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 더봄]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 살아서 무덤, 죽어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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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마디 더봄]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 살아서 무덤, 죽어서 무덤

여성경제신문 2026-07-16 10:00:00 신고

살아서 무덤, 죽어서 무덤
2017년 7월 23일 /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 맑고 다소 쌀쌀

“to be free is not merely to cast off one's chains
but to live in a way that respects and enhances the freedom of others.”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사슬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46664*

입장권과 뮤지엄 내부 영상 화면 디스플레이 /일러스트=윤마디
입장권과 뮤지엄 내부 영상 화면 디스플레이 /일러스트=윤마디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의 입장권을 사면 ‘BLANKES(WHITES)’ 혹은 ‘NIE-BLANKES(NON-WHITES)’라고 적힌 표를 무작위로 받는다. 나는 ‘NIE-BLANKES(NON-WHITES)’ 표를 들고 ‘비백인’의 입구로 들어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이 표 딱지와 함께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다르게 부여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부가 1948년부터 시행한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이다.

사람들을 백인, 흑인, 컬러드, 인도인 등으로 분류하고 인종에 따라 거주지와 교육,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을 세세하게 구분했다. 서로 다른 인종 간의 결혼도 법으로 금지했고, 원주민인 흑인은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 이동하거나 거주하는 데에도 제약받았다.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은 이 땅에 유럽인들이 정착한 후 식민 지배를 확대해 온 과정부터 백인 정부가 인종차별 정책을 제도화한 역사, 이에 맞선 사람들의 저항과 민주화 과정까지 남아공의 근현대사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가자, 모든 영상 자료가 감옥의 철창 같은 구조물 안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 사람들은 철창 안에 갇혀 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감옥 그 자체였다고 말하는 것 같다.

법원 같은 정부 기관은 물론 식당과 영화관, 심지어 맨몸을 까는 화장실까지 공공장소 곳곳에 백인과 비백인을 구분하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어느 인종으로 분류되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사람에게는 이름과 직업, 성격과 취향처럼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는 그보다 먼저 ‘백인’, ‘흑인’, ‘유색인’이 되어야 했다.

‘나는 유색인이다.’ ‘나는 흑인이다.’ 자신을 구분하는 말을 어디에서나 마주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인종을 숨 쉬듯 자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람을 차별하는 법인 동시에 사람이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에까지 개입하는 제도였다.

민족운동가였던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다 체포되어 27년 동안 복역했다. 1990년 석방된 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위한 협상에 참여했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지탱하던 주요 법률들은 1990년대 초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고, 1994년 남아공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인종이 참여한 민주 선거가 실시되었다.

전시장의 한쪽에는 벌판에 급히 파낸 구덩이에 트럭으로 시신을 실어 와 묻는 사진이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다 죽은 젊은이들이었다. /일러스트=윤마디
전시장의 한쪽에는 벌판에 급히 파낸 구덩이에 트럭으로 시신을 실어 와 묻는 사진이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다 죽은 젊은이들이었다. /일러스트=윤마디

전시장의 한쪽에는 벌판에 급히 파낸 구덩이에 트럭으로 시신을 실어 와 묻는 사진이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다 죽은 젊은이들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삶의 반경을 제한받았던 사람들이 죽어서도 급히 파낸 좁은 땅에 묻혔다.

사진을 보며 1980년 광주를 생각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갑작스러운 국가 폭력으로 많은 시민이 죽었다. 가족들은 죽은 사람을 찾아 시신을 수습하고, 급히 장례를 치러야 했다. 끝내 찾지 못한 시신도 있었고, 연고자를 확인하지 못한 시신도 있었다.

남아공의 아발론(Avalon)*과 광주의 망월동. 황망한 마음을 수습할 새도 없이 사람들을 묻어야 했던 소용돌이. 가슴이 아팠다.

사진 속 벌판에 급히 파낸 묫자리와 그곳에 누운 젊은이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살아서는 법에 갇혔고, 죽어서는 좁은 땅에 누웠다. 살아서 무덤, 죽어서 무덤.

46664= 넬슨 만델라가 로벤섬에 수감되었을 당시의 수감 번호로, 이후 만델라가 주도한 HIV/AIDS 인식 개선 캠페인의 이름으로 사용되며 인권과 자유를 상징하는 숫자가 되었다.

아발론 공동묘지(Avalon Cemetery)=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소웨토에 위치한 대규모 공동묘지로, 1972년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에 흑인 전용 묘지로 조성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리플렛 /윤마디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리플렛 /윤마디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외관과 위치 /구글 지도
아파르트헤이트 뮤지엄 외관과 위치 /구글 지도

여성경제신문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madimadi-e@naver.com](mailto:madimadi-e@naver.com)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작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여행 드로잉을 기반으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에세이 작가로, 한 장소에서 사람이 기능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구조와 삶의 조건을 들여다본다. 현재 일본 여행기 <유니폼> 과 아프리카 여행기 <아프리카 그림일기> 를 연재하며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 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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