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는 단순한 스마트폰 부품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과 파운드리 경쟁력, 모바일 사업의 공급망 자율성을 동시에 시험하는 전략 자산이다. 그러나 퀄컴 스냅드래곤과의 성능·전력 효율 격차, 제한적인 외부 고객 기반, 지역별 AP 혼용에 따른 소비자 형평성 등의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삼성 엑시노스의 부진 원인과 삼성이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짚어본다. <편집자주>편집자주>
|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가 소비자들의 엇갈린 평가에도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에 다시 힘을 싣고 있다. 과거 발열과 전력 효율 논란으로 플래그십 스마트폰 탑재가 축소되기도 했지만 삼성은 엑시노스를 포기하는 대신 첨단 공정과 인공지능(AI) 성능을 앞세워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삼성이 엑시노스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칩 하나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엑시노스는 갤럭시의 퀄컴 의존도를 낮추고 부품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시스템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모바일 사업을 연결하는 전략 자산이다.
온디바이스 AI가 스마트폰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운영체제와 서비스, 단말기, 반도체를 함께 최적화할 수 있는 자체 AP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엑시노스의 성공 여부에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와 첨단 파운드리 경쟁력이 함께 걸려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 퀄컴 의존 커질수록 원가·협상력 부담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포기할 경우 가장 먼저 커지는 것은 퀄컴에 대한 의존도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AP 시장에서는 퀄컴과 애플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애플은 자체 설계한 A시리즈 칩을 아이폰에 적용하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 상당수는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의존한다.
퀄컴 입장에서도 삼성전자는 핵심 고객이다. 퀄컴은 2025 회계연도 공시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샤오미가 각각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라고 밝혔다. 퀄컴은 갤럭시 S25 시리즈에 스냅드래곤을 전량 공급했지만, 이후 삼성의 엑시노스 탑재 확대 가능성을 고려해 차세대 갤럭시 공급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삼성이 자체 AP 없이 스냅드래곤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퀄컴의 가격과 공급 조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든다. 갤럭시 판매량이 많을수록 AP 구매 비용이 전체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엑시노스가 실제로 스냅드래곤보다 제조원가가 낮은지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의 개발비와 제조비, 손익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첨단 AP 개발에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들어가고 초기 수율이 낮으면 자체 칩의 원가가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자체 AP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퀄컴과의 공급가격 협상에서 대체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다. 엑시노스가 갤럭시에 실제 탑재될 가능성이 있어야 스냅드래곤 구매 조건을 놓고도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엑시노스는 판매 제품인 동시에 퀄컴의 독점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카드인 셈이다.
▲ 엑시노스 2600, 삼성 2나노의 시험대
엑시노스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삼성 파운드리와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가 엑시노스를 설계하고 파운드리사업부가 이를 생산한다. 삼성의 최신 설계 기술과 첨단 미세공정이 하나의 제품 안에서 동시에 시험되는 구조다.
최신 엑시노스 2600은 삼성 파운드리의 2나노미터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으로 생산된다. 10개의 중앙처리장치(CPU) 코어와 엑스클립스 960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탑재했다. 삼성전자는 전작보다 생성형 AI 성능을 113% 높였으며 CPU 구조와 전력 관리 기술을 개선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한다.
삼성전자도 2025년 실적 발표 자료에서 시스템LSI사업부가 엑시노스 경쟁력을 높여 2026년 플래그십 제품 탑재를 추진하고 파운드리사업부는 2나노 GAA 기반 신규 모바일 시스템온칩(SoC)의 양산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엑시노스와 파운드리가 별개의 사업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엑시노스 출하량이 늘면 삼성 파운드리의 첨단 공정 가동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 제품을 대량 생산하며 수율과 전력 효율, 공정 안정성을 검증할 기회도 확보할 수 있다.
파운드리는 가동률이 수익성과 직결된다. 최첨단 생산라인을 구축하더라도 고객 주문이 부족하면 고정비 부담이 커진다. 삼성 파운드리는 그동안 첨단 공정에서 대형 외부 고객 확보와 수율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적자를 이어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의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에서는 두 사업이 상당한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과거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분리 가능성에 선을 그으며 두 사업을 계속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엑시노스는 외부 대형 고객이 부족한 상황에서 삼성 파운드리의 첨단 공정을 먼저 가동할 수 있는 내부 고객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자체 AP의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2나노 공정의 양산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외부 고객을 설득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다만 반대의 위험도 존재한다. 엑시노스의 성능이나 전력 효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삼성 2나노 공정의 경쟁력까지 함께 의심받을 수 있다. 엑시노스 2600이 단순한 신형 AP가 아니라 삼성 파운드리의 기술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로 평가되는 이유다.
▲ 온디바이스 AI 시대, 자체 AP가 경쟁력
스마트폰 경쟁의 중심이 생성형 AI로 이동하면서 자체 AP의 전략적 가치도 커지고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 내부에서 AI 연산을 처리한다. 처리 속도가 빠르고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개인 데이터가 외부 서버로 전송되는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구현하려면 CPU와 GPU뿐 아니라 AI 연산을 전담하는 NPU, 메모리, 카메라 이미지 처리장치, 소프트웨어를 함께 최적화해야 한다. 외부에서 공급받은 범용 AP를 사용하는 것보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직접 칩 설계에 관여할수록 단말기와 서비스에 맞춘 최적화가 쉬워질 수 있다.
애플이 자체 A시리즈 칩을 기반으로 아이폰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통합하고 구글이 픽셀 스마트폰용 텐서 칩을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 역시 갤럭시 AI 기능을 확대하려면 장기적으로 단말기와 반도체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2600의 NPU 성능을 강화하고, 생성형 AI 처리 과정에서 전력 소모와 지연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내부에서 더 크고 복잡한 AI 모델을 구동하려는 전략이다.
엑시노스의 적용 범위도 플래그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삼성은 중저가 갤럭시와 웨어러블, 자동차용 반도체 등으로 엑시노스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SoC 출하량이 전년 동기보다 감소한 가운데서도 엑시노스 출하량은 갤럭시 탑재 확대에 힘입어 전년보다 증가했다.
출하량 확대는 설계비와 연구개발비를 더 많은 제품에 분산하고 외부 고객을 확보할 기반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축적한 CPU와 GPU, NPU, 모뎀 설계 역량을 자동차와 사물인터넷, AI 기기 등으로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 소비자 신뢰 없이는 생존전략도 없다
엑시노스가 삼성에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점과 소비자가 엑시노스 탑재 갤럭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삼성에는 퀄컴 의존도 완화와 원가 협상력 확보,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 파운드리 가동률 제고라는 분명한 사업적 이유가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삼성의 반도체 생태계보다 자신이 구매한 스마트폰의 성능과 배터리 사용시간, 발열을 먼저 평가한다.
전작보다 성능이 개선됐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시기에 출시된 스냅드래곤과 대등한 성능을 실제 제품에서 입증해야 한다. 장시간 게임과 영상 촬영, 이동통신, AI 연산 등 다양한 환경에서 성능 유지력과 전력 효율이 검증돼야 누적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엑시노스가 경쟁력을 확보하면 삼성은 스마트폰과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를 연결하는 독자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반대로 성능 격차가 반복되면 갤럭시 브랜드와 파운드리 기술력까지 함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엑시노스는 삼성이 필요해서 계속 탑재할 수 있는 부품이 아니다. 소비자가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는 제품이다. 삼성의 시스템반도체 생존전략이 성공하려면 엑시노스가 더 이상 보호받는 내부 제품이 아니라 퀄컴과 정면으로 경쟁해도 선택받는 AP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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