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청년 기자단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미디어기술캡스톤 5팀 정도영 허정빈 복세희 박예주 정가송】 지역 박물관이 외면받는 이유는 박물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시민들이 찾아갈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시를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기보다 데이트 장소를 찾고, 혼자 쉬기 좋은 공간을 찾으며,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을 검색한다. 문화공간의 경쟁력도 이제는 공간 자체보다 ‘경험’과 ‘맥락’을 얼마나 잘 제안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천에는 시립박물관을 비롯해 활박물관, 펄벅기념관, 수주문학관 등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 하지만 ‘부천 박물관에 가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선뜻 답하지 못한다. 박물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왜 지금 가야 하는지, 누구와 가면 좋은지 알려주는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의 문제는 공간이 아니라 연결에 있다. 넷플릭스와 왓챠피디아는 이용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콘텐츠를 제안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반면 지역 박물관은 여전히 운영 시간과 위치, 전시 정보를 전달하는 데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용자는 정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방문 동기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큐레이션’이다. 단순히 정보를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누가, 왜, 어떤 상황에서 가면 좋을지’를 제안하는 콘텐츠다. 지역 문화도 이제는 행정의 언어가 아니라 시민의 언어로 소개될 필요가 있다.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미디어기술캡스톤 5팀이 제작한 로컬 문화 큐레이션 플랫폼 ‘B-SIGHT’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박물관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2030세대가 실제 사용하는 언어로 박물관을 재맥락화해 ‘부장님 몰래 반차 쓰고 숨어 있기 좋은 곳’, ‘혼자 있고 싶은 날, 아무도 모르는 구석 자리’처럼 상황과 감성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새롭게 소개한다.
또한 ‘부모님 대신, 박물관이 놀아드립니다’, ‘술과 시’,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 무드’ 등 총 20개의 큐레이션 리스트를 제공한다. 각 카드를 클릭하면 관련 박물관과 전시 코스, 간단한 설명, 예상 관람 시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전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방문 동기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젊은 세대에게 박물관의 문턱을 낮춰준다. ‘전시를 보러 간다’보다 ‘오늘의 기분에 맞는 공간을 찾는다’는 접근이 자연스럽게 박물관 방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성과 대중성의 균형이다. 이에 부천시립박물관 학예사와의 멘토링과 인터뷰를 통해 콘텐츠를 구성했다. 학예사의 시선으로 전시의 의미와 흥미 포인트를 해석하고, 이를 시민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재구성했다. 여기에 박물관을 찾은 시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 이용자의 시선도 담아냈다.
부천시립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큐레이션 프로젝트가 박물관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좁혀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A씨는 “부천에 박물관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코스로 묶어 보여주면 주말에 한 번 가볼 것 같다”고 했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B씨도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훨씬 선택하기 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의 철학적 기반은 『트렌드 코리아 2026』가 제시한 ‘근본이즘(Fundamentals)’과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에 있다. AI가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낼수록 사람들은 실물과 공간, 진짜 경험을 찾게 되고, AI가 추천을 제공하더라도 최종 선택은 인간의 취향과 공감이 결정한다는 의미다. 학예사와 시민이 직접 큐레이션한 코스를 제안하는 B-SIGHT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박물관이라는 실제 공간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려는 시도다.
지역 문화 활성화도 같은 방향이어야 한다. 새로운 박물관을 짓는 것보다 기존 문화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설을 늘리는 데 예산을 쓰기보다 시민들이 찾아가고 싶도록 만드는 콘텐츠에 투자해야 한다. 지역 문화의 경쟁력은 건물이 아니라 이야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대학생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 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 대학은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만들고, 박물관은 전문성을 제공하며, 시민은 경험을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지역 문화는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김경호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는 “지역 문화자원을 디지털로 재발견하는 시도로, 단순한 학교 프로젝트를 넘어 실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제 지역 문화정책도 시설 중심에서 콘텐츠 중심으로, 공급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시선을 바꿔야 한다. 로컬 문화 큐레이션 플랫폼 B-SIGHT가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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