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분간 예술혼 불태운 노장들…객석 압도한 신구·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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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분간 예술혼 불태운 노장들…객석 압도한 신구·박근형

연합뉴스 2026-07-16 07:35: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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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베니스의 상인'…고전으로 조명해낸 인간의 양면성

연극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역을 맡은 박근형 연극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역을 맡은 박근형

[파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이게 공정한 재판이오? 적어도 이 땅에 정의가 있다면 기회만이라도 공평해야 하지 않소."

구순을 바라보는 배우 박근형이 격정적 목소리로 객석을 압도했다. 125분간의 공연 내내 그는 또렷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배역에 몰입했다.

박근형은 지난 8일 국립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베니스의 상인'에 주역인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역에 단독으로 캐스팅돼 전 회차에 출연한다.

15일 공연에서도 그는 평생 갈고닦은 연기력으로 샤일록이라는 모순적 인물을 열정적으로 표현해냈다.

침을 뱉거나 모자를 뺏는 베니스 상류층에게 조롱당하는 장면에서 영락없는 약자인 노인이다가도, 베니스의 존경을 받는 안토니오를 질투하고 그를 끌어내리려는 음험한 모습을 드러낼 때는 증오에 찬 힘 있는 목소리로 양면성을 표현했다.

교체로 들어가는 다른 배우 없이 전 회차에 출연하며 가장 큰 비중을 소화하지만, 86세 나이에도 대사에는 주저함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작품 하이라이트인 법정 심판 장면에서 자비를 베풀라는 '포셔'의 권고에 맞서 '법과 계약의 실행을 통한 정의 구현'을 내세우며 형을 집행하라는 대사에서는 광기와도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재판장 역할을 하는 '공작' 역을 맡은 신구 또한 대부분의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신구도 박근형과 마찬가지로 모든 회차에서 혼자 역할을 연기한다. 90의 나이에 분장을 소화하며 프로다운 시선과 대사 처리를 보여준 그의 모습은 예술혼마저 느끼게 했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연극 '베니스의 상인'

[파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큰 변형 없이 따라간다.

상인 '안토니오'는 샤일록과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내준다'는 계약을 맺었다가 살점을 도려낼 위기에 처하고, 베니스의 질서를 수호하는 공작이 주재하는 재판에 선다. 공작과 현명한 여인 포셔의 도움으로 안토니오는 위기를 모면한다.

극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단연 박근형이 맡은 샤일록이다. 샤일록은 차별·배제당하는 소수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빌려준 돈의 대가로 살점을 요구하는 잔인하고 증오에 찬 인물이기도 하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연극 '베니스의 상인'

[파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토니오,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이번 작품에서 설정과 묘사가 추가돼 해석이 풍부해졌다.

안토니오는 명예와 우정을 중시하는 베니스의 신사지만 샤일록을 경멸하고 핍박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모순적 인간성을 가진 인물이다.

작품은 여기에다 겉으로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내면은 비어 있으며 타인을 위하는 듯하지만 자기애로 가득한 모습을 추가했다.

이러한 면에서 안토니오의 등장과 마지막 장면 연출은 인상적이었다.

안토니오는 베니스에서 제일가는 부유함과 인기를 누리는 상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물질적 조건을 갖췄음에도, 본인은 왠지 모르게 우울하다고 한탄하며 등장한다. 이런 모습은 겉으로는 고귀하지만 내면에는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불안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그는 베니스의 친구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 춤을 추는 장면에서도 혼자 객석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다른 이들을 등지고 무대 뒤로 혼자 걸어 들어간다. 안토니오가 다른 이들처럼 사랑으로 채워질 수 없는 인물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안토니오 역의 카이는 적절한 톤과 집중력으로 진지하게 인물의 모순과 공허함을 표현해냈다.

'단순한 사랑의 도피자가 아닌 자유와 사랑, 책임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로 소개된 제시카는 인물의 성격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인 샤일록을 배신하고 아버지를 핍박했던 베니스의 상류층과 사랑의 도피를 떠난 제시카는 도피처에서 갑자기 아버지를 떠올리고 베니스로 돌아간다.

그러나 제시카의 심리를 드러내는 장면이나 계기가 부족한 탓에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다소 어려웠으며, 막상 돌아간 베니스에서 미미한 활약이나 샤일록의 강제 개종에 동조하는 모습은 인물의 서사를 완결성 있게 마무리하지 못한 듯한 느낌이었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 연극 '베니스의 상인'

[파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소 예스럽고 고풍스럽게 들릴 수 있는 고전의 문어체적 대사를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력은 돋보였다.

특히 최수영은 단연 극 후반부 흐름을 끌고 가는 중심이었다. 구혼자들에게 퀴즈를 내는 장면에서는 재치 있는 포셔의 모습이, 법정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또렷한 발성으로 표현한 지혜롭고 주체적인 모습이 도드라졌다.

'베니스의 상인'은 다음 달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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