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팹 성공 3대 조건…원전-ESS 병행·용수 유연 활용·빠른 인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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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팹 성공 3대 조건…원전-ESS 병행·용수 유연 활용·빠른 인허가

이데일리 2026-07-16 05:0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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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정리=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대만 TSMC 가오슝 클러스터가 보여준 단기 초고속 가동의 기적으로 이어지려면, 전력과 용수 측면에서 반드시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호남 팹 성공 3대 조건…원전-ESS 병행·용수 유연 활용·빠른 인허가


우선 재생에너지의 ‘양’을 넘어 ‘질’을 확보해야 한다. 호남은 풍부한 태양광·해상풍력 자원 덕에 글로벌 빅테크가 요구하는 RE100 대응에 유리한 입지로 꼽힌다. 그러나 반도체 공정은 자동차 엔진과 다르다. 자동차는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춰도 다시 출발하면 그만이지만, 반도체 팹은 단 1초의 정전만으로도 웨이퍼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출력이 오르내린다.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많아도 전기가 불규칙하게 공급되면 팹 가동은 불가능하다. 24시간 일정한 전력을 공급할 안정적 전원과 계통 안정화 수단이 꼭 필요하다. 미국 애리조나의 TSMC 피닉스 공장도 청정전력 조달을 강조하지만, 실제 운영은 팔로버드 원전 등 대형 무탄소 전원과 천연가스 발전이 뒷받침하는 지역 전력망 위에서 이뤄진다. 재생에너지는 ‘간판’이고, 안정적 전력망은 ‘엔진’인 셈이다.

정부가 제시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는 6.3기가와트(GW)다. 일부 팹 단지만 따져도 수 GW급 상시부하가 새로 생기는 것이다. 이를 재생에너지만으로 감당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셈법이다. 호남권 내 원전 등 안정적 전원의 직접 연계 수단을 서둘러 확보하고, ‘에너지 댐’ 역할을 할 초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병행 구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남 남부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남 북부로 실어 나르는 송전선로를 우선 확충하고, 원전이 밀집한 영남에서 호남으로 이어지는 동서축 초고압 송전선로 신설도 검토해야 한다. LNG 열병합발전소 추가 건설과 한빛원전의 차질 없는 수명연장까지 더해져야 재생에너지라는 돛에 보조 엔진을 달 수 있다.

둘째, 만성 가뭄 지역에 물의 보험을 들어야 한다. 전기가 반도체 공장의 신경이라면 물은 혈액이다. 최첨단 팹 한 기를 돌리는 데는 하루 수십만톤의 공업용수가 필요하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초순수 제조와 세정 공정에 쓰인다. 반도체 팹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물 먹는 하마다.

문제는 호남 지역이 기후변화로 최근 몇 년간 만성적인 가뭄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광주·전남의 든든한 탯줄이었던 주암댐마저 바닥을 드러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산강·섬진강 유역도 가뭄 때마다 물 배분 갈등을 겪어왔다. 이처럼 불안정한 국지적 수자원에만 반도체 클러스터의 미래를 걸 수는 없다.

참고할 만한 곳이 일본 구마모토다. TSMC 구마모토 공장 유치 이후 지역 정부는 물 부족 우려에 대응해 인근 기쿠치강에서 공업용수를 끌어올 수 있는 시설을 늘렸다. 반도체 업계와 지자체는 논에 물을 채워 지하로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지하수를 보충하는 사업도 함께 추진했다. 산업용수와 농업용수의 충돌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물 문제는 산업 대 농업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함께 순환시키는 협력 구도로 풀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호남도 다중 수원 전략으로 가야 한다. 영산강·섬진강 수계의 수처리 시설을 고도화하고, 하수 재이용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해 빗물 한 방울, 폐수 한 방울까지 다시 쓰는 순환형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기존 댐의 높이를 높여 물그릇을 키우는 용수 공급력 증대 사업도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몰 지역이 발생한다면 충분한 설득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구마모토처럼 지역 농업용수와의 상생 모델을 사전에 설계해야 갈등의 불씨를 줄일 수 있다.

셋째, 인허가의 정치적 병목을 뚫어야 한다. 국내 첨단 산업단지가 겪는 고질병은 기술이나 자금 부족이 아니다. 규제와 갈등이라는 늪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수 관로를 지나가는 이웃 지자체와의 갈등, 토지 보상 문제 등으로 기반 시설 구축이 수년씩 지연되는 진통을 겪었다. 호남 클러스터 역시 여러 지자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력망과 용수 관로를 놓아야 한다. 이해관계가 얽히면 제2의 용인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속도전이다. 경쟁국은 정부가 앞장서 땅을 파고 전기를 연결해 준다. 우리가 서류 도장을 받느라 몇 년을 허비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다. 대만 TSMC 가오슝 클러스터는 흩어진 승인 권한을 중앙에서 조정하고, 인프라 공사에 한해 환경·토지 심의 기간을 단축해 빠른 착공과 가동을 이뤄냈다. 우리도 전력망 연결과 용수 관로 개설에는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과지역 주민에 대한 정보공개와 보상, 환경 검증, 편익 공유를 함께 설계해야 속도전이 또 다른 갈등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다시 그릴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이 기회는 전기·물·땅·인재라는 네 변수가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만 현실이 된다. 애리조나가 재생에너지의 간판과 기저전력의 엔진을 함께 준비했듯, 구마모토가 산업용수와 농업용수를 상생시켰듯, 가오슝이 인허가 병목을 중앙에서 뚫어냈듯, 호남도 이 세 가지 해법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전력·용수·행정의 톱니바퀴를 맞물려 나간다면 호남은 제2의 가오슝이 될 수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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