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와 맥주를 비롯해 국내 음주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유독 고량주(백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만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산 술과 수입 증류주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올해 들어서는 그 흐름이 한층 더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주류. / 연합뉴스
국세청 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22년 326만862㎘, 2023년 323만7036㎘, 2024년 315만1371㎘, 2025년 298만7726㎘로 4년 연속 감소했다. 2025년 출고량은 전년 대비 5.2% 줄어든 수치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337만7000㎘)과 비교하면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수준이다. 주력 주종인 맥주와 소주의 감소세가 특히 뚜렷했다.
2025년 맥주 출고량은 151만8931㎘로 전년 대비 7.2% 줄었고, 희석식 소주는 79만2912㎘로 2.8% 감소했다. 앞서 2024년에도 맥주는 163만7210㎘(전년비 -2.96%), 소주는 81만5712㎘(전년비 -3.38%)로 이미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하이트진로의 2025년 매출은 2조4986억원으로 전년 대비 3.9%, 영업이익은 1721억원으로 17.3% 줄었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지난해 주류 부문 매출이 7527억원으로 7.5%, 영업이익은 282억원으로 18.8% 감소했다. 두 회사 모두 4분기에는 영업손실을 냈고, 하이트진로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까지 실시했다.
업계는 이 같은 소주·맥주 소비 감소의 밑바탕에 2030세대의 음주 문화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술을 아예 끊는 게 아니라, 마시더라도 취향에 맞춰 적게 마시자는 이른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흐름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음을 피하고 자신의 건강과 취향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확산되면서, 술자리를 많이 갖고 취할 때까지 마시던 회식·단체 음주 문화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량주는 나 홀로 성장… "마라탕에 고량주 한 잔" 트렌드
반면 고량주를 포함한 일반증류주 시장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인다. 2024년 국내 일반증류주 출고량은 전년 대비 113.2%, 출고 금액은 98.0% 급증하며 두 배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소비자 조사에서도 향후 음용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주종은 맥주(31.4%)가 1위였지만, 수입 증류주(14.6%)와 리큐르주(13.6%)가 소주(12.9%)를 앞질렀다.
주종별 출고량 변화율 / 위키트리
고량주 인기 배경에는 무엇보다 중식 프랜차이즈의 급성장이 있다. 중국 훠궈 브랜드 하이디라오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1177억원으로, 2020년 140억원에서 5년 만에 약 8.4배 급증하며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마라탕·훠궈 전문점이 전국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기름지고 매콤한 중식 요리와 궁합이 좋은 고량주를 함께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 배경은 국내 소비자의 취향 변화다. 과거 바이주는 50도가 넘는 독한 제품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도수를 낮춘 저도수 바이주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은 2030세대다. GS리테일 관계자는 기존 40대 이상이 중심이었던 사케·바이주 시장에 2030세대가 대거 유입되면서, 사케·바이주 구매자 중 젊은 층 비중이 4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고량주만이 아니다… 사케도 역대 최고
소주·맥주가 빠진 자리를 채우는 술은 고량주뿐만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산 사케 수입액은 2784만달러로 전년 대비 21.2% 증가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2021년(1416만달러)과 비교하면 불과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수치다. 최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 열린 '2026 서울사케페스티벌'에는 아침부터 100m 넘게 줄이 늘어설 정도로 20~30대 관람객의 관심이 뜨거웠다. 한 20대 관람객은 "소주는 맛이 비슷하지만 사케는 같은 브랜드에서도 향과 산미가 다르다"며 "브랜드별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2026년 상반기, 위스키가 와인 제치고 매출 2위로
이런 흐름은 올해 들어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5일 롯데마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롯데마트 주류 매출 순위에서 양주가 와인을 제치고 처음으로 2위에 올랐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①국내맥주 ②와인 ③양주 ④소주 ⑤수입맥주 ⑥전통주' 순으로 유지되던 순위가 바뀐 것이다. 올해 상반기 양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는데, 블렌디드 위스키(13.6%)와 일본 위스키(12.6%)가 성장을 견인했다. 한 병으로 여러 번 즐길 수 있어 실질적인 만족도가 높은 위스키 특성이, 고물가 장기화 속 가치 소비 트렌드 및 홈술·혼술 문화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와인 매출은 1.1% 감소했다.
지난 2025 서울바앤스피릿쇼에서 관람객들이 다양한 주류를 시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성비를 앞세운 수입맥주와 소주도 동반 성장했다. 수입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2%, 소주 매출은 2.2% 늘었는데, 특히 낮은 도수와 달콤한 맛을 내세운 과실소주 매출이 41.7% 급증하며 전체 소주 매출을 견인했다. 논알코올 주류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전체 주류 매출 중 논알코올 비중은 2021년 6%에서 올해 상반기 13%로 확대됐고, 매출 신장률은 2024년 23.7%, 2025년 11.4%에 이어 올해 상반기 25.4%로 다시 가속했다. 논알코올 맥주 역시 24.5% 늘며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갔다.
'취향 소비'로 세분화되는 국내 주류 시장
결국 2026년 현재 국내 주류 시장은 단순히 "소주·맥주는 죽고 증류주만 뜬다"는 구도를 넘어서고 있다. 고량주·사케·위스키 같은 개성 있는 수입 증류·발효주가 성장하는 동시에, 국산 소주도 과실 소주 라인업으로, 맥주도 논알코올로 각자의 활로를 찾는 등 시장 전체가 세분화되는 양상이다. 과음보다는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익숙한 술 한 가지가 시장을 지배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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