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MMA) 단체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와의 인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UFC 선수와 해설자, 경영진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UFC 카르텔'은 단순한 친분 관계를 넘어 미국 공화당 권력의 핵심 지지 세력을 자처해 왔는데,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그 존재감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얼마 전엔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백악관 행사에서 UFC 경기를 개최하며 끈끈한 인연을 과시하기도 했다.
5년 만에 돌아온 맥그리거…충격의 TKO 패배보다 더 충격적인 '트럼프 인연'
지난 12일(한국시간) 오전 라스베이거스 티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329' 메인 이벤트에서 UFC 사상 최초로 두 체급(페더급·라이트급) 챔피언에 오른 코너 맥그리거가 맥스 할로웨이를 상대로 5년 만의 복귀전을 치렀다. 이번 경기는 대전 상대가 '코리안 좀비' 정찬성의 은퇴전 상대였던 맥스 할로웨이라는 점과 맥그리거의 긴 공백기 이후 복귀전이라는 이슈가 맞물리면서 전 세계 격투기 팬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다. 경기는 시작 69초 만에 무릎 부상을 입은 맥그리거의 녹아웃(TKO) 패배로 싱겁게 마무리됐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여전히 맥그리거에 관한 다양한 화두가 등장하고 있다.
특히 맥그리거가 보여준 경기력과 향후 은퇴 가능성을 염두한 정계 진출 여부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맥그리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들과도 자주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3월에는 백악관을 방문해 아일랜드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맥그리거에 대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일랜드인"이라 언급하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맥그리거와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경제적 유대 관계도 주목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일가와 연관된 투자 기관 '아메리칸 벤처스(American Ventures)'는 맥그리거가 후원하는 종합격투기 플랫폼 기업 'MMA. Inc'에 300만달러(한화 약 43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를 단행했다. 해당 계약에는 향후 조건부로 최대 2000만 달러(약 290억원)를 추가 투자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있어 향후 총 투자 규모는 최소 2300만 달러(약 333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는 이번 투자에 직접 참여는 물론 전략적 자문 역할까지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UFC 인맥은 선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UFC 해설자이자 세계 최대 팟캐스트 진행자인 조 로건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 1967년 뉴저지주 뉴어크에 태어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을 시작한 로건은 '더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The Joe Rogan Experience)'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당 콘텐츠가 회당 수천만 명이 청취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여론을 움직이는 '빅마우스'로 거듭났다. 로건은 지난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해당 방송에 직접 출연하며 돈독한 관계임을 입증해 보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환각제(사이키델릭) 기반 정신질환 치료제 연구와 개발을 지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았다. 해당 정책은 로건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주장해 온 사안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PTSD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환각제 활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1954년 워싱턴DC에서 태어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다. 행정명령 발표 행사에서 연설에 나선 로건은 "이 모든 것이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며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UFC 수장인 데이나 화이트(Dana White)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과 UFC 간에 연결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1969년 미국 코네티컷주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데이나 화이트는 2001년 UFC 대표(CEO)에 취임한 뒤 종합격투기를 세계적인 스포츠 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월가에서는 데이나 화이트 재임 기간 20년 넘게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시작으로 정치권과 재계, 실리콘밸리, 미디어를 아우르는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는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이른바 'UFC 카르텔'이라 불리는 이 네트워크는 선거 지원부터 정치자금 후원, 여론 형성, 정책 홍보, 백악관 행사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월가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화이트 대표와의 인연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UFC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리그가 아닌 흥행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신생 단체였다. 경기장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소유한 애틀랜틱시티의 트럼프 타지마할 호텔에서 UFC 대회를 열 수 있도록 지원했다. 훗날 화이트 대표는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을 때 트럼프만은 UFC를 믿어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사업 파트너를 넘어 정치적 동맹 관계로 발전했다. 화이트 대표는 2016년과 2020년, 2024년 모두 직접 공화당 전당대회 연단에 올라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다. 대선 유세와 취임식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데이나 화이트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에는 미국 재계의 거물들도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UFC를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로 성장시킨 전 구단주 로렌조 페르티타(Lorenzo Fertitta)와 그의 형 프랭크 페르티타(Frank Fertitta)다. 1969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어난 로렌조 페르티타는 카지노 기업 스테이션 카지노를 운영하는 페르티타 가문의 일원이자 2001년 UFC를 인수해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그는 엔데버(현 TKO)에 UFC를 매각하기 전까지 20여 년간 UFC의 성장을 이끌었다. 1962년생인 프랭크 페르티타는 스테이션 카지노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동생과 함께 UFC의 토대를 닦았다.
카지노·리조트 기업 스테이션 카지노(Station Casinos)를 일군 페르티타 가문은 미국 공화당의 대표적인 후원 세력으로 꼽힌다. 로렌조 페르티타는 올해 4월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산하 정치활동위원회(PAC)에 네 차례에 걸쳐 총 44만3000달러를 기부했다. 프랭크 페르티타 역시 지난해 8월 트럼프 47위원회(Trump 47 Committee)에 92만4600달러를 후원한 데 이어 올해에도 추가로 22만1500달러를 기부하며 트럼프 진영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 홍보대사가 된 파이터들…미국 '이대남' 사로잡은 트럼프의 정치적 무기 평가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UFC를 보수 성향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정치 플랫폼이자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까지 연결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선수들과의 친분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며 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 확대에 활용해 왔다. 선수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정치 행사에 참석하거나 선거운동에 나서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UFC의 주 시청자층은 보수 성향이 강한 25세에서 44세 사이의 남성으로 해당 연령대가 전체 시청자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돈독한 인연을 과시한 대표적인 선수로는 UFC 스타 호르헤 마스비달(Jorge Masvidal)이 꼽힌다. 1984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쿠바계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호르헤 마스비달은 UFC 웰터급 대표 스타로 길거리 격투기 'Kimbo Slice' 영상으로 이름을 알린 뒤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쿠바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마스비달은 공화당 행사인 '라티노스 포 트럼프(Latinos for Trump)'에 직접 참석해 연설하는 등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를 호소해 왔다. 플로리다를 기반으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과 반사회주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보수 성향의 라틴계 유권자 결집에 힘을 보탰다.
콜비 코빙턴(Colby Covington) 역시 대표적인 친트럼프 UFC 선수로 지목된다.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로비스 출신인 콜비 코빙턴은 NCAA 디비전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UFC 웰터급 잠정 챔피언을 지냈다. 그는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파하는 선수로 특히 유명한데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자신의 캐릭터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 트럼프 등 트럼프 일가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정치는 오래전부터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그 결합의 방식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며 "UFC는 단순한 스포츠 단체를 넘어 막대한 팬덤과 미디어 영향력을 갖춘 하나의 정치적 플랫폼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UFC가 보유한 충성도 높은 지지층과 미디어 파급력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반대로 UFC 인사들 역시 정치권과의 연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치권이 스포츠 산업을 활용한 영향력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이 같은 네트워크가 미국 정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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