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홈플러스 매대가 비어가고 있었어요. 당직이어서 카메라로 매장 여기저기 훑어보는데 눈물이 나고 슬픈 거예요. 너무 속상하고."
홈플러스에서 보안 직원으로 근무하던 조경미 씨는 지난 5월 27일, 당직을 서며 마트 곳곳을 CCTV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마트의 텅 빈 매대. 신선식품 칸에는 건조된 식품, 프라이팬, 칼과 가위 등 생활·문화 상품이 진열돼 있었고 채워진 곳보다 빈 곳이 더 많았다.
올해 초부터 홈플러스는 눈에 띄게 변했다. 수십 박스씩 들어오던 과일이 줄고, 우유의 납품이 중단됐다. 축산과 수산 직원들을 포함해 오랫동안 일하던 직원들이 그만두기 시작했다.
"신선 식품, 특히 과일·채소 쪽이 최고 빨리 줄더라고요. 어느 날 갑자기 냉장 코너에 프라이팬이 들어가 있고 우유 판매대에 밀폐용기가 진열돼 있는 것을 보면서…"
조 씨는 당직을 서며 23년 동안 근무한 홈플러스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이틀 만에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고, 마지막 출근이 됐다.
"당직을 서면서 매장을 보는데 그때 (퇴사) 결정을 하게 됐어요. 이제 홈플러스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았어요. 이제 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틀 만에 사표를 냈습니다."
남편과 함께 세 명의 자녀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조 씨. 첫 직장인 홈플러스에서 정년을 꿈꾸던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홈플러스가 저의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다녔어요. 2003년에 입사했을 때 희망에 부풀고 저의 희로애락이 홈플러스에 다 묻어 있었는데, 이렇게 그냥 허무하게 뒤돌아서 나오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보안실을 나오는데 발이 안 떨어졌어요. 내가 여기를 떠나면 이제 다시 못 들어올 곳이잖아요."
"홈플러스는 저의 집이었어요"
조 씨에게 홈플러스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수많은 단골손님이 일부러 인사를 건네러 찾아왔고, 어떤 손님은 간식을 건넸다.
"제가 컸듯이 그분들도 같이 컸어요. 자녀가 결혼하고, 손녀와 손주를 데리고 와서 인사하며 같이 세월을 보냈어요. '내가 마냥 의무적으로 있는 건 아니었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줬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애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23년 동안 그는 자녀의 입학과 졸업,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병환, 자신의 수술까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모두 홈플러스와 함께 겪었다.
"홈플러스에서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을 다 들었어요.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보내드렸고,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는데 회사에서 배려해 줘서 어머니를 케어할 수 있었어요. 자녀들 병원에 데려간 적도 많았어요. 홈플러스는 사실 내 집이었고, 그래서 내가 그 집을 떠날 거라고도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홈플러스의 위기
조 씨가 회사를 떠난 것은 홈플러스의 위기가 현실화하던 시기였다.
1997년 출범한 홈플러스는 국내 대표 대형마트 중 하나로 성장했다. 한때 업계 2위에 올랐던 홈플러스는 온라인 쇼핑 확대와 대형마트 부진, 정부의 규제, 코로나19 여파 등이 겹치며 서서히 위기가 찾아왔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법원은 홈플러스의 매각을 포함한 회생 방안을 검토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직원들이 피부로 체감한 회사의 상황 악화는 올해 1월부터이다. 월급이 제때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고, 월급의 50%만 지급하는 등 임금 체납이 시작됐다.
홈플러스 본사 시설관리 팀에서 15년째 근무 중인 50대 황인규 씨는 BBC에 "이전에도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 가장 크게 체감했다"며 "다시 회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26년 5월, 홈플러스는 전국 104개 대형마트 중 37개 점포 영업을 잠정 중단하고, 수익 기여도가 높은 67개의 핵심 점포 중심으로 운영을 재편했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회생계획 이행에 필요한 20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하자 지난 3일,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이 결정에 대한 홈플러스의 즉시항고 기한은 20일. 긴급 운영자금 조달 방안을 확보할 경우, 항고를 제기해 회생절차 재개를 추진할 수 있다.
홈플러스의 즉시항고 기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13일,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영업을 임시 중단했다.
다만 식당과 카페, 생활용품점과 의류 매장 등 홈플러스에 입점한 업체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
홈플러스 직원과 입점 업체에 따르면 직원들과 점주들은 당일 아침까지 영업 중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출근한 뒤 본사의 연락을 받고서야 매장 정리에 들어갔다.
BBC가 지난 13일 찾은 서울의 한 홈플러스.
식당과 카페 등 여러 입점 업체로 인해 손님들로 붐비는 1층을 지나 지하로 향하자, 휑한 마트가 보인다. 입구에는 카트로 벽이 세워져 출입이 차단돼 있었다.
불이 꺼진 마트 앞에는 임대 매장들이 들어서 있다. 일부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점포도 있다.
홈플러스 지하에 입점해 10년 넘게 매장을 운영해 오던 이 씨는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점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홈플러스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슬펐어요. 직원들이 서서히 빠지고, (매대에) 홈플러스 상품이 깔리기 시작하며 장을 보러 안 갔어요. 그 (상황을) 보기 싫었어요. 근데 필요한 게 있어서 중간에 마트에 갔는데, 물건이 없는 걸 보니까… 너무 슬펐어요."
황 씨는 불 꺼진 마트 안에서 자신의 손으로 마트의 문을 스스로 닫고 있는 직원 중 한 명이었다.
"15년 동안 근무했는데 문을 닫는다니까 안타까운 거죠. 다 나가고, 소등하고 정리하고…"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70대 최 씨는 홈플러스를 10년 넘게 이용했다. 평소처럼 장을 보러 홈플러스에 방문한 최 씨는 닫힌 마트 입구를 한동안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마트에서 일하던 직원도, 10년 넘게 홈플러스를 이용하던 고객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홈플러스,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파산 위기에 놓였던 홈플러스는 16일,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MBK 회장이 회생에 필요한 2000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대출 전액에 연대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홈플러스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긴급 운영자금 지원을 요청해 왔지만, 추가 담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김 회장과 MBK파트너스가 연대보증에 나서며 메리츠금융그룹도 이날 이사회를 열고 2000억원 전액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며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즉시 항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홈플러스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오는 20일까지 즉시항고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회생절차는 다시 이어질 수 있으며 기한도 추가로 연장될 수 있다. 절차의 최종 기한은 9월 4일로 알려졌다.
파산이 임박했던 홈플러스가 일단 시간을 벌었지만, 경영 정상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법원이 회생절차 폐지를 취소해야 하고, 이후 협력업체 미정산 대금을 해결해 상품 공급망을 복원하고, 점포 운영을 안정시켜야 한다.
떠난 소비자를 다시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채권단과 법원을 설득할 수 있는 회생계획안도 마련해야 한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노조는 내부 의결을 거쳐 퇴직금 일부나 성과급을 양보해 회사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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