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해마다 여름이면 같은 풍경이 되풀이된다. 세종의 회의실에서 노와 사가 밤을 새워 시급 몇 백 원을 다투고, 어느 쪽도 웃지 못한 채 흩어진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2027년 최저임금은 30원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표결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 숫자를 '노동자의 승리'나 '자영업자의 부담'이라는 익숙한 한 줄로 요약하는 순간, 우리는 늘 그래 왔듯 절반만 보게 된다. 시급 380원의 인상은 세종 책상 위에서 끝나지 않고, 식품공장과 물류센터를 거쳐 마트 매대와 골목 편의점, 끝내 우리 밥상까지 번진다. 오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이 글은 그 두 개의 진실이 부딪치는 자리를 따라가며, 매년 반복되는 이 소모전이 실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숫자를 정하는 방식의 문제였음을 짚는다.
지난 14일 밤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 여덟 시간을 끌어온 심의의 끝에서 노사가 맞댄 최종안의 차이는 시급 30원이었다. 근로자위원은 1만730원을, 사용자위원은 1만700원을 마지막 안으로 냈다.
처음 1,680원이던 격차가 열 차례 넘는 수정 끝에 30원까지 좁혀졌지만, 그 30원은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표결 결과는 사용자안 15표, 근로자안 11표, 무효 1표. 2027년 최저임금은 올해(1만320원)보다 3.7%(380원) 오른 시간당 1만700원으로 확정됐다. 인상률이 3%대로 올라선 것은 4년 만이다.
권순원 최저임금위원장은 "30원 차이를 두고 표결로 결정하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노동계는 사실상 동결이라며 반발했고, 경영계는 동결을 관철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한 결정이다. 다만 이 30원짜리 표결에는 해마다 반복되는 물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임금을 올려야 할 이유와 올리기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똑같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협상은 없었다, 표만 세었을 뿐
이번 심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결정 방식이다. 열세 번을 고쳐 쓰고도 30원을 좁히지 못해 투표로 끝났다. 공익위원들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2.7%)를 하한 삼아 심의촉진구간(1만600~1만860원)을 제시하고 1만720원짜리 합의 권고안까지 내놨지만 소용없었다. 노사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부딪치고, 같은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진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틀 자체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인상의 명분은 분명하다. 최근 3년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2.37%로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2.66%)에 못 미쳤다