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삼성SDI가 본격적인 양산을 앞둔 전고체 배터리의 주요 수요처 중 하나로 휴머노이드를 택했다. 배터리의 최대 수요처인 전기차와 미래 산업을 동시에 공략해 차세대 배터리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이를 통해 양산 수율 확대와 미래 산업 주도권을 모두 확보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1일 삼성SDI에 따르면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3년 국내 기업 최초로 경기도 수원 연구소에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며 성능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도 빠른 속도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9년, SK온은 2028년을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준비 중이다. 해외 기업 중에서는 일본의 토요타가 가시권에 진입했다. 2027년~2028년 내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상용화가 목표다.
중국은 주춤하는 분위기다. 기술적 난제가 많은 ‘완전한’ 전고체 배터리 대신 액체 전해질이 소량 포함된 반고체 배터리에 눈을 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 CATL은 최근 전고체 배터리 개발이 실험실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인정했다. CATL 쩡위친 회장은 지난달 현지 매체를 통해 “2030년 이전 전고체 배터리의 대규모 상용화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CATL의 자체 기술 성숙도 평가에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1~9단계 중 4단계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4단계는 실험실 수준의 기본 원리 검증을 마친 단계다.
양산 시점에서 삼성SDI가 앞서고 있지만 실제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꿔 화재 위험을 낮추면서도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통한다. 하지만 기존 배터리와 소재·공법·기술이 모두 달라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해 양산 수율을 개선하고 공급망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관건으로 꼽힌다.
삼성SDI는 정교한 전략을 세웠다. 이차전지 시장의 최대 수요처인 전기차와 미래 산업의 핵심축으로 떠오른 휴머노이드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에서도 휴머노이드용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양산 초기 전고체 배터리의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만큼 ‘성능이 곧 경쟁력’인 휴머노이드 시장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일회계법인이 지난 5월 발간한 ‘전고체, 한걸음 더 가까워진 꿈의 배터리’ 보고서에 따르면 양산 초기 전고체 배터리의 kWh당 가격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약 5~6배로 추정된다. 전기차는 배터리 원가 비중이 40%에 달하지만, 휴머노이드의 배터리 원가 비중은 낮은 편이다. 순수전기차의 평균 배터리 용량은 50~100kWh, 휴머노이드의 대당 탑재량은 2~4kWh다. 탑재량 자체가 적은 만큼 고가의 배터리를 수용할 여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휴머노이드 공략은 미래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하이니켈 기반 원통형 배터리가 주로 탑재되지만 짧은 구동 시간이 한계로 지목된다. 테슬라 옵티머스와 아틀라스의 경우 1회 충전 시 작업시간이 2~4시간에 불과하다.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4~8시간의 연속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전고체 배터리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삼성SDI의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는 무음극 구조를 활용해 에너지 밀도를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2~3배 높일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된다. 음극이 차지하는 공간과 무게를 없애고 양극재를 더 채워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목표는 약 900Wh/L 수준이다. 현재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약 600~750Wh/L다. 같은 크기의 배터리로 주행 거리·동작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셈이다. 삼성SDI 현장석 전략마케팅실 상무는 ‘인터배터리 2026’에서 “전고체 배터리가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의 궁극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안전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가벼우면서도 높은 용량으로 로봇 가동시간을 8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 규모 자체도 빠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휴머노이드 로봇용 전고체 배터리 수요가 2030년 15GWh, 2035년 74GWh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35년 기준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수요 전체(100GWh)의 70%를 넘는 수치다. 삼성SDI의 목표는 거대한 휴머노이드 배터리 시장의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다. 현 상무는 “내년까지 전고체 배터리 양산 준비를 마무리하고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배터리 기술 표준을 정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도 순항 중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10월 독일 완성차 브랜드 BMW·미국 배터리 소재 전문기업 솔리드파워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실제 차량 운행 조건 전반에서 전고체 배터리의 성능 전반을 검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를 파우치형과 각형 두 가지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적용 기기에 따라 폼팩터를 달리하는 전략이다. 고성능 전기차와 휴머노이드를 시작으로 드론·웨어러블 기기·모바일 기기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 관계자는 “복수의 글로벌 고객사와 샘플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며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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