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한국 사람도 백두산에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지가 북한과 중국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백두산 천지 반을 북한이 중국에 넘겼다'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반대다. 두 나라는 1962년 중조 국경 조약과 1964년 중·조 국경에 관한 의정서 등을 맺었다. 그때부터 백두산 천지 반이 한반도 안으로 들어왔다"
북중 접경 지역을 연구하며 국경에 대한 남한 사회의 편견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인류학자 강주원 박사가 이번에는 만주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조망하는 신간을 통해 백두산에 대한 남한 내 잘못된 역사적 인식을 지적했다.
강 박사는 2022년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 이후 4년 만에 <두만강과 압록강엔 국경선이 없다 –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라는 제목의 신간을 출간했다. 그는 2013년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 2016년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 2019년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등의 저서를 통해 중국 단둥을 비롯한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 지역에서 북한·북한 화교·조선족·남한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꾸준히 기록해 왔다.
강 박사는 그간 저서를 통해 국경이 없는 남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경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데 일조해 왔다. 이번 신간에서 그는 코로나 19가 창궐한 이후 북한이 국경을 닫아버렸지만, 그럼에도 막히지 않고 흘러갔던 국경 지역에서의 삶을 관찰했다.
"솔직히 선입견은 있었다. 코로나 19로 어렵지 않은 나라와 지역이 없다고 들어왔다. 압록강 일대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최소한 강 너머 북한의 풍경과 삶은 3년 전 그 시간에 멈춰 서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우려는 상류 지역을 만나는 순간 바로 기우임을 깨달았다. 강변의 북한 도시와 마을은 달라져 있었다. 코로나 19 세월 동안 혜산의 공간을 하나둘 채워 온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2020년 이전의 변화 속도보다 빨랐다. 고난의 행군을 상징하던 옛 흔적은 옅어졌다.
중류 만포와 하류 삭주도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하류 끝 신의주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 풍경을 사진과 함께 '코로나19 시기에도 압록강은 멈추지 않았다' 라는 제목의 글로 남겼다. 2023년 여름과 가을 이후에도 압록강과 함께 북녘 산하는 변화를 거듭했다"
당초 코로나 19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북한 내부의 삶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강 박사는 2023년 이후의 북한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신의주의 경우 "다리 또는 압록강 유람선 위에서 봐도 북한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한에서는 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 박사는 신의주에서 본인 옆을 지나던 남한 사람들이 "북한 신의주에 선전 건물이 많구나! 중국보다 초라한 저 모습을 봐!"라는 말을 했다면서 "내가 잘못 파악했나, 연구자로서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졌나?"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접경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같은 위치에서 카메라를 꺼내 변화상을 기록했다. 이후 남에 돌아가 코로나 19 시기 남북이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북한의 변화를 단순히 '선전마을'로치부하는 남한의 편견의 근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스승을 찾아가 토론을 했다고 전했다. 강 박사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남한 사회의 편견이 단단하고 깊다는 점을 확인하는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강 박사는 책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북중 간 '국경선'이라고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인식이 실제 그 지역에서의 삶과는 다르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양국이 흘러가는 강 중간에 선을 그어놓고 있기 보다는, 강 전체를 하나의 면으로 규정하면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강 박사의 설명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두만강과 압록강엔 경계선이 없다. 대신 강폭 전체를 하나의 경계면으로 삼는다. 두 강의 공유 물길이 만주와 한반도를 연결한다. 두만강과 압록강은 국경면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의 국경이 국경면이며 이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낯설다.
2006년 전후 철조망이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서 강변 주민들의 삶이 달라진 건 아니다. 두 강의 철조망은 경계보다 넘나들 수 있는 울타리 성격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두 강의 국경면 범위는 유동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뭄과 홍수에 따라 강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만강과 압록강엔 국경선도 없는데, 단절의 철조망도 아닌데 휴전선의 이 미지로 두 강을 바라본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노력이 만주와 한반도 평화, 그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물줄기를 아는 만큼 공유·공생·공존하는 두 강의 본디 그대로의 모습이 다가온다"
영토 기준으로 유일하게 북한과 접하고 있는 남한은 지난 80여 년 동안 경계 또는 국경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인식해 왔다. 이러한 관념이 영토와 국경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인식 범위를 좁히고 상상력을 가둬왔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체감할 수 있듯이 국경은 각 정부가 그어 놓은 행정적 조치의 '선'(線)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선 주위에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활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국경선도 아닌 '경계선'에 군대만 주둔하고 있는 남북한이 이례적인 경우에 속하는 셈이다.
북중 접경지역도 다른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보다 더욱 철저한 남북 분단을 공언하고 있는 현재 북한 정권도 이러한 사람들의 삶은 막지 못한다. 남쪽으로 높은 담장을 세운다고 해서 남북 간 교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북중 접경지역에서는 중국을 포함해 남북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주와 한반도가 연결되고 있음을 알아가야 한다. 더불어 한국 사회가 두만강과 압록강에 덧씌운 편견과 선입견을 거두고 두 강이 들려주는 사실에 하나 둘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그러다 보면 남북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만주와 한반도를 잇는 평화 교류의 길이 보일 것이다. 분단과 단절에서 평화로 가는 길은 어렵기도 하지만 때론 가까이에 지름길이 있다.
다시 말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부터 만주에서 한국 사람도 두 강을 넘나들며 한반도의 남과 북을 연결했다. 두만강과 압록강은 한국 사람에게 단절과 분단의 장벽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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