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18년 야인 김민석과 ‘퐁당퐁당’ 정청래, 누가 ‘왕’이 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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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뉴스 피처링] 18년 야인 김민석과 ‘퐁당퐁당’ 정청래, 누가 ‘왕’이 될 상인가

투데이신문 2026-07-21 15:39: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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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오늘의 주요 이슈를 사실-맥락-관점의 세 축으로 풀어드립니다. 음악에서 ‘피처링’은 협업과 도움을 뜻하고, 저널리즘의 Feature는 단순 속보가 아닌 깊이 있는 맥락과 스토리를 다룹니다. 〈뉴스 피처링〉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담아 뉴스의 본질과 함의를 알기 쉽게 풀어내 여러분의 뉴스 생활을 입체적으로 피처링 해드리겠습니다.

김민석(왼쪽)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전북 전주시 더불어민주당전북특별자치도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제3차 상무위원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김민석(왼쪽)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전북 전주시 더불어민주당전북특별자치도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제3차 상무위원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더불어민주당 차기 당권을 둘러싼 대결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김민석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근육’을 키워왔는지를 따라가 보면 지금의 경쟁 구도가 훨씬 또렷이 보입니다.

한 사람은 18년의 긴 야인 생활 동안 ‘거친 세상 공부’와 ‘국가 경영 공부’에 침잠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당선과 낙선, 컷오프가 반복된 ‘퐁당퐁당’ 정치 인생을 견디며 당원과 지지층 곁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김민석은 ‘생각의 근육’을, 정청래는 ‘조직의 근육’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김민석은 한국 정치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1985년 제 28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1996년 15대 총선 최연소 국회의원, 2002년 서울시장 새천년민주당 후보 등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서울시장 선거 패배와 정몽준 캠프 합류,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의 탈당은 그의 정치 인생을 바닥 아래까지 끌고 내려갔습니다. 그는 “김민석은 끝났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바닥도 아니라 지하실까지 떨어졌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원외 최고위원 등을 지내며 절치부심 정치 복귀의 꿈을 키웠지만 진보진영의 배신 아이콘이라는 낙인을 쉽사리 떼내지 못했습니다. 2011년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며 다시 재기의 몸부림을 쳤지만 여의도 입성의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그 후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다시 금배지를 따기까지 그는 무려 18년 동안을 링 바깥에서 떠돌았습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18년 야인 생활 동안 국민과 하늘이 가장 무섭고 감사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는 18년동안 자신을 버티게 해준 동인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버틴 게 아니라 버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국가 경영 공부를 계속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당시 김민석 국무총리와 밝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당시 김민석 국무총리와 밝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그가 보낸 18년은 국가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여의도 밖 현실과 정치의 이상 사이에 얼마나 깊은 괴리가 있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지를 오랜 시간 곱씹게 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김민석은 지지층과 끊임없이 부대끼는 것보다 내공을 닦는 데 주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 18년은 김민석에게 두 가지 근육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국가 경영과 정책 설계에 특화된 ‘생각의 근육’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그는 “민생 위기를 극복하고 위대한 대한민국 시대를 여는 참모장이 되겠다”고 밝히며 스스로를 ‘국가 운영형 2인자’로 규정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잇단 실패와 그에 따른 자괴감, 생활고를 겪은 끝에 체득한 ‘상식과 겸손의 근육’입니다. 그는 야인 생활을 통해 체득한 국민 선택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치인입니다. “국민과 하늘을 판단의 기둥으로 삼겠다” “국민의 무서운 질책과 동시에 다시 살려준 것 역시 국민이었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빈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김민석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생각을 다지며 18년 야인 생활을 빠져나왔습니다.

반면 정청래의 정치 출발선과 이력은 김민석과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그는 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김대중이라는 거성에 의해 낙점된 엘리트도 아니었습니다. 정청래는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농성을 주도해 실형을 선고받은 운동권 출신으로, 2004년 17대 총선 때 노무현 탄핵 역풍 속에서 처음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서울 주요 대학 출신이 주축인 민주당 86그룹 안에서는 비주류였습니다. 정청래는 스스로를 민주당 적통이라고 주장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접점도 그다지 없는, 어찌 보면 ‘들풀’과 같은 정치인입니다. 많은 386 운동권 정치인들이 김대중의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던 것과 달리 정청래는 ‘검정고시’를 통해 혼자 힘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며 당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며 당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정청래의 정치 역정은 김민석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17대 당선, 18대 낙선, 19대 당선, 20대 공천 탈락이라는 ‘퐁당퐁당’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정청래 스스로 자신의 정치 인생을 ‘퐁당퐁당’에 비유하곤 합니다. 현재 민주당에서 정청래처럼 낙선과 컷오프를 오가며 4선까지 기록한 정치인은 없습니다. 그만큼 정청래는 자생력과 인내심이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특히 2016년 20대 총선 컷오프는 정청래 정치의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김종인 비대위가 ‘정무적 판단’이라는 한마디로 공천 탈락 이유를 설명했을 때 지지자들 사이에선 무소속 출마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정청래는 끝내 탈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더컷유세단’을 꾸려 공천 탈락자들과 함께 선거 지원에 나섰습니다.

