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투자 성과를 분기 실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했다. AI 열풍이 미국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린 지 불과 한 달 만에 관련주가 급락하면서, 막대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지출이 실제 매출과 이익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 국면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증시에서 S&P500지수는 1.6%, 기술주 비중이 큰 나스닥100지수는 4.1% 떨어졌다. AI 인프라 투자의 최대 수혜처로 꼽혀온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는 10% 급락해 2025년 4월 이후 최악의 한 주를 기록했다.
AI 기대를 앞세워 고평가를 누려온 비상장 기술주도 흔들리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2주 연속 하락하며 공모가를 밑돌았고, 고점 대비 시가총액이 1조달러(약 1천500조원) 증발한 것으로 집계됐다.
제이크 셀츠 올스프링글로벌인베스트먼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투자자들은 지출 규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에 다다랐고 거품을 우려하고 있다”며 “결국 매출 재가속을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AI에 대한 낙관론만으로는 더 이상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 어렵고, 실제 숫자가 요구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2주 동안 이어질 빅테크 실적 시즌은 AI 투자가 더 큰 수익을 내고 있다는 증거를 찾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2일 테슬라와 알파벳이 포문을 연 뒤, 다음 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메타플랫폼(29일), 애플과 아마존닷컴(30일)이 잇따라 실적을 내놓는다. 이들 6개 종목은 S&P500 전체 시가총액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실적 결과에 따라 시장 전반의 방향성이 좌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심은 무엇보다 AI 인프라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이어온 기업들에 쏠린다. 알파벳은 올해 설비투자(CAPEX)가 지난해의 두 배를 넘는 1천870억달러(약 2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최근 2거래일간 주가는 6.5% 떨어졌다. 차세대 AI 모델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는 보도가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토드 알스텐 파르나서스인베스트먼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어느 시점부터는 실적에 대한 의문이 너무 커져 높은 밸류에이션을 줄 수 없게 된다”며 “클라우드 매출총이익률과 컴퓨팅 1달러당 AI 매출에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 이용자 수나 트래픽이 아니라, 클라우드 인프라와 AI 연산 자원에 투입한 비용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익으로 전환되는지가 핵심 평가 잣대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AI 대표주로 구성된 블룸버그 ‘매그니피센트7(M7)’ 지수의 밸류에이션은 조정을 거치고 있다. 이 지수는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 대비 24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33배, 올해 초 29배에서 낮아진 수치다. AI 성장 스토리는 여전하지만, 이익 전망 대비 주가 수준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인프라에 대한 실물 투자 규모는 여전히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4개사의 올해 설비투자 총액은 최대 7천250억달러(약 108조7천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27년에는 9천억달러(약 135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됐다. 데이터센터, AI 전용 칩, 네트워크 고도화 등으로 투자가 집중되는 가운데, 이 비용이 향후 몇 년간 실적에 어떤 궤적으로 반영될지가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투자 우려는 반도체 업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AI 인프라 지출의 상당 부분이 흘러들어간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65% 급등했지만, 지난달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 급락해 기술적 약세장(베어마켓) 기준선에 도달했다. 실적 호조와 긍정적 가이던스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되레 밀리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시장이 ‘좋은 뉴스도 팔아버리는’ 경계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알스텐 CIO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이 시기에는 더욱 신중해질 것”이라며 “이들은 성장 가속화를 전제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는데, 실제로는 예상한 만큼 가속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관련 매출이 빠르게 늘고는 있지만, 투자자들이 기대해온 ‘폭발적’ 성장 속도에는 못 미칠 수 있다는 경고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대규모 자체 설비투자 대신 파트너십을 통해 AI 서비스를 구현해온 애플은 올해 들어 M7 가운데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애플 주가는 연초 대비 23% 상승해, 공격적인 CAPEX 전략을 펼친 일부 경쟁사를 앞질렀다. ‘가벼운’ 투자 구조가 오히려 시장에서 방어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사이클이 끝났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올스프링의 셀츠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관련 지출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그는 “이들 종목이 몇 주에서 몇 달간 매도세를 겪은 뒤 다시 반등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며 “나라면 이런 약세를 매수 기회로 활용하겠다. 사이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빅테크 실적 시즌의 관전 포인트는 ‘AI 스토리’가 아닌 ‘AI 숫자’다. 매출 재가속과 수익성 개선을 입증하는 기업은 밸류에이션 조정 국면을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AI 거품 논란은 한층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월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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