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는 단순한 스마트폰 부품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과 파운드리 경쟁력, 모바일 사업의 공급망 자율성을 동시에 시험하는 전략 자산이다. 그러나 퀄컴 스냅드래곤과의 성능·전력 효율 격차, 제한적인 외부 고객 기반, 지역별 AP 혼용에 따른 소비자 형평성 등의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삼성 엑시노스의 부진 원인과 삼성이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짚어본다. <편집자주>편집자주>
|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의 갤럭시 탑재를 확대하고 있다. 엑시노스는 삼성의 시스템반도체 기술력을 상징하는 제품이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 일부 세대에서 퀄컴 스냅드래곤보다 성능과 전력 효율, 발열 관리에서 뒤처진다는 평가가 반복되고 엑시노스 모델이 소비자 가격 측면에서도 뚜렷한 혜택 제공도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의 성능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개선됐다고 강조한다. 최신 엑시노스 2600은 삼성 파운드리의 2나노미터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적용하고 10개의 중앙처리장치(CPU) 코어와 자체 ‘엑스클립스 960’ 그래픽처리장치(GPU), 인공지능 연산을 담당하는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탑재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홈페이지에도 엑시노스 2600은 현재 양산 제품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엑시노스의 경쟁 상대는 이전 세대 엑시노스가 아니다. 같은 시기 출시되는 퀄컴의 최신 스냅드래곤과 CPU·GPU 성능, 발열, 배터리 효율에서 직접 비교된다. 전작보다 성능이 큰 폭으로 개선됐더라도 경쟁 제품보다 뒤처진다면 소비자 평가를 뒤집기는 어렵다.
최신 엑시노스 2600 역시 공정과 사양만으로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갤럭시 제품에 탑재된 뒤 같은 기기 조건에서 스냅드래곤과 비교한 장시간 게임 성능과 발열, 배터리 사용시간 등의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 발열·성능 논란에 불신 확대
엑시노스를 둘러싼 불신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20년 갤럭시 S20 시리즈 일부 지역 모델에 탑재된 엑시노스 990이다. 당시 갤럭시 S20은 판매 지역에 따라 엑시노스 990과 퀄컴 스냅드래곤 865를 나눠 적용했다. 해외 정보기술 매체와 이용자들의 비교 시험에서는 엑시노스 모델이 스냅드래곤 모델보다 게임 성능 유지력과 전력 효율에서 불리하다는 결과가 잇따랐다.
갤럭시 노트20 울트라를 시험한 해외 매체 와이어드는 엑시노스 990을 탑재한 영국 모델이 스냅드래곤 865 플러스 모델보다 전력 효율이 낮았으며 대용량 파일을 내려받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에서도 기기가 예상보다 뜨거워졌다고 평가했다. 엑시노스 990의 GPU가 고부하 환경에서 성능을 빠르게 낮추면서 프레임 유지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논란의 핵심은 단순히 벤치마크 점수가 낮다는 데 있지 않았다. 같은 ‘갤럭시 S20’이나 ‘갤럭시 노트20’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지만 거주 지역에 따라 핵심 부품과 실사용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소비자 불만이 집중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두 AP 사이에 의미 있는 성능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지만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또 지난 2022년 갤럭시 S22 시리즈에서는 게임 실행 시 발열과 전력 소모를 관리하기 위해 성능을 제한하는 게임최적화서비스(GOS) 논란이 불거졌다. GOS 문제의 원인을 엑시노스 하나로 돌릴 수는 없지만 갤럭시의 AP 성능과 발열 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운 사건이었다.
당시 국내 소비자 1882명은 삼성전자가 GOS에 따른 성능 제한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며 1인당 3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2025년 6월 소비자들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소송 제기 자체가 갤럭시의 성능 표시를 둘러싼 소비자 불만이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등장한 엑시노스 2200은 AMD의 그래픽 기술을 적용한 엑스클립스 GPU를 앞세워 반전을 노렸다. 하지만 일부 시험에서는 스냅드래곤 8 1세대보다 CPU와 GPU의 최고 성능이 낮게 측정됐다. 3D마크 고강도 반복 시험에서는 스냅드래곤 8 1세대의 최고 점수가 2597점, 엑시노스 2200은 2206점으로 나타난 사례도 있다. 다만 두 AP 모두 발열과 성능 저하 문제가 제기돼 엑시노스만의 문제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후 엑시노스 2400에서는 성능 격차가 상당 부분 줄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일부 실사용 비교에서는 엑시노스 2400이 스냅드래곤 8 3세대와 일상적인 사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차이가 주로 벤치마크에서 확인됐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는 엑시노스의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다는 근거다.
