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북한은 제9차 당대회(2월), 최고인민회의(3월), 전원회의(6월)를 연이어 개최하였다. 당대회에서는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위해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2026~2030)을 확정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천명한 '2035년 사회주의 강국 건설 실현'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재확인하였다.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헌법에 두 국가론을 명시하고 대남·대외 강경노선을 공식화하는 한편, 정부의 재정 여력이 제한적임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최근 대대적인 국책사업이 추진되면서 자금 소요가 많음을 보여준다.
전원회의에서는 핵무력 강화와 핵보유국 지위의 행사를 천명하고,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재확인하면서 남부국경 요새화 완결을 지시하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경제 안정을 공고화하고 점진적·질적 발전을 도모하며, 군사 분야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 후 핵 개발 일변도의 정책을 바꾸어 핵-재래식 무기의 병진노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변화를 한마디로 '자신감'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외관계가 안정되고 경제가 바닥을 벗어났다는 판단, 그리고 핵 능력이 불가역적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인식이 그 기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이러한 자신감을 갖게 된 배경과 그것이 대내외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 대한 군수협력의 효과
북한이 갖는 자신감의 출발점은 러시아와의 군수협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병력을 파병하였으며, 그 대가로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을 담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였다. 매년 러시아와 북한의 정상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유엔 대북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드론 중심의 현대전을 경험하고 자국 무기의 실전 성능을 검증하는 기회도 확보하였다. 북한이 안보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군수협력의 효과는 민간 경제로도 확산되고 있다. 2025년 4분기부터 러시아의 대북 지원이 민간 영역으로 파급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이 개선되는 듯한 조짐이 관찰되고 있다. 통상 40% 수준이던 소비재 수입 비중이 2026년 1~4월에는 47.2%로 상승하였다. 대두유, 가금류, 조제식품, 귤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품목의 수입이 증가하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닌 소비 수준 자체의 변화로 해석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친선의 상징인 두만강 하구에 자동차 교량의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러시아는 원산-갈마 지구의 병원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양측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이라고 보았지만, 전쟁 종식 후 노동자 협력을 중심으로 한 재건 동맹으로 변화, 동해 석유 탐사와 희토류 개발을 매개로 한 자원개발협력 관계로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북한과 러시아는 지속가능한 군사적·경제적 협력관계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애쓰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
중국과의 관계도 북한에게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5년 중순까지 중국은 북한과의 외교·정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유엔 대북제재를 준수한다는 전략적 거리 두기를 하였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북·러 관계가 급속히 강화되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른바 'China Passing'(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급기야 2025년 9월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은 대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으며, 2026년 6월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그 흐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2026년 7월에는 박태성 내각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의 정부 대표단이 중국 텐진시의 자원순환집단유한공사 녹색저탄소 순환경제 시범기지를 방문했다. 북한의 지방 공업 공장들이 만성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료 부족 문제를 재자원화 기술과 설비로 풀어보려는 조치로 이해된다. 중국에게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새로운 협력 분야이고, 북한에게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 협력 분야이다.
중국 중앙정부는 여전히 유엔 대북제재 준수를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제재를 유연하게 해석하며 북한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묵인하는 양상이 관찰된다. 팀내 북한 연구자는 주목할 만한 변화로 2026년 3월부터 텅스텐이 북한의 대중 수출 1위 품목으로 부상하였다는 점을 꼽았다.
텅스텐은 중국이 전략광물로 지정하여 국영기업만이 수출입할 수 있는 품목이다. 중국 내 생산이 충분함에도 북한으로부터 수입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중국 국영기업과 북한 간의 공식적 경제협력이 비공식적으로 재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해가고 있다.