정치인에게 이런 ‘희생’과 참을성은 큰 장점이자 미덕입니다. 대부분은 지도부에 분노를 표출하고 평생 감정의 앙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는 과거를 깨끗이 잊고 4년을 바닥에서 기며 다시 금배지를 재탈환하는 끈질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퐁당퐁당의 시간 동안 정청래가 집중한 것은 오로지 당원과 핵심 지지층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김민석이 ‘책’을 가까이 했다면 정청래는 ‘사람’을 가까이했던 것입니다.

그는 TV와 신문 등의 레거시 미디어보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주무대로 삼았고 ‘노사모’와 온라인 시민정치운동을 통해 체화한 인터넷 정치 감각으로 팬덤 정치의 대표주자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습니다. 이것이 그가 지난해 당대표까지 오르게 된 결정적 원동력이었습니다.

그가 당권 주권의 대명사가 된 것은 ‘당원 동지’들과 날마다 몸을 부대끼며 쌓은 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를 지지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밤늦게라도 ‘콜’이 오면 달려가거나 전화통을 붙들었고 팬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정청래의 ‘팬클럽 사랑’은 웬만한 중진 의원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정성과 열정의 산물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정청래는 당대표가 된 뒤에도 그런 당원, 팬클럽 중심 정치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원 주권을 앞세워 1인 1표제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2016년 이후 쌓인 당원 동원 경험과 온라인 조직력을 그만의 정치 자산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당원 중심 정치는 어정쩡한 중도층보다 화끈하게 밀어주는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더욱 진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13일 이재명(왼쪽)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탄핵소추단장인 정청래(가운데) 의원, 김민석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3월 13일 이재명(왼쪽)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3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탄핵소추단장인 정청래(가운데) 의원, 김민석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런 점에서 정청래가 퐁당퐁당 시절을 거치면서 키운 것은 조직의 근육이라고 봅니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거리와 방송, 온라인을 오가며 지지층을 묶어 세우는 ‘동원형 조직의 근육’, 핵심 지지층 정서를 누구보다 빨리 읽고 그것을 과감한 정치 언어로 대신 발화해주는 ‘선명성의 근육’인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대선 출마 의사가 없다고 밝히며 자신의 정치력이 국가 경영보다 당원과 팬덤 정치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드러냅니다(물론 정치인으로서는 국가 경영이 최종 목표이겠지요?).

김민석-정청래 두 사람이 보낸 서로 다른 시간은 그들만의 장점과 한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김민석의 강점은 국가 경영형, 조정과 설계형 리더십입니다. 야인 시절 국정 비전과 정책 연구에 천착한 경험, 민주연구원과 포용국가비전위원회 등을 거친 경력은 그에게 여의도-청와대-관료조직 사이의 원활한 관계 설정을 이해하는 정무적 감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다만 이 엘리트형·참모형 리더십은 당원·팬덤과의 직접 접촉, 거리 정치·커뮤니티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정청래의 강점은 동원과 선명성, 팬덤 조직력입니다. 강성 지지층 입장에선 자신들의 분노와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대변해주는 정청래를 밀어주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동원형·인파이터형 리더십은 필연적인 당내 갈등 유발과 중도 확장의 한계를 동시에 노정하는 양날의 칼입니다. 국정 운영과 위기 관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팬덤 정치의 장점이 그대로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김민석-정청래 중 누구의 정치 근육이 이재명 정부 2기 집권여당 대표직에 더 잘 어울릴까요. 당원·지지층의 감정선을 잘 이해하고 팬덤 정치의 에너지를 최대한 살려내는 리더십을 원한다면 퐁당퐁당 속에서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한 정청래의 조직 근육은 매력적인 자산입니다. 반대로 국정 운영과 상식적 판단, 당정 조율과 계파 통합을 우선순위에 올린다면 18년 야인 동안 생각과 상식의 근육을 다진 김민석의 침잠형 근육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집권여당 민주당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근육이 대한민국과 민주당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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