그럼에도 과거의 반복된 논란이 남긴 인식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엑시노스에는 단순한 성능 향상을 넘어 ‘같은 갤럭시인데 성능이 다르다’는 소비자 불신까지 해소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 같은 갤럭시인데 두뇌는 다르다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는 삼성전자가 같은 이름의 갤럭시에 지역별로 서로 다른 AP를 적용해 왔다는 점이다.
AP는 스마트폰의 CPU와 GPU, NPU, 이미지신호처리장치, 통신 기능 등을 통합한 핵심 부품이다. 애플리케이션 실행 속도뿐 아니라 게임 성능과 발열, 배터리 사용시간, 카메라 처리, 온디바이스 AI 성능까지 좌우한다.
갤럭시 S24도 지역에 따라 엑시노스 2400 또는 스냅드래곤 8 3세대를 탑재했다. 출고 당시 소비자는 같은 갤럭시 S24를 구매했지만 판매 지역에 따라 내부 AP가 달라졌다.
일상적인 통화나 메시지, 웹 검색에서는 차이를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장시간 게임이나 고화질 영상 촬영, 이동통신망 사용, AI 연산처럼 부하가 높은 환경에서는 AP의 최고 성능보다 발열 이후 성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하는지와 전력을 얼마나 적게 소비하는지가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지역별 AP 혼용에 따른 형평성 문제에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측은 본지 질의에 “제품에 문제가 있어야 형평성을 논할 수 있다”며 “사용자가 제품을 활용하는 데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가 제기하는 형평성 문제는 제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같은 제품명과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스마트폰에서 게임 성능과 배터리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 다르고 그 차이를 소비자가 구매 단계에서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와 경쟁사 AP를 탑재한 제품의 CPU·GPU·AI 성능과 발열, 배터리 효율이 동등한지를 묻는 질문에도 내부 검증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회사 측은 “사용자가 해당 제품의 역할에 맞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제품의 성능과 효율이 동등하다는 직접적인 답변 대신 정상적인 제품 사용이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것과 서로 다른 AP를 탑재한 두 제품의 성능이 동등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소비자, 가격 이점도 체감 어려워
엑시노스의 또 다른 약점은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퀄컴 AP 대신 자체 칩을 사용하면 외부 구매 비용과 로열티 부담을 낮출 수 있다. 퀄컴과 공급 가격을 협상할 때 엑시노스를 대체재로 활용해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체 칩이라고 해서 반드시 원가가 낮은 것은 아니다. 최첨단 AP를 설계하려면 대규모 연구개발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미세공정 도입 초기에는 수율이 안정되지 않아 정상 칩 한 개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높아질 수도 있다. 외부 고객과 출하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개발비를 여러 제품과 고객에 나눠 부담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엑시노스가 탑재된 갤럭시는 스냅드래곤 모델과 별개의 저가 제품으로 판매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지역에 따라 AP를 지정한 뒤 같은 갤럭시 제품군으로 판매한다. 엑시노스를 사용해 부품 비용을 줄였더라도 소비자가 출고가에서 절감 효과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가별 출고가에는 환율과 세금, 유통 비용, 보조금 등 여러 변수가 반영된다. 이에 엑시노스 판매 지역과 스냅드래곤 판매 지역의 가격을 단순 비교해 어느 쪽이 더 비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엑시노스 탑재를 이유로 소비자 가격을 명시적으로 낮춰주는 별도의 가격 정책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퀄컴과 삼성의 사업 구조에도 차이가 있다. 퀄컴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애플과 샤오미 등 다수의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에 칩과 통신 기술을 공급한다. 퀄컴은 2025 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샤오미가 각각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했다고 공시했다. 고객과 출하량을 다변화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분산할 수 있는 구조다.
반면 삼성전자는 엑시노스의 매출과 영업손익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는다. 엑시노스는 일부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도 공급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삼성 갤럭시의 내부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엑시노스 출하량은 중저가 갤럭시에 탑재된 제품을 중심으로 전년 동기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출하량 증가가 곧바로 사업 수익성 개선을 의미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삼성이 엑시노스를 키워야 할 산업적 이유는 분명하다. 퀄컴 의존도를 낮추고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을 확보하려면 자체 AP가 필요하다. 온디바이스 AI 시대에는 스마트폰과 소프트웨어, 메모리, 파운드리 공정, AP를 함께 최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에 필요한 기술이라는 사실이 소비자가 성능이나 배터리 효율의 차이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엑시노스가 ‘삼성의 아픈 손가락’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려면 전작 대비 개선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세대의 스냅드래곤과 대등한 성능과 전력 효율을 실제 갤럭시 제품에서 입증해야 한다.
동일한 제품명으로 판매하려면 소비자가 실제 사용 환경에서 체감하는 성능과 효율도 대등해야 한다. 성능 차이가 존재한다면 탑재 AP 정보를 구매 단계에서 명확히 알리고 가격이나 제품 등급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삼성의 기술개발 필요성과 소비자의 선택권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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