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 진출을 확정한 아르헨티나가 경기 후 펼친 세리머니가 전 세계적인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잉글랜드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직후 일부 선수들이 '말비나스(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땅'이라는 정치적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논란의 장면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열린 북중미 월드컵 준결승 직후 나왔다. 아르헨티나는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경기에서 잉글랜드를 2-1로 꺾고 2회 연속 월드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 분위기는 잉글랜드가 가져갔다. 후반 초반 앤서니 고든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를 몰아붙였고, 잉글랜드는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리드를 지키는 듯했다.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은 강했다. 아르헨티나는 후반 중반 엔소 페르난데스가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 라우타로 마르티네스가 결정적인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완성했다. 두 골 모두 리오넬 메시의 어시스트가 있었다.
마라도라 신의 손 사건, 축구로서도 악연
경기 후 메시는 "국가가 울려 퍼질 때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며 "잉글랜드 팬들의 거센 응원이 오히려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메시는 이어 "마라도나가 하늘에서 이 경기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며 "그에게 또 하나의 승리를 선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메시가 마라도나를 언급한 이유도 특별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패했던 아르헨티나는 4년 뒤 열린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마라도나는 '신의 손' 골과 이른바 '세기의 골'을 터뜨리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지금도 양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경기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현수막 세리머니 논란
축구로서도 이러한 악연이 있는 두 팀간의 경기는 아무 일 없이 끝나지 않았다. 경기 종료 후 아르헨티나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그라운드에서 우승을 방불케 하는 축하를 펼쳤고, 이 과정에서 여러 선수가 'Las Malvinas son Argentinas(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첼시 미드필더 엔소 페르난데스, 과거 토트넘에서 뛰었던 지오바니 로 셀소 등 대표팀 핵심 선수들이 함께했다. 메시는 자리에 없었다.
말비나스는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라고 부르는 남대서양 군도를 의미한다. 이 지역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74일 동안 전쟁을 벌였던 곳으로, 당시 영국군 255명과 아르헨티나군 649명이 전사했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해당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행동에 영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피터 카일 산업통상장관은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정치는 축구와 분리돼야 한다"며 "이번 행동은 완전히 부적절했고 FIFA가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총리실도 같은 입장을 내놨다. 총리실 대변인은 "월드컵은 우리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포클랜드 제도는 분명히 영국의 영토"라며 "포클랜드 주민들의 자결권을 존중한다는 영국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 에드 데이비는 한발 더 나아가 FIFA에 공개 서한을 보내 해당 선수들의 결승전 출전 정지를 요구했다.
그는 "유로 2024 우승 행사에서 '지브롤터는 스페인 땅'이라는 구호를 외쳤던 알바로 모라타와 로드리가 UEFA로부터 1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며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징계 수위는
실제로 FIFA 규정 제34.3조는 경기 전후를 포함해 선수들이 정치적 메시지나 슬로건을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2014년 슬로베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들었다가 벌금 징계를 받은 전례가 있다.
FIFA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안을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처벌 수위는 벌금부터 출전 정지까지 가능하지만 스페인과의 월드컵 결승전 이전에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페인 매체와 라디오 코페는 FIFA가 조사를 진행하더라도 대회 종료 이후 최종 징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 클라린 역시 선수들의 결승전 출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축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꺾은 뒤 박종우는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땅' 현수막을 들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FIFA는 이를 정치적 표현으로 판단했고 박종우는 A매치 2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3500스위스프랑의 징계를 받았다. 동메달 역시 시상식 직후 받지 못하고 뒤늦게 전달됐다.
이번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행동 역시 스포츠와 정치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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