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당일배송과 새벽배송, 주 7일 배송이 택배업계에 자리 잡으면서 현장의 속도 경쟁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택배기사들은 식사와 휴식을 미룬 채 배송을 이어가고, 몸을 다치더라도 쉽게 운전대를 놓지 못한다. 배송을 멈추는 순간 배송 구역까지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최근 택배업 산재 승인 건수는 불과 5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었고, 사고와 질병, 사망 승인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택배업 산재 승인 건수는 2021년 561건에서 지난해 1516건으로 늘었다.
사고와 부상
2022년 700건, 2023년 1182건, 2024년 1424건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역대 가장 많은 수준까지 올라섰다. 올해도 5월까지 692건이 승인됐다.
지난해 승인된 산재 가운데 사고가 1341건으로 전체의 88.5%를 차지했다. 질병은 103건, 출·퇴근 재해는 72건이었다. 사고 유형이 세부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배송 차량 운행과 승하차, 계단 이동, 중량물 취급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상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질병 산재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질병으로 인정된 103건 가운데 87건이 허리와 무릎, 손목 등에 반복적인 작업으로 생긴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뇌출혈과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 질환도 13건이 산재로 인정됐다.
장시간 노동과 야간 배송, 무거운 물품을 반복해서 옮기는 작업이 기사들의 몸에 부담을 쌓고 있다는 의미다. 산재 사망 승인도 이어졌다. 2021년 10건, 2022년과 2023년 각각 11건, 2024년 9건이던 사망 승인은 지난해 14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5월까지 7건이 산재 사망으로 인정됐다.
다만 승인 건수 증가를 노동 환경 악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1년 이후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과거 통계에 잡히지 않던 사례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택배 물량과 배송 서비스가 빠르게 늘어난 시기와 산재 증가 시점이 겹친다는 점에서 현장의 업무 강도와 경쟁 구조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택배기사들은 차량을 수백 차례 오르내리고, 무거운 생수와 가구를 계단으로 옮기며, 배송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밤길을 달린다.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와 낙상, 허리·무릎·손목 부상은 부지기수다.
당일·새벽·주 7일 배송 경쟁
5년 사이 3배 급증 산재의 이면
택배업계에서는 산재가 늘어난 배경으로 배송 속도 경쟁을 지목한다. 쿠팡이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을 앞세워 시장을 넓힌 뒤 기존 택배사들도 주 7일 배송에 뛰어들었다.
CJ대한통운과 한진은 지난해부터 주 7일 배송을 시작했고, 롯데택배도 올해 합류했다. 소비자는 주문한 물건을 더 빨리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배송 기사들은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택배기사들의 수입은 대부분 배송 건수에 따라 결정된다. 건당 수수료가 낮아지거나 물량이 줄면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배송 건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택배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고 낮은 단가 경쟁을 이어갈수록 그 부담이 현장으로 내려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택배업계가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도 노동 강도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택배 평균 단가는 장기간 하락세를 보였고, 물량이 크게 늘어난 뒤에도 업체 간 가격 경쟁은 계속됐다. 2021년 택배 요금이 오른 배경에도 택배기사들의 잇따른 과로사와 분류작업 개선 요구가 있었다.
당시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분류 작업 배제와 노동시간 제한 등이 마련됐지만 이후 새벽배송과 주 7일 배송이 확산하면서 시장 환경은 다시 달라졌다.
배송 마감 시간을 맞추라는 압박은 야간 기사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 새벽 7시 전 배송을 끝내야 하는 기사들은 물류센터에서 물건이 늦게 도착하면 첫 배송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주차 공간이 부족한 캠프에서는 대형 화물차가 오가는 도로변에서 물건을 싣는 일도 벌어진다. 여기에 가구와 가전제품 같은 중량물까지 일반 택배와 같은 방식으로 배정되면서 부상 위험도 커지고 있다.
안전사고 비용부터 변호사비까지 전가
대형 택배사 5곳 ‘갑질 계약’ 보니…
쿠팡에서는 프레시백 회수율이 택배기사들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문제로 꼽혔었다. 기사들은 배송 뒤 프레시백을 수거하고, 내부 이물질과 아이스팩을 정리한 뒤 적재까지 맡는다. 수수료는 건당 100~200원 수준이지만 회수율은 대리점 평가와 재계약에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2025년 2월 정시 배송률이나 프레시백 회수율이 기준에 미달하면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시 배송률과 프레시백 회수율 등을 서비스수준평가(SLA)에 반영해 재계약 자료로 활용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해 9월 쿠팡 택배기사 51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프레시백 업무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94.9%에 달했다.
갈등은 계약 해지로 번졌다. 택배노조와 민변, 참여연대는 지난 6월17일 쿠팡CLS와 춘천 지역 대리점 하하물류가 계약서에 없는 프레시백 정리 업무를 강요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하하물류는 같은 달 30일 기사 8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노조 측은 이를 보복성 조치라고 주장했다.
쿠팡CLS는 프레시백 회수·반납 업무가 위탁계약에 포함돼있으며 세척은 전담 인력이 맡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 기사들은 회수율이 계약과 구역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업무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업계의 경쟁은 배송 속도뿐만이 아니다. 배송률과 반품 회수율, 프레시백 회수율, 고객 불만 발생률 등 각종 실적 지표가 기사들의 업무를 촘촘하게 압박한다. 기준에 미달하면 대리점이 원청과의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그 부담은 다시 기사에게 내려간다. 기사 입장에서는 안전보다 배송과 실적을 먼저 챙길 수밖에 없다.
실적이 먼저
산재보험은 사고가 발생한 뒤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다. 현장에 필요한 것은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작업 환경 보장과 다친 기사가 생계나 계약을 걱정하지 않고 배송을 멈출 수 있는 조건이다. 깁스를 한 채 다시 운전대를 잡는 일이 사라지지 않는 한 택배기사 산재도 줄어들기 어렵다.
택배기사 A씨는 “허리와 무릎이 아파도 하루 쉬면 수입이 줄고 대체 기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수 있어 쉽게 일을 멈추지 못한다”며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파도 배송부터 끝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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