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에코프로 지분을 각각 5% 이상 확보하면서 국내 핵심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업계에선 글로벌 장기자금 유입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점에서 경영 참여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블랙록은 KAI와 에코프로 지분을 각각 5% 이상 확보하며 두 회사의 주요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KAI와 에코프로는 블랙록의 지분율이 각각 5.02%, 5.01%로 집계됐다. 두 회사 모두 기존 보유 지분은 4.95%였으며, 블랙록이 추가 매수를 통해 5%를 넘기면서 자본시장법상 대량보유 보고 의무가 발생했다.
최근 1년간 국내 상장사에 대한 투자 비중을 꾸준히 확대해 온 블랙록이 방산과 2차전지 대표 기업까지 투자 대상을 넓히면서 그 배경과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랙록은 공시에서 지분 보유 목적을 모두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이는 경영권 행사나 이사회 참여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 투자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장기 자산 운용이나 지수 추종 전략에 따른 투자 성격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21일 기준 전일 종가를 적용하면 블랙록이 보유한 KAI 지분 가치는 약 7000억원, 에코프로 지분은 약 5000억원으로 총 투자 규모는 1조2000억원 수준이다.
이번 투자는 블랙록의 국내 투자 확대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블랙록은 지난달 말 기준 최근 1년 동안 국내 상장사 가운데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을 12곳 늘렸다. 이에 따라 블랙록이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총 19곳으로 증가했다.
기존에는 금융주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KB금융(7.41%), 하나금융지주(7.22%), 우리금융지주(7.18%), 신한지주(6.12%)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에 모두 6~7%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보기술(IT)과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5.14%), SK하이닉스(5.11%), 네이버(6.11%), LG디스플레이(7.16%), 삼성전기(5.01%) 등에 투자하고 있으며, 소재·배터리 분야에서는 LG화학(5.01%)에 이어 이번에 에코프로까지 투자 대상을 확대했다.
여기에 국내 대표 방산기업인 KAI까지 주요 투자 대상에 포함되면서 금융, 반도체, 플랫폼, 소재, 방산 등 국내 핵심 산업 전반으로 투자 포트폴리오가 더욱 다변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선 블랙록의 이번 투자 배경으로 산업별 성장성과 글로벌 자금의 투자 전략 변화를 함께 거론하고 있다.
KAI는 최근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 확대와 국내 방산 수출 증가의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FA-50 경공격기와 KF-21 전투기 개발, 위성 및 우주사업 확대 등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코프로 역시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양극재를 중심으로 한 2차전지 핵심 소재 기업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단기 업황 변동성은 존재하지만 장기적인 전동화 흐름은 유효하다는 점이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을 유지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단기 실적보다 산업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 글로벌 공급망 내 역할 등을 중심으로 장기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번 지분 확대가 경영권 변화나 적극적인 주주활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자본시장법상 5% 이상 보유자는 보유 목적에 따라 공시 내용이 달라진다. 블랙록은 이번에도 '단순 투자'를 선택했다. 이는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주주제안이나 이사 선임, 정관 변경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투자 또는 경영참여와는 성격이 다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와 인덱스펀드를 운용하고 있어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기업의 지분이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국내 대표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확대되거나 관련 ETF 자금이 유입될 경우 보유 비중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다만 블랙록은 글로벌 시장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는 기관투자가로도 알려져 있다. 경영 참여를 직접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나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Engagement)를 통해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사례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선 블랙록의 투자 확대를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 판단을 넘어 한국 증시에 대한 글로벌 장기 자금의 관심을 보여주는 신호 중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는 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주주환원 확대, 방산·인공지능(AI)·반도체 등 전략 산업의 경쟁력 부각으로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금리와 환율, 지정학적 변수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해외 자금 유입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중장기 투자 확대로 이어질지는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블랙록의 5% 이상 보유 공시는 단순 투자 목적이어서 당장 경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국내 핵심 산업 대표 기업들에 대한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한국 시장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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