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최근 두 달간 경찰에 접수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가 800건을 넘어서면서 청소년 도박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온라인 도박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가운데, 도박이 불법 사채와 또래 간 금전거래, 가족 계좌 무단 인출 등 각종 범죄로까지 번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예방 체계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월 18일 시행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제도’를 통해 현재까지 총 80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본인이 직접 신고한 사례는 629건, 보호자가 신고한 사례는 177건으로 집계됐다.
신고 건수는 시행 초기보다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제도 시행 첫 달 294건이던 신고는 두 번째 달 512건으로 늘며 한 달 만에 74% 증가했다. 경찰은 언론 보도와 학교전담경찰관(SPO)의 예방교육 등을 통해 제도가 알려지면서 자진신고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 도박이 도박 자금 마련이나 빚을 갚기 위한 불법 사채 이용, 가족 계좌 무단 인출은 물론 사기와 절도 등 각종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진신고 제도를 통해 접수된 사례를 살펴보면 경기남부에서는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0여명의 사채업자로부터 500만원을 빌린 18세 청소년이 자진신고했다. 이 청소년은 연 200%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와 불법 추심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북 문경에서는 14세 청소년이 부친의 계좌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3000만원을 몰래 인출해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자진신고했으며 대구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용돈 마련을 위해 도박을 시작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5월 발간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소년의 사이버도박 경험 실태 및 시사점’에서 2024년 기준 사이버도박 경험이 있는 만 13~19세 청소년 505명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본인이 사채를 쓴 경험을 가진 청소년은 12.7%였다. 청소년들이 친구에게 사이버 도박자금을 빌린 경험은 38.6%, 도박자금을 빌려준 경험은 26.5%로 집계됐다.
청소년이 도박 빚으로 인해 범죄에 연루되는 이유는 ‘도박 빚을 감당 못 해서 돈을 구하기 위함’이 49.9%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모름’(48.3%), ‘도와줄 가족(17.8%), 교사(15.4%), 친구(13.7%)가 없어서’ 순이었다.
이 같은 청소년 도박 증가의 배경에는 스마트폰의 보편화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성인 카지노나 오프라인 도박장을 직접 찾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불법 도박 사이트에 손쉽게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듯 가볍게 시작한 도박은 일상으로 스며들고 상당수 청소년은 예상보다 빠르게 도박 중독에 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유튜브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주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일부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의 검증되지 않은 성공담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콘텐츠가 청소년들의 경계심을 낮추고 도박을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도박 유입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소년 도박의 주요 유입 경로로 SNS가 지목되면서 청소년의 SNS 이용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청소년의 유튜브 등 SNS 과몰입을 막기 위해 연령별 단계적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도박 광고와 불법 콘텐츠가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다만 규제 대상과 적용 범위, 제재 수위 등을 두고는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가 학생의 도박 정황을 인지하더라도 즉각적인 개입이 쉽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도박을 하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더라도 학생 동의 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하거나 조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또 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실효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교육당국은 학교 현장의 대응 강화를 위해 ‘학교 도박문제 대응 매뉴얼’을 보급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2회 이상 도박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매뉴얼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이버 상담과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연계, 전문 상담기관 안내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로는 이미 도박에 빠진 학생들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치료로 연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청소년 도박을 단순한 비행으로 접근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청소년의 사이버도박 경험 실태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임지연 선임연구위원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상호작용 온라인 기분 교육플랫폼 등을 활용한 혁신적인 교육방식의 접근으로 흥미를 유발해 청소년 주도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방식이 필요하다”며 “또한 청소년 스스로 자료를 선택해 학습할 수 있도록 개인별 맞춤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년들이 상시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접근성과 법률 상담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인식 및 제도개선과 같은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지원이 요구된다”며 “지속가능한 정보 공유와 24시간 상시로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온라인 사이버도박 예방 교육플랫폼의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초·중·고 전 학년에 걸친 맞춤형 예방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라대 경찰행정학과 이정덕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청소년 도박은 단순 비행이 아니라 2차 범죄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청소년 사이버도박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초등학교부터 연령별 맞춤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더 나아가 학교 예방교육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체계적·반복적 교육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경찰청과 교육부가 협력해 학교 현장에서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자료를 개발·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속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이버도박은 음란물 사이트 등 다른 불법 사이트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도박 사이트만이 아니라 연계 플랫폼까지 포함한 폭넓은 단속이 이뤄져야 하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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