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나의 파우스트-경제학’과 ‘나의 파우스트-영혼성’의 소유권이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배우자 정희자씨에게 있다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다.
18일 조선일보 보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창모 부장판사)는 정씨가 우양산업개발(옛 대우개발)을 상대로 제기한 동산인도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정씨는 “1991년께 남편이 지배하던 우양산업개발이 운영하는 경주 힐튼호텔과 우양미술관에 내가 소유한 미술품들을 전시·보관했는데, 이후 우양산업개발의 경영권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미술품이 반환되지 않아 우양산업개발이 작품들을 점유하고 있다"며 지난해 7월 우양미술관이 점유하고 있는 118점의 미술품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정 씨가 지난 2014년 우양산업개발측에 “개인 자금으로 구입한 미술품을 무상 대여 중이니 반환해달라”면서 소유권을 주장해 왔다. 이후 우양산업개발은 정씨에게 3점, 정씨의 딸 김선정 전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에게 6점 등을 각각 돌려줬다.
우양미술관의 전신은 아트선재미술관이다. 정씨는 미국 유학 도중 사망한 장남 김선재씨를 기리기 위해 1991년 경주에 아트선재미술관을 설립했지만 외환 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 아트선재미술관은 경주힐튼호텔과 함께 우양산업개발에 인수됐다. 이름도 우양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씨가 반환을 요구한 작품 중 백남준의 대형 설치 작품인 ‘나의 파우스트-경제학’과 ‘나의 파우스트-영혼성’,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지그마르 폴케의 작품 등 총 3점만을 정씨의 개인 소유로 인정, 우양산업개발 측에 반환을 명했다.
재판부는 우양미술관 큐레이터, 정씨에게 작품을 판매한 화랑 대표, 정씨의 옛 비서실 직원 등의 진술을 토대로 정씨가 이들 3점을 실제로 구매해 소유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씨가 반환을 청구한 나머지 185점에 대해선 “정씨가 이를 구매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 자료가 없다”며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씨는 자신이 우양미술관 관장으로 있을 당시 각 미술품의 소유관계를 나타내는 소장품자료카드를 작성했고, 자신이 소유한 작품에는 ‘M’이라는 코드를 부여했다고 주장했으나 소장품자료카드를 작성했던 미술관 큐레이터는 재판정에서 “소유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일단 ‘M’ 코드로 기재했고 이후 실제 소유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다른 코드로 수정하기도 했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소장품자료카드에 일부 미술품 코드가 'M'이라고 기재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정씨 소유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 봤다.
이에 대해 우양산업개발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한편, 법원이 정씨 소유라고 인정한 백남준 작품은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 중 ‘경제학’과 ‘영혼성’ 2점이다. 종교 제단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들은 모두 3.1m 높이의 거대한 규모다.
1989년 미국 신시내티에 머물던 백남준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1991년까지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민족주의, 영혼성, 건강, 예술, 교육, 교통, 통신, 연구개발, 자서전 등 인간 문명을 구성하는 13가지 요소를 주제로 한 13점의 연작을 제작했다.
‘나의 파우스트-경제학’는 텔레비전을 쌓아 놓고, 세계 각국의 지폐와 반짝이는 동전을 활용해 기술과 자본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나의 파우스트-영혼성’도 텔레비전을 제단처럼 쌓아 올린 구조에 다양한 종교 상징 등을 보여주면서 현대 인간 정신과 영혼의 본질에 대한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두 작품은 오랜 기간 고장 난 상태로 우양미술관에 보관돼 오다가 지난해 미술관 재개관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경주 개최를 계기로 복원돼 지난해 7월부터 지난 5월까지 백남준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면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 정상회의 일정 중 이재명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는 캐나다, 뉴질랜드 등 6개국 대표 배우자들과 이 전시를 관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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