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 저녁 무렵 낯선 도시의 시내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곳의 아름다움이 눈보다 먼저 몸에 와 닿을 때가 있다. 낮의 열기가 서서히 식고 건물 벽에 머물던 빛이 천천히 옅어지는 시간이다. 오래도록 닳은 돌바닥은 발끝에 묵직한 감촉을 남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저마다 높이와 색이 다르지만 이상하리만큼 안정된 균형을 보게 된다. 골목에서 넓은 길로 접어드는 순간 시야는 자연스럽게 열리고 걸음의 속도도 조금씩 느려진다. 거리의 폭, 창문의 간격, 건물의 높이, 벽에 스민 햇빛의 색감까지 모든 요소는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의 질서 안에서 조용히 어우러진다. 그것은 한 도시가 오랜 시간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 왔는지, 또 어떻게 자신만의 감각과 질서를 삶 속에 스며들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얼굴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판단, 현재와 역사 사이의 균형, 건물 하나의 개성과 도시 전체의 조화는 그곳의 미감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본성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름다움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선택과 절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도시의 아름다움을 눈에 보이는 외형에서 먼저 찾지만 사실 그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그 밑바탕에 놓인 질서와 관계의 감각이다.
이러한 조화는 미국 미시간호를 따라 형성된 시카고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시카고 도시의 건물들은 저마다 높고 단단한 윤곽으로 하늘을 가르지만 그 아래 펼쳐진 공원과 길은 도시를 다시 사람의 속도로 낮춘다. 그래서 이 호숫가의 아름다움은 개별 건물의 화려함보다 수직의 건축과 수평의 풍경이 서로를 절제하며 만들어 내는 균형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도시 디자인은 사람의 움직임을 이끌고, 감정을 조율하며, 공동의 기억이 머물 자리를 만든다. 어디에서 걸음을 멈추게 할지, 어디에서 시선을 열어 줄지, 어디에서 쉼과 만남이 가능하도록 할지를 세심하게 설계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도시 디자인이 지닌 깊은 역할이다.
한 사람의 안목으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과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공공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한 건물의 개성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인상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건물과 건물, 거리와 광장, 역사와 현재, 기능과 정서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도시는 자신만의 표정을 갖는다. 그 표정은 어느 한 사람의 취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가며 쌓아 온 감각의 결과다.
도시의 색깔은 거창한 상징물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질서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걷기 좋은 보도, 지나치게 튀지 않는 간판,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무리 없이 공존하는 거리, 누구나 잠시 머물 수 있는 광장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이러한 기초가 갖춰질 때 비로소 다양성은 살아나고 창의성과 상상력은 도시의 개성으로 피어난다. 우리가 좋은 도시라고 부르는 공간은 결코 획일적이지 않다. 서로 다른 삶을 품되 무질서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허용하되 공동의 리듬을 잃지 않는다. 좋은 도시는 다양성을 막는 공간이 아니라 조화 속에서 다양성이 더욱 빛나게 하는 공간이다.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장식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하나의 언어다. 디자인 또한 보기 좋은 느낌을 넘어 삶의 방향과 감각의 질서를 조율하는 구조다. 결국 도시의 느낌이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절제하며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겨 왔는지를 보여주는 집단적 감각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술과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 속에서 보이지 않던 질서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으로 살아가는 도시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비로소 기능과 효율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도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만이 지닌 고유한 표정과 숨결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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