ‘유능한 정부의 자원배분 규칙’ 30가지가 담겼다.
임 전문위원은 “시장은 본래 이기적 배분자이기에 착하고 좋은 시장을 기대하기보다 그 힘과 위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며 “나쁜 시장에 고삐를 매고 공동번영으로 이끌어야 할 착하고 유능한 정부의 조건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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