주민의 구매력 상승과 국가 통제 강화
대내 경제 여건도 북한 당국에 일정한 자신감을 부여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2022년 바닥을 찍은 이후 2025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이어왔는데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2026년에도 이 흐름이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회복세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구매력을 점진적으로 높이려고 2023년 10월부터 기업소 임금을 20~40배 인상하기 시작하였다. 이 조치는 2002년 이후 20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은 국영기업 노동자의 급여가 2,300원 수준에 머물던 데 반해 시장의 곡물 가격은 5,500원/kg(임금의 2.4배)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을 산업 부문 근로자의 임금을 2,300원에서 5만원으로, 특정 부문과 지역에서는 10만원으로 인상했다. 그 영향으로 2024년 2분기부터 곡물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2025년에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데일리엔케이>(DailyNK)에 따르면 2023년 5,595원/kg 수준이던 곡물 가격이 2024년 6,273원/kg으로 전년 대비 12.1% 상승하였으며, 2025년 15,361원/kg(임금의 0.3배)으로 144.9% 상승하였다. 임금 인상 조치는 물가 상승과 변동성 확대라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였지만, 주민의 생활을 어느 정도 개선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경제 전반에 대한 국가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상품유통을 사회주의 발전과 함께 축소되어야 할 영역으로 간주하였으나, 2021년 상업법 개정을 통해 '상품유통'을 사회적 소유의 대상으로 재정의하였다. 이후 양곡과 외환 유통에 대한 국가 독점을 단계적으로 완성하고, 민간 시장(장마당)을 억제하면서 국영상점을 통한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북한 주민의 국영상점 이용을 독려하려고 수입품도 가급적 국영상점을 통해 유통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한편에서는 지하경제의 양성화, 즉 비공식 경제의 공식화로 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수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 통한 경기 부양
대규모 국책사업도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농촌과 도시의 살림집 건설, 그리고 지방발전 20×10정책이 대표적이다. 살림집을 건설한다면서 평양과 전국 각지에 수십만 호의 집을 새롭게 건설하였다.
또, 지방발전 20×10정책은 매년 20개의 경공업 공장을 10년에 걸쳐 건설하겠다는 구상으로 2025년 하반기부터는 약국·봉사소(소매점)·문화시설을 동일 단지에 종합 개발하는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과거 북한 당국이 경제정책을 발표하고도 부분적으로만 실행하거나 수년 내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달리 이들 사업은 비교적 일관성 있게 추진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이처럼 대외 여건의 개선과 내부 경제의 완만한 회복이 맞물리는 상황에서 북한은 2019년 하노이 회담 실패의 경험처럼 외부의 지원이나 협상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안보와 경제를 보장한다는 자신감을 굳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신감은 대남·대미 정책에도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북한은 한국을 대화의 상대가 아닌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식화하고 있다. 협상과 지원에 기대어 경제적 번영을 모색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는 남한을 자신감에 기반한 정책 추진의 장애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헌법에 명시된 두 국가론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러한 전략적 판단이 제도화된 결과로 읽힌다. 미국과도 비핵화 협상보다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방식으로 협상의 의제를 바꾸고 있다.
폐쇄성 강화로 장기 발전할지 의문
그렇다면 북한의 자신감은 지속 가능한가. 몇 가지 점에서 유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규모의 문제다. 북한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그 규모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캄보디아나 베트남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다.
북한이 UN 대북제재 강화(2016~17년)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절명의 위기를 버텨낸 것은 사실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현재의 회복 수준은 충분하지 않다. 경제 규모도 남한의 약 60분의 1, 즉 1.7%에 불과하다.
또한 북한이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을 통한 경기 부양도 탄탄한 재정이 지속될 때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정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공개 인정한 사실은 이 한계를 북한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 방향이다. 북한은 유리해진 대외 여건을 경제 구조 개선에 활용하는 대신, 유통과 생산 전반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급자족과 자력갱생의 강조, 민간 시장의 억제, 국영 유통망의 확대는 과거에도 수 차례 시도된 바 있으나, 그 결과는 생산성 저하와 자원 배분의 왜곡으로 귀결된 경우가 많았다. 대외 여건이 호전되자 오히려 폐쇄성을 강화하는 이러한 경향이 과거의 경로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주목해야 한다.
살림집 건설이나 지방발전 20×10정책처럼 주민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사업들도 일관성 있게 추진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구조적 개혁 없이 재정 투입만으로 지속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 경제의 회복력이 여전히 취약한 상황에서 유리해진 대외 여건을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으로 전환하기보다 폐쇄적인 사회경제 구조를 강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북한이 가진 자신감은 정부의 재정 여건이 악화하면 유지될 수 없는 구조를 하고 있다. 경제 회복이 둔화하고 정부의 재정 구조가 악화하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한편, 북한이 현재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을 적대시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으나, 그 자신감의 기반이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면 이는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다.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는 대결과 단절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상호 관여에서 모색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현재의 자신감을 대화 거부의 근거로 삼기보다 안정적인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을 적대의 대상이 아닌 대화의 상대로 인식할 수 있을지가 향후 한반도 정세의 향방을 가르는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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