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타악기는 타격하는 찰나에 구속되지 못한다. 긁고, 문지르고, 흔드는 행위가 소리의 입자를 철저히 분리한다. 금속은 차갑게 진동하고 나무는 건조하게 반응하며, 가죽은 낮은 파동을 발생시킨다. 퍼커셔니스트 김지연이 독주회 ‘SCRATCH DATA : 도약의 기록’을 연다. 타악기의 물리적 움직임과 신체 반응을 현대음악의 어법으로 직조한다.
무대에는 R. 센도의 '스크래치 데이터(Scratch Data)', K. 브런트의 '무한의 차가운 전율(Cold Tingle of Infinity)', 김재덕의 '한-푸리 Ⅱ(Han-Puri Ⅱ)', P. 조들로프스키의 '아이.티(I.T)', A. 뮐렌바흐의 '테라 엑스(Terra X)'를 올린다. 김재덕의 작품은 세계 초연 위촉곡이며, 나머지 4곡은 전부 한국 초연작이다.
표제작 '스크래치 데이터'는 공연 전체 감각을 대변한다. 악기 표면을 긁어내는 마찰의 속도, 압력, 접촉 면적이 음악적 데이터로 치환된다. 악기의 표면을 거대한 리듬 공간으로 활용해 소리의 질감을 노출한다. '무한의 차가운 전율'은 촉각적 감각을 극대화한다. 짧은 타격음은 얼음처럼 부서지고, 긴 공명은 아득한 공간감을 조성한다. 소리의 길이보다 잔향의 온도와 침묵 직후의 떨림을 강조한다.
세계 초연곡 '한-푸리 Ⅱ'는 공연 정중앙에 위치한다. 한국적 정서인 '한'의 응축, '푸리'의 카타르시스를 타악기의 원초적 에너지로 풀어낸다. 전통 어법의 직접적 차용을 배제하고 소리의 압박과 호흡만으로 새로운 한국적 감각을 파생시킨다. 작곡가 김재덕은 스위스 제네바 고등음악원, 독일 슈투트가르트 및 쾰른 국립음대에서 학업을 마친 뒤 다수 현대음악 단체와 위촉 작업을 진행한 실력파다.
'아이.티(I.T)' 연주에는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자 정성윤이 가세한다. 타악기의 타격과 관악기의 호흡이 빚어내는 이질적 신체성을 교차시킨다. 베이스 클라리넷 고유의 거친 저음, 키 클릭 소음, 공기 섞인 마찰음이 타악기의 물성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정성윤은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석사 졸업 후 현재 KT 챔버 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테라 엑스(Terra X)'는 타악과 현악의 결합을 시도한다. 루카스 초이너가 타악기 파트에 합류하며, 바이올린 이소연·최하은, 비올라 이서현, 첼로 박성진이 현악 4중주를 책임진다. 첼로의 낮은 저음과 큰북의 진동이 공간을 넓게 울린다. 활털이 현을 긁는 파열음과 타악기의 마찰음을 병치시켜 실내악 규모의 입체적 사운드를 완성한다.
협연자들의 이력도 화려하다. 루카스 초이너는 베를린 도이체 오퍼 타악기 부수석이다. 이소연은 독일 울름 필하모닉 제3악장, 최하은은 독일 베르기슈 심포니커 제1바이올린 단원이다. 이서현은 베를린 도이체 오퍼 비올라 종신단원이며, 박성진은 충북도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으로 재직 중이다. 최정상급 연주자들이 모여 정교한 앙상블을 구축한다.
퍼커셔니스트 김지연은 선화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제주 국제 관악·타악 콩쿠르 타악기 부문 한국인 최초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벨기에, 핀란드, 미국, 룩셈부르크 등 다수 국제 경연에서 상위 입상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유럽 다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며 독주 악기로서 타악기의 지평을 넓혔다. 통영국제음악제, 경기필하모닉 등 국내 주요 악단 객원 연주를 거쳐 현재 고잉홈 프로젝트 타악기 단원, 독일 울름 필하모닉 팀파니 부수석 종신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8월 공연은 타악기의 한계를 허물고 소리, 신체, 앙상블이 빚어내는 무한한 서사를 증명하는 무대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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