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17일 14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용당동에 위치한 모 카페에서 정의당 소속 백동규·최현주 목포시의원을 만났습니다. 거대 양당에 기대지 않는 원외 진보정당의 암흑기입니다. 소수정당 정치인은 선거구 규모를 떠나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전국적으로 기초의원 6명을 당선시켰는데, 목포시의회에는 2명이나 있는 만큼 의미가 크고 중요합니다. 두 목포시의원과의 인터뷰 기사를 세 편에 걸쳐 출고하겠습니다. 이번 기사는 1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현장 인터뷰: 정회민 크루+박효영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목포가 고향이 아닌데 목포를 정치적 기반으로 잡고 활동하는 배경이 궁금했다. 백동규 목포시의원은 “실제로 목포에서 태어나 지금도 목포에 살고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면서 “목포에는 외지인들이 많다. 인근 섬 진도, 해남, 무안, 신안 등에서 목포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저희도 고향은 다르지만 목포대를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됐는데 목포대를 졸업하고 목포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게 되면서 정착을 했다.
최현주 목포시의원과 백동규 목포시의원의 모습. <사진=정회민 크루>
최현주 목포시의원과 백 의원은 목포대 선후배 사이다. 백 의원은 1973년생이고, 최 의원은 1969년생이다. 최 의원은 “저희 때는 이제 시대가 그런 시대여서 실은 학생 운동을 했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전 선배들이 노동자·농민 운동에 투신하면서 위장 취업이나 이런 걸 많이 했는데 저희도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학생 운동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 진출을 해보자고 해서 다양한 영역으로 나갔는데 그때 전남 지역에서도 계속 운동을 이어나가야 된다고 해서 목포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그러다가 민주노동당에 들어가서 지방의회도 진출하고 그렇게 됐다.
2010년 지방선거(목포시의회)에서는 민주노동당 정치인이 5명이나 당선됐었다. 물론 그때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무려 169명의 당선자(기초단체장 3명+광역의원 26명+기초의원 140명)를 배출했던 진보 정치의 전성기나 다름 없는 시기였다. 내가 국회 출입기자로 일했던 2018년만 하더라도 정의당이 한국 진보 정치사 최초로 교섭단체를 구성했고, 지지율 10%를 넘어섰고, 제1야당 자유한국당을 뒤흔들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런 위세를 직접 목도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의 타계, 위성정당 사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등을 겪으며 정의당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정의당만 그런 게 아니라 진보 정치가 “죽음의 계곡” 한복판에 있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에 들어가지 않고 원외에서 고전하고 있는 노녹정(노동당/녹색당/정의당)의 분투가 눈물겹다. 이번에 녹색당 타이틀을 달고 허승규 안동시의원이 3전4기로 도전한 끝에 당선됐는데, 원외 진보정당 소속으로 지역구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두 시의원도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백 의원은 4선 목포시의원이고, 최 의원은 재선 목포시의원이자 초선 전남도의원 출신이다. 백 의원은 공식 행사 참여에 머물지 않고 주민자치위원회나 새마을협의회 등 동별 자생단체 활동을 비롯 온갖 저녁 모임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 애를 썼다. 최대한 자주 만나고 친밀감을 쌓아야 한다. 백 의원은 “일단 지역 주민들하고 밀착해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자주 만나뵙고 그분들과 생활을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 얼굴을 비춰야 되는데 여러 가지로. 공식적인 행사나 이런 데서 얼굴을 비치는 것만이 아니라 동별로 자선단체가 많지 않은가? 뭐 바르게살기가 됐든 주민자치위원회가 됐든 새마을협의회가 됐든 이런 자신단체들부터 해서 지역 주민들한테 자연스럽게 봉사하면서 생활 속에서 주민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생업이 있더라도 퇴근하고) 저녁 모임에 많이 나갔다. 우리 동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시간 내서 봉사할 수 있으면 최대한 봉사하고 그랬다.
최 의원은 ‘출마 목적’부터 드러내지 말고 먼저 ‘진짜 주민’이 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거대 양당 청년들에 비해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소수정당 청년 정치인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아 쉽사리 도전하기 힘든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플로깅’ 활동은 기본이고 주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생활 속의 봉사활동을 끈질기게 지속할 필요가 있다. 최 의원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하고 소수정당은 많이 다르다”고 전제했다.
의회로 진출해서도 저희 진보정당 의원들은 활동하기가 조금 어렵다. 양당 의원들은 자생 조직이든 뭐든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활동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초기에 그냥 들어가더라도 이미 자생 조직이 할당을 해줘서 자기 지역구나 동에서 사업을 하거나 이런 게 많다. 반면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기가 되게 어려운 조건이 어떤 경제적인 베이스나 기반 이런 게 없기 때문에, 조금 여력이 있고 당선을 꿈꾸는 청년 정치인들은 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으로 가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소수정당 청년들이 지역에 와서 뭔가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 현실이다.
당선되고 싶어서 쇼하는 것처럼 보여지면 절대 안 된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해당 지역에서 주민들과 발맞춰 살아가는 “진짜 동료 주민”이 되어야 한다.
결국에는 주민이 돼야 된다. 주민들과 같이 살아가는 진짜 주민이 일단 돼야 될 것 같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역구로 와야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최 의원은 진보당 소속으로 두 번째 도전만에 시민들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이정석 목포시의원 사례를 거론하며 “진보당이 평소 지역 주민들과 만나는 활동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환기했다.
칼갈이 이런 걸 하는 건데 주민들이 봤을 때는 이런 지속적인 활동과 아이디어가 되게 진정성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진보당은 2020년 즈음부터 ‘아이스팩 재사용 운동’과 ‘칼갈이 봉사활동’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호흡해왔다. 이런 캠페인형 봉사활동은 지역 단체들과의 협업으로 발전했다. 이를테면 매주 아이스팩 400~500개를 수거해서 전통시장 상인회를 중심으로 전달하고 지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칼갈이 봉사활동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는데 많은 지역민들이 부엌 칼과 농업용 칼까지 잔뜩 갖고 왔다. 칼을 갈아주는 동안 각종 민원을 청취하는 좌담회도 진행하고, 때로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서명운동도 병행했다. 최 의원은 무엇이 됐든 도전하려는 청년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뭔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른 건 못하더라도 끈질기게 뭐 하나라도 고리를 잡아서 계속해서 쭉 지역 내에서 활동을 한다면 결국에는 그 주민들이 알게 된다. 저희도 노란 잠바 같은 경우 꼭 정의당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이제 당원들하고 줍깅도 하고 이렇게 하는데. 나중에 보면 다들 말씀하신다. 어디어디에서 봤다! 물론 청년들이 자생 조직에 들어가기에는 쉽지 않다. 주민자치원회는 심사도 하고 그러니까. 지역마다 좀 다를 수 있는데 목포는 되게 소규모 도시라서 약간 배타성도 있고. 그렇지만 뭔가 하고자 한다면 그 고리를 하나 잡고 그걸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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