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에서 10년 넘게 반복돼 온 중학교 신설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정작 현장에선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입주 초기부터 수차례 같은 약속이 반복됐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선 중학교가 생기면 당연히 좋지만 이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오랜 숙원사업이 어느새 익숙한 '희망고문'이 됐다는 지적이다.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10년째 제자리인 중학교 신설
왕십리뉴타운은 센트라스와 텐즈힐 등을 중심으로 약 5000여 세대가 입주한 성동구 대표 신축 주거단지다. 서울 도심 접근성이 뛰어나고 왕십리역 생활권을 갖춘 데다 단지 안에 초등학교까지 조성되면서 젊은 부부와 자녀를 둔 실수요자들이 꾸준히 유입됐다.
그러나 중학교는 끝내 들어서지 못했다. 왕십리뉴타운 중학교 신설은 입주가 본격화된 2010년대 초부터 주민들의 대표적인 숙원사업으로 꼽혀 왔지만 학생 수 감소와 학교용지 확보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수차례 논의에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다시 중학교 신설 추진을 언급하면서 잠잠했던 논의가 재점화됐다. 지난달 23일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중·성동갑 국회의원은 라이브 방송에서 "성동구는 살기 좋은 지역이지만 교육 문제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왕십리뉴타운 중학교 신설과 명문고 유치는 지역의 주요 숙원사업"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교육청 등 관계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신설을 위해선 학생 수요 확보와 학교용지 마련, 서울시교육청 학교설립계획 반영, 교육부 중앙투자심사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가 전국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교육당국도 신규 학교 설립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황이 이렇다보니 주민들은 이번 논의 역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왕십리뉴타운 학생들은 행당중과 무학중, 동마중,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등으로 분산 배정받는다. 같은 단지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는 사례가 흔하고 버스를 이용해 통학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전유선 양(15·가명)은 "초등학교 친구들이 행당중과 무학중, 동마중 등으로 흩어졌고 나는 사립 중학교에 진학했다"며 "집 근처에 학교가 없어 버스를 갈아타고 통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 가운데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경우도 있었다"며 "예전에는 단지 안에서 쉽게 만났는데 지금은 학원 시간을 맞추거나 따로 약속을 잡아야 해 초등학교 때보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왕십리뉴타운에 입주했던 신혼부부들의 자녀 상당수는 어느새 중학생을 넘어 고등학생이 됐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박하랑 씨(51·가명)는 "처음 입주했을 때만 해도 곧 중학교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때 여덟 살이던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아이는 3년 내내 버스를 타고 중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오히려 집 앞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같은 이야기를 10년 넘게 들어오다 보니 이제는 기대보다 체념에 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최지명 씨(45·가명) 역시 "왕십리뉴타운 학생들은 행당중과 무학중, 동마중으로 많이 배정되고 일부는 한양대부중으로 진학한다"며 "통학 여건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집 가까이에 중학교가 없는 점은 분명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신혼부부였던 입주 초기에는 중학교 신설이 먼 미래의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아이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며 "시간은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중학교는 없어도 수요는 꾸준…입지가 상쇄한 교육 공백
인근 공인중개업소들은 중학교 문제가 왕십리뉴타운에서 오랫동안 반복된 이슈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중학교 부재가 실제 거래나 수요를 좌우할 정도의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왕십리뉴타운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실수요자들은 상담 과정에서 중학교 문제를 자주 묻는다"며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문제인 만큼 중학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실수요자들은 오히려 어느 학교로 배정되는지, 통학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현실적으로 따져보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왕십리뉴타운의 가장 큰 경쟁력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대규모 신축 단지와 왕십리역을 중심으로 한 뛰어난 교통환경"이라며 "중학교 하나 때문에 단지 수요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교육시설이 단지 안에 갖춰진다면 어린 자녀를 둔 실수요자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중학교가 신설된다면 현재보다 단지 경쟁력이 한 단계 더 높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왕십리뉴타운은 중학교 부재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 신축 아파트라는 희소성과 우수한 교통 여건을 바탕으로 실수요가 꾸준하다. KB부동산에 따르면 텐즈힐 전용 85㎡는 지난 5월 21억7000만원에 거래됐고, 센트라스 동일 면적은 지난 6월 24억7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이는 인근 e편한세상청계센트럴포레 동일 면적이 지난 5월 18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보다 약 6억원 높은 수준이다.
행당중 인근 서울숲리버뷰자이 전용 84㎡는 지난 5월 24억8000만원, 무학중 인근 서울숲행당푸르지오 동일 면적은 지난 7일 18억5000만원, 동마중 인근 왕십리금호어울림 전용 84㎡는 지난 6월 19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단지별 입지와 준공연도, 브랜드 등 차이가 있어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중학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왕십리뉴타운의 주거 선호도가 크게 낮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지 부동산 업계의 공통된 평가다.
전문가들은 학령인구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학교 신설은 주민 요구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만큼 학생 수요와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학교는 학생을 교육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의 정주여건을 결정하는 핵심 기반시설이다"며 "특히 젊은 가족이 많이 거주하는 대단지에서는 교육시설 유무가 실거주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최근 부동산 시장은 과거처럼 학군 하나만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라 교통과 직주근접, 신축 여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왕십리뉴타운 역시 중학교 부재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도심 입지와 우수한 교통망이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교육 인프라까지 보완된다면 실거주 만족도는 물론 지역 경쟁력도 한 단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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