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범죄 잇따라…역사갈등 틈타 극우 정치공세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약 100만명의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사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혐오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해묵은 역사 갈등이 최근 폭발한 틈을 타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반감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14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폴스키에라디오 등에 따르면 폴란드 검찰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발언을 한 혐의로 54세 폴란드인 남성을 체포했다.
비엘스코비아와 교통공사 직원인 용의자는 지난 11일 시내버스 안에서 11세 우크라이나 소녀 2명에게 "너희 우크라이나로 꺼져라"라며 성적 표현이 담긴 모욕 발언을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이 당시 버스 안을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며 규탄하는 등 파장을 일으켰다. 용의자는 회사에서 곧바로 해고됐다. 야로스와프 클리마셰프스키 비엘스코비아와 시장은 피해자 소녀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고 1년짜리 시내버스 탑승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청소년 3명을 집단 폭행한 폴란드 10대 5명이 체포됐다. 당시 피해자는 친구들과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던 중 10여명에게 공격받았다고 말했다. 라파엘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은 "우파 정치인들의 발언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며 민족주의 세력이 우크라이나 혐오를 선동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 정치비평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 25명을 면담해 낸 보고서에서 "거의 모든 인터뷰 대상자가 고조되는 반우크라이나 정서를 인식하고 있다"며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이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작년 5∼6월 대선에서 당선된 역사학자 출신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폴란드인 학살을 둘러싼 최근 역사 갈등에서 선봉에 나섰다. 1차 투표에서는 극우로 분류되는 스와보미르 멘트젠, 그제고시 브라운 후보의 득표율 합계가 21%를 넘었다.
폴란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은 약 150만명으로 이 가운데 약 100만명은 전쟁 이후 거처를 옮긴 피란민이다. 폴란드 우파는 피란민들이 모국과 폴란드를 오가며 지원금만 챙긴다고 주장하는 등 반우크라이나 정서를 부추겨왔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폴란드 정치인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는 혐오 선동을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우파 민족주의 야당 법과정의당(PiS)은 14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유럽통합에 긍정적인 도날트 투스크 내각은 폴란드 우선주의와 국민 정서를 앞세운 우파의 공세에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밀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폴란드 외무부는 최근 본격 시작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과 관련해 농업 등 민감한 분야에서 자국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폴란드에서는 전쟁 발발 이후 EU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관세와 수입할당량 제한을 폐지하자 농민들이 국경 도로를 화물차로 가로막고 시위를 벌인 바 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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