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한국전쟁 전후 국가폭력 관련 자료인 ‘6·25 처형자 명단’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하위)에 20년 만에 제공한 가운데,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이를 계기로 국정원이 보관 중인 국가폭력 관련 기록 전반을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삼청교육대 피해자 등 유족 단체를 포함한 20여개 시민단체가 소속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은 21일 국정원 앞에서 ‘국가정보원 국가폭력 자료 전부 공개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국가폭력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9일 진화위는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정보가 포함된 ‘6·25 처형자 명단’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확보했다. 해당 자료는 1978년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전국 경찰서와 각급 기관에서 생산한 자료를 취합·정리한 것으로, 총 2055쪽 분량에 처형자 2만6330명의 정보가 담겨 있다.
진화위는 이 명단이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피해자 신원 확인과 사건 경위 규명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1·2기 진화위도 자료 확보를 추진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바 있는데, 3기 위원회는 출범 이후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가정보원과 협의를 이어온 끝에 자료를 받아냈다.
한국전쟁 전후에는 보도연맹 사건과 예비검속, 부역 혐의자 처형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그러나 상당수 피해자는 희생 경위와 신원이 여전히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위원회는 이번 명단 확보가 미확인 희생자의 신원 확인과 사건 진상 규명은 물론 유족들의 명예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국정원이 자료를 일부만 제공하는 등 여전히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조사 비협조와 방해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진화위가 국가폭력 진상규명 조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국가폭력 자료 전부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 단체는 “과거 국가범죄 행위가 국정원의 비협조로 제대로 진상규명 되지 않으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국민을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국정원의 행위는 지속되고 있다”며 “조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화위 등의 국가 조사기구에 대한 국정원의 적극적인 저항과 조사에 대한 의도적 방해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1975년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경우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기획·실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핵심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1989년 이내창 의문사 사건 역시 안기부 직원이 사건 당시 동행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관련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1991년 박창수 의문사 사건도 국가안전기획부가 ‘대기업노조연대회의’ 탈퇴 공작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사건의 실체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1970~1980년대 재일교포 간첩 조작 사건과 학생운동 등 민주화운동 탄압 사건 역시 국가정보원의 자료 비협조로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들 단체는 “국정원은 과거 반인권, 반민주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출범한 3기 진화위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국가폭력 자료를 성실히 공개하고 진상규명 조사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이행기 정의 실현에 책임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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