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거래해온 주류업체가 유독 비싼 값을 매겨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제주의 한 식당 주인이, 손님이 직접 술을 사 들고 오는 방식으로 영업을 바꿨다.
SNS 캡처.
다른 거래처를 찾아봤지만 도내 어느 업체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연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제주에서 8년째 살고 있다고 밝힌 A씨가 자신의 SNS에 지인 식당의 사연을 전하며 "악행은 사라져야 한다. 왜 우리가 을이어야 하냐"는 글을 올린 것이 계기였다.
A씨가 공개한 안내문 내용을 보면,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지난 10년간 한 주류업체와만 거래해왔다. 그런데 최근 새로 식당을 연 지인에게 이 업체를 소개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지인이 여러 업체의 견적을 비교하던 중, 그동안 거래해온 업체가 소주 한 상자당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가량 다른 곳보다 비싸게 물건을 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B씨 역시 자기 매장이 똑같이 웃돈을 얹어 납품받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해왔다고 믿었는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게 B씨의 심경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B씨가 다른 업체로 거래처를 옮기려 하자, 제주 지역 주류업체들이 하나같이 거래를 거부한 것이다. B씨는 업체들끼리 서로 연계돼 있어서 우리 매장과는 거래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며, '담합' 대신 '상도덕'이라는 표현으로 법망을 피해 가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A씨도 제주에서는 다른 업체의 거래처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 규칙 때문에 다들 상도덕을 이유로 거래를 거절한다며, 처음 거래업체를 정할 때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선택지가 사라진 B씨는 주류 납품 자체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손님이 외부에서 직접 구매한 술을 매장에 가져와 마실 수 있도록 영업 방식을 바꾼 것이다. B씨는 제주시 위생 담당 부서와 세무서 등에 미리 문의해 이런 방식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직원이 손님 카드를 받아 인근 편의점 등에서 대신 술을 사다 주는 것은 관련 법령에 걸릴 수 있어 하지 않기로 했다. 매장 안내문에는 "손님께서 직접 주류를 구매해 오셔야 한다"는 안내와 함께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 문구가 함께 적혔다.
이 사연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바로 이 지역 주류 도매업계의 담합 관행에 철퇴를 내렸기 때문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사)제주주류도매업협회는 회원사 간 거래처 확보 경쟁을 막고, 소매업체에 판매하는 주류 가격의 마진율과 할인율 상한까지 정해놓고 지키도록 했다. 이에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총 2억5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거래처 확보 경쟁 제한 행위에는 2200만원, 판매가격 제한 행위에는 훨씬 무거운 2억3400만원이 매겨졌다.
담합의 뿌리는 201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협회는 이때 '거래정상화협의회 시행규칙(안)'을 만들어 회원사끼리 기존 거래처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이후 2019년 11월 국세청이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를 개정해 도매업자의 금품 제공을 제한하자, 협회는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갔다. 2020년 1월 이사회를 열어 '무지원 거래 시 할인율을 정상가격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을 새로 만들어 시행한 것이다. 국세청이 마진 경쟁 수단 하나를 막자, 아예 협회 차원에서 가격 하한선을 정해 경쟁 자체를 없애버린 셈이다.
당시 공정위는 소주·맥주 같은 서민 술의 공급가격 경쟁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민생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에서의 담합 행위에 대한 감시와 엄정 대응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식당 사연을 보면, 정작 현장의 관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한 누리꾼이 제주 주류업계가 담합으로 과징금까지 냈다던데 아직도 그러냐고 묻자, A씨는 과징금을 내고도 여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댓글창에는 "제주만 그런 게 아니다, 창원에서도 주류업체 바꾸기 힘들다"는 등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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