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30㎜의 강한 비가 예보된 20일 오전, 우산을 쓴 직장인들이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이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 입구에는 긴 대기 줄이 만들어졌다. 백화점 측은 일찌감치 벨트식 차단봉을 설치해 대기 장소를 만들었고, 가장 먼저 도착한 40대 남성은 간이 의자까지 챙겨와 입구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백화점 문이 열리기까지 약 2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빗속 대기를 이어갔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6일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날도 개점 두 시간 전부터 명품 매장으로 향하려는 '오픈런'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앞쪽 대기줄에 자리 잡은 사람들 주변에는 밤샘 대기 흔적으로 보이는 골판지 상자와 플라스틱 간이 의자, 휴대용 접이식 의자 등이 놓여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여행용 캐리어를 눕혀 임시 식탁을 만든 뒤 과자와 음료를 늘어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개점 두 시간 전 10명가량이던 대기 인원은 오픈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증가해 개점 한 시간 앞두고는 20m가량의 행렬이 늘어섰다.
한 남성은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 선물로 샤넬 가방을 사주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오픈런을 하고 있다"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본점,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줄을 섰다"고 말했다. 이 후 오전 10시 30분 백화점 문이 열리자 이들은 샤넬·반클리프 아펠·티파니앤코 매장으로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폭염과 장맛비에도 명품 오픈런이 이어지는 것은 올해 초부터 명품 브랜드들이 잇달아 가격을 올린 데다 하반기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서다. 특히 이미 가격을 올린 브랜드도 연내 다시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불안감이 구매를 재촉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명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14일 가격 인상을 단행한 샤넬의 추가 인상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 한 이용자는 "샤넬 25 미니백 가격이 990만원에서 1020만원으로 올랐다"며 "올해 안에 한차례 더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했다.
프랑스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도 오는 22일 주요 제품 가격을 약 7% 인상할 예정이다. 신혼부부 사이에서 결혼반지로 인기가 높은 '콰트로 클래식 웨딩 밴드' 기본 모델은 현재 325만원이지만, 7% 인상률을 단순 적용하면 약 348만원으로 오른다. 현재 500만원인 '쎄뻥 보헴 펜던트' XS 사이즈도 535만원 수준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은 'N차 인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상화하고 있다. 올들어서만 지난 1월 롤렉스와 에르메스, 까르띠에가 가격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2월 티파니앤코, 3월 반클리프 아펠이 가격을 올렸다. 샤넬·불가리·쇼메도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이 중 까르띠에는 1월에 이어 5월에도 가격을 조정했다. 이에 '팬더 드 까르띠에 미니 스틸'과 '까르띠에 탱크 프랑세즈 스몰' 가격은 각각 655만원에서 690만원으로 올랐다. 또 '베누아 뱅글 미니'는 2470만원에서 2730만원으로, '베누아 미니 풀파베 뱅글'은 9700만원에서 1억500만원까지 뛰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주말에는 오픈런으로 대기 등록을 해도 인원이 많아 오후 늦게서야 매장에 입장하거나 예약이 조기에 마감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과거에는 직원이 '명품은 지금 사는 것이 가장 싸다'고 구매를 유도했지만, 최근에는 고객이 먼저 이 말을 꺼낼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혼을 준비하는 20·30대가 웨딩밴드를 고르기 위해 명품 브랜드를 순회하는 사례가 늘면서 주말 대기 접수가 빠르게 마감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같은 명품 가격 인상이 수요 감소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오히려 가격 상승이 희소성과 과시성을 부각해 소비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은 일반 상품과 달리 가격이 오를수록 소비자의 구매 열망이 커지는 '베블런 효과'가 작용한다"며 "가격이 높아질수록 아무나 살 수 없다는 희소성이 강조되고, 이를 소유함으로써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과시욕도 충족된다"고 말했다. 이어 "명품 브랜드는 소비자의 열망을 계속 자극해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만큼 가격 인상 기조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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