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주인은 당원?" 민주당·국민의힘으로 번진 당원 주권 논쟁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표현이 공개적으로 쓰인 것은 2022년 전당대회를 앞둔 시기였다. 당시 이재명 의원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다"라고 말하며 당원 중심 정당을 강조했다. 정청래 전 대표 역시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1인 1표제 도입과 당원 주권 시대 개막을 당 개혁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당직은 당원에게, 공직은 국민에게'라는 구호와 함께 당원 중심 정당, 당원 주권의 기치를 정당 정체성으로 삼아 왔다.
국민의힘에서는 6·3 지방선거 패배 이후 장동혁 대표가 사퇴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고 강조하며, 당 대표 거취와 같은 핵심 사안은 당원 투표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점식 원내대표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 우리는 국민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맞섰다.
여야 양당은 당원 권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닮은꼴 행보를 보였다. 민주당에서는 당 대표 선출, 원내대표 및 국회의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원 뜻을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됐다. 1인 1표제를 도입해 대의원과 당원 표의 가치를 맞추고 권리당원 비중을 높였다. 국민의힘 역시 당 대표 선출 등 주요 경선에서 일반 국민 여론조사(민심) 반영 비율을 크게 줄이거나 배제하고 책임당원 중심의 1인 1표제를 강화했다.
"정당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여야 전체로 번지면서, 정치권에서 '당원 주권 시대'나 '당원이 공천하는 시대'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워졌다. 이러한 흐름은 정당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낳는다. 정당의 주인은 정말 당원인가. 특히 집권당이나 국회 다수당에도 이 명제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
보완수사권·장동혁 거취... 강성 지지층에 끌린 정당, 민심과 충돌
정당의 주인을 논하려면 먼저 헌법을 봐야 한다. 헌법 제8조는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조직"으로 규정한다. 정당의 존재 이유가 당원의 이해 대변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정치적 의사를 모으고 조정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정당은 매년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고, 선거 때마다 방송·토론·연설 기회와 세제 혜택을 제공받는다. 이 모든 것은 국민 세금과 법 제도로 부여받는 특권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정당은 당비로 운영되는 사적 모임이 아니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인 정치 조직이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 점을 겨냥해 "당원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매년 받는 국고보조금을 거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당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당이라면, 정당의 최종 책임은 당원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구호가 헌법이 말하는 국민 주권과 어긋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당원 주권과 1인 1표제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과거에는 소수 계파 수장이 당권과 공천을 좌우했다. 당원이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르러도 정작 주요 결정은 일부 지도부나 소수 계파에 의해 좌우되곤 했다. 이런 방식은 줄 세우기, 밀실 공천, 계파 정치의 기반이었다.
당원 모두가 동등한 표로 지도부와 공직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은 이런 관행을 겨냥한 변화였다.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당원 참여가 늘었다. "한 사람에게 한 표(One Person, One Vote)" 원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원 주권이 절대적인 해법은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은 전체 국민 여론(민심)과 정당 지지층의 여론(당심)이 얼마나 크게 벌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찰 보완수사권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은 '경찰 견제 및 부실수사 방지를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61%로 '기소·수사 분리 원칙에 따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23%)을 압도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유지 46%, 폐지 39%로 오차범위 내였으며,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매우 진보적' 성향 층에서는 폐지 의견이 48%(유지 43%)로 전체 국민 여론과 반대 양상을 보였다.
국민의힘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갤럽이 6월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지방선거 이후 장동혁 대표의 거취에 관해 물은 결과, 전체 국민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48%로 '대표직을 유지해야 한다'(28%)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유지 응답이 49%(사퇴 39%)로 우세했고, 핵심 지지층인 '매우 보수적' 성향 층에서는 대표직 유지 의견이 64%(사퇴 25%)에 달해 전체 국민 여론과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처럼 당원과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당은 당 노선을 밀어붙이는 동력은 얻을지 몰라도, 정작 전체 유권자의 의사와는 멀어지게 된다. 정치학의 중위투표자 이론이 강조하듯, 정당이 강성 당심만을 기준 삼아 국정이나 정책을 밀어붙이면 중도층과 무당층은 이탈하고 반대 진영이 결집한다. 당내에서는 '안방 챔피언'이 될지 몰라도, 결국 본선인 실제 선거에서는 패배할 수 있다.
당원만 바라보는 정당... 대의제 민주주의 근간 흔들 수도
집권당이나 국회 다수당의 경우 폐쇄적인 당원 주권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충돌할 수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당원이나 특정 지지층만의 대표가 아니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전체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집권당이 국정 운영에서 민심보다 강성 당원과 팬덤 여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 대의제와 어긋난다. 입법과 정책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타협과 조정보다 열성 지지층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쏠릴 수 있다. 중도층과 다른 진영 유권자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갈등은 깊어지고,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집권당이 당원 주권을 절대 기준으로 삼으면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헌법 1조와 "국민 전체의 대표"라는 대의제 원칙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정당은 당원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존재의 정당성은 국민 전체에게서 나온다. 정당 설립을 허용하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정당의 주인이 당비를 내는 사람들로만 한정될 수 없는 이유다. 좋은 정당은 열성 당원의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그 목소리에 갇히지 않는다.
팬덤 정치 넘어 숙의 민주주의로... 당심-민심 잇는 온라인 숙의 플랫폼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단순 찬반 표결 위주의 당원 주권주의가 가져온 팬덤 정치와 대의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숙의 민주주의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감정적인 1인 1표 방식에서 벗어나, 충분한 정보 제공과 이성적인 토론 절차를 거치는 질적 참여로 체질을 개선해야만 당심과 민심의 건강한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정당 자체적인 온라인 숙의 플랫폼 구축이 거론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상설 디지털 공론장을 열고, 표결에 앞서 의제별 전문가 분석 자료와 찬반 양측의 대립 안건을 균형 있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중립적인 토론 진행자를 배치해 극단적 팬덤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건전한 토론을 유도할 수 있다.
특정 강성 지지층이 플랫폼을 독점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다. 당원 중 성별·연령·지역 비율을 고려해 무작위로 추출한 대표 당원 참여단을 구성하고, 이들이 온라인 숙의 플랫폼에서 주요 정책과 당론을 집중적으로 심의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전체 당원과 일반 유권자의 평균적·상식적 시각에 가까운 정제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반 숙의 모델은 대만의 vTaiwan, 스페인의 데시딤(Decidim), 미국의 스탠퍼드대 온라인 숙의 플랫폼 등 해외 정치권과 공공 영역에서 다각도로 모색되어 왔다. 이들 사례는 단순 찬반 표결을 넘어 ▲객관적 정보 사전 제공, ▲의무적 토론·수정 기간 설정, ▲대표성 있는 참여단 구성을 통해 감정적 세 대결을 차단하고 이성적 타협점을 도출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당원 주권이라는 명분이 단순 다수결의 덫이나 극단적 지지층의 전유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한국 정치 역시 무작위 추출 기반의 대표 당원 참여단과 정보 공유형 온라인 숙의 플랫폼을 결합한 민주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이 힘을 얻고 있다.
당심과 민심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한국 정치의 향배를 가른다. 민주당에서 시작된 정당 주인 논쟁이 국민의힘까지 번진 지금, "당의 주인은 당원인가 국민인가"라는 질문은 여야 정치권이 답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폴리뉴스 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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