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 원짜리 예식장 대신 궁중 혼례복을 입고 초례상 앞에 서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결혼식의 신랑 신부 자료사진. / ARTYOORAN-shutterstock.com
획일화된 예식 절차와 치솟는 웨딩 비용에 지친 2030세대가 400만~500만원 선에서 치를 수 있는 전통 혼례로 눈을 돌리면서, 서울 주요 전통혼례장은 이미 내년 예약까지 마감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전통 혼례, 원래는 신부 집 마당에서 치렀다
전통 혼례는 지금 흔히 떠올리는 하얀 웨딩드레스와 검은 예복 문화와는 뿌리부터 다르다. 우리 조상들은 결혼을 '혼인(婚姻)'이라 불렀고, 신부는 공주나 옹주가 입던 원삼과 활옷을, 신랑은 관리의 관복인 사모관대를 갖춰 입었다. 예식 장소도 오늘날의 예식장이 아니라 신부 집 앞마당이었다.
전통 혼례의 핵심은 초례상 앞에서 치르는 '교배례'와 '합근례'다. 신랑은 양(陽)을 상징해 동쪽에, 신부는 음(陰)을 상징해 서쪽에 서서 서로 절을 나누고, 이어 술잔을 주고받으며 백년해로를 서약한다. 처음에는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다음에는 표주박 잔에 따라 나눠 마시는데, 이 표주박은 원래 하나였던 박이 둘로 나뉜 것이라 부부가 한 몸이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식이 끝나면 신부가 시댁 어른들에게 처음 인사를 올리는 '폐백'이 이어지는데, 이때 시아버지에게는 자손의 건강을 기원하는 대추를,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의 허물을 덮어준다는 뜻의 육포를 올린다. 대추와 밤을 신부 치마에 던져주며 덕담을 건네는 것도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오랜 풍습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신랑의 예복이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혼례에서도 신랑은 벼슬아치의 관복인 사모관대를 입을 수 있었는데, 이는 나라에서 혼인날 하루만큼은 신분과 무관하게 지배층의 격식을 누리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에 착안해 최근 일부 전통혼례 업체는 한 발 더 나아가 신랑에게 왕이 입던 익선관과 곤룡포를, 신부에게는 왕비의 대례복인 적의를 입히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곤룡포를 입고 가마를 타고 입장하는 모습이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예식장 값의 8분의 1…투명한 비용이 강점
이런 전통을 오늘날 되살린 결혼식이 2030세대에게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역시 비용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결혼식장 대관료와 기본 장식비, 총 식대,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계약 금액을 합산한 결혼 서비스 총비용은 올해 6월 기준 서울 평균 3454만원, 전국 평균 2159만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서울 예식장 계약 평균 금액만 약 1640만원에 달한다. 반면 전통 혼례는 대부분 400만~500만원 선에서 소화할 수 있어, 서울 평균 예식 비용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있지만, 견적이 처음부터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도 2030세대가 꼽는 강점이다. 일반 예식장은 꽃 장식과 조명, 테이블 배치 하나하나를 고를 때마다 비용이 추가되고 총액을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전통 혼례는 구성 항목이 정해져 있어 준비 과정에서의 혼란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후기가 많다.
서울 전통혼례장, 내년 예약까지 마감
수요 증가는 실제 예약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남산골한옥마을의 전통 혼례 예약은 지난해 60건에서 올해 80건 이상으로 늘었고, 관악구 낙성대공원 전통혼례식장도 지난해 61건이던 예식이 올해 이미 65건을 넘어섰다. 성북구 삼청각의 예식 담당자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통 혼례 수요가 뚜렷하게 늘었으며, 국제결혼 커플의 예약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서울 중구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전통 혼례식 중 전통 공연이 진행 중인 모습. / 남산골한옥마을 제공.
충무로역 인근 한국의집은 올해부터 '프리미엄 전통웨딩'으로 운영 방식을 바꿔 토요일 오후 5시 한 차례만 예식을 진행 중인데, 이미 내년 11월까지 예약이 모두 찼다. 한국의집 관계자는 젊은 층의 인식 변화로 전통 혼례 인기가 높아지면서 프리미엄 노선으로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전통 혼례를 치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이 두 곳 외에도 세종대왕기념관, 운현궁,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경주 황룡원과 경주향교, 충남 부여 백제문화단지 등이 꼽힌다. 예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종대왕기념관처럼 원하는 시기의 예약이 이미 마감된 곳도 나오고 있어, 신혼부부들 사이에서는 원하는 날짜에 가능한 전통혼례장을 찾는 일 자체가 새로운 숙제가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분짜리 예식보다 함께 호흡하는 결혼식”
전통 혼례를 택한 신혼부부들이 입을 모아 꼽는 만족 포인트는 '함께 어우러지는 경험'이다. 지난 3월 세종대왕기념관에서 결혼한 한 신부는 지인 결혼식장에서 예식이 시작된 지 20분도 안 돼 다음 신랑·신부의 사진이 로비에 걸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했다며, 좀 더 특별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 전통 혼례를 골랐다고 말했다. 옵션을 추가했는데도 총비용은 약 400만원 선이었고, 가마를 타고 입장하는 순간이 마치 거리 퍼레이드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축가 대신 사물놀이 공연이 이어져 하객들도 함께 흥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도 만족스러운 부분으로 꼽혔다.
지난해 10월 한국의집에서 약 500만원을 들여 결혼한 다른 신부 역시, 일반 예식장은 정해야 할 항목이 끝없이 많고 고를 때마다 비용이 붙는 데다 가격이 투명하지 않아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반면 전통 혼례는 선택할 항목이 적고 비용도 공개돼 있어 준비가 훨씬 수월했으며, 하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결국 정해진 틀을 거부하려는 2030세대의 더 큰 소비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객 수를 최소화한 소규모 예식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자리 잡은 이후, 최근에는 주례나 정형화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를 생략하고 예식 순서와 식사 메뉴까지 원하는 대로 새로 짜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 혼례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값비싼 프랜차이즈식 예식 대신 저마다의 방식으로 결혼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시도로 읽힌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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