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줄곧 강조해온 경영 철학이다. 삼성은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 초격차’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고 미래 투자를 이어왔다. 최근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초격차 전략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D램과 낸드에 이어 HBM까지 선두에 오를 경우 메모리 반도체 전 분야를 아우르는 ‘메모리 왕좌’를 완성하게 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 UBS와 번스타인은 내년 HBM 시장의 지각변동을 전망했다. UBS는 삼성전자의 2027년 HBM 비트(용량) 기준 점유율을 41%로 예상하며 SK하이닉스(39%)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번스타인도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46%까지 확대돼 SK하이닉스(37%)를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이 나온 배경에는 HBM 시장의 세대 교체가 있다. UBS는 올해 HBM3E 12단이 전체 수요의 65%를 차지하지만, 2027년에는 HBM4 비중이 37%로 커지고 HBM4E도 12%까지 확대될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HBM3E 12단 비중은 30%, HBM3는 4%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HBM3E에서는 SK하이닉스가 우위를 점했지만 HBM4부터는 시장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객사 지형도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UBS는 올해 대비 2027년 구글의 HBM 수요 비중이 18%에서 30%로, AMD는 7%에서 13%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기존 최대 고객사였던 엔비디아 비중은 60%에서 41%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빅테크 기업들의 자체 AI 칩(ASIC) 개발 확대로 고객사 다변화 국면을 맞은 만큼 삼성전자가 구글과 AMD의 주요 HBM 공급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전자의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HBM4는 양산 약 4개월 만에 누적 매출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추세를 이어간다면 연말 100억달러 매출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특히 신규 메모리 제품이 양산 첫해에 이 같은 매출을 기록한 것은 반도체 업계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은 최근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한 뒤 “올해는 HBM4와 SOCAMM을 충분히 공급하고, 2027년부터는 HBM4E와 HBM5 등 장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3월 주주총회에서는 “고객사로부터 ‘삼성이 돌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차세대 제품 개발에서 삼성전자의 저력이 확인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말 업계 최초로 HBM4E 12단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HBM4E 신뢰성 테스트 수율이 70%를 넘어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여기에 HBM5의 기반이 될 차세대 10나노급 7세대(D1d) D램 공정 개발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8%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SK하이닉스(29%)와 마이크론(22%)이 각각 2위, 3위로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가 HBM까지 선두에 오를 경우 메모리 반도체 전 분야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게 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지속적으로 기술 중심 경영과 인재 경영을 강조해온 만큼 HBM 경쟁력 강화에도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 축적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며 “HBM4 경쟁은 단순한 생산량보다 기술력이 좌우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HBM4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점유율 확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HBM은 고객사 검증과 인증을 통과해야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는 제품인 만큼 업계 최초 양산과 HBM4E 샘플 공급을 가장 먼저 진행했다는 것은 고객이 요구한 성능과 기술 수준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율뿐 아니라 고객 인증과 성능, 품질을 모두 포함한 제품 경쟁력이 향후 시장 점유율을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HBM3E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HBM4부터는 고객사 인증과 양산 시점, 수율 등이 다시 핵심 경쟁 요소가 될 것”이라며 “차세대 제품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삼성전자의 HBM 주도권 확보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에서는 이미 세계 1위인 만큼 HBM에서도 선두에 오른다면 메모리 산업 전반의 기술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연구개발 투자와 조직 운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겠지만, 기술을 최우선 가치로 강조해온 이 회장의 경영 기조 역시 투자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