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는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신뢰를 잃었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둘러싼 절차적 논란이 계속됐지만, 협회는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논란이 커질 때마다 책임 주체는 흐려졌고, 의사결정 과정은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홍명보 감독 체제가 출범한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표팀의 경기력과 준비 과정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지만, 협회는 감독 선임의 정당성과 대표팀 운영 방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월드컵 성적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듯 버텼지만, 결과는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위기 대응도 늦었다. 대표팀의 실패가 현실화한 뒤에야 홍 감독이 물러났고, 정몽규 회장도 13년 넘게 이어온 자리에서 사퇴했다. 월드컵 전부터 누적된 행정 난맥상과 감독 선임 논란에 대한 책임을 선제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채, 최악의 결과가 나온 뒤에야 지도부가 퇴진한 것이다.
결국 이번 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명확한 질문을 남겼다. 누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 누가 그 결정에 책임지는가다.
이제 한국 축구는 사람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대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월드컵 실패 이후 출범한 ‘K-축구 혁신위원회’는 거버넌스 개편과 유소년 육성, 첨단 기술 도입 등 한국 축구 전반의 개혁 과제를 논의한다. 박지성 국제축구연맹 분과위원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다만 혁신위가 보고서를 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감독 선임 절차와 기술 분야의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주요 결정마다 책임자를 분명히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협회장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각 위원회가 어떤 권한과 책임을 갖는지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회장 선거의 대표성과 민주성을 높이기 위해 선거인단을 확대하는 정관 개정안을 의결했다. 체육회장 선거권자는 기존 약 2200명에서 9만2000명 규모로 늘어난다. 선수와 지도자, 심판 등 현장 구성원의 목소리를 폭넓게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은 회원 종목단체인 대한축구협회의 차기 회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190명 안팎인 축구협회장 선거인단이 확대되면 기존 세력의 영향력을 줄이고 보다 다양한 후보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대한체육회는 회원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새로운 제도를 조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회장 궐위 후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규정도 유연하게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인단 확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차기 회장이 협회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 혁신위원회의 논의를 실제 제도 개선으로 연결할 의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의 실패는 감독 한 명의 전술 실패도, 선수들의 경기력 문제만도 아니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한 축구협회 리더십의 실패였다.
감독도 떠났고 회장도 물러났다. 이제 남은 것은 실패를 만든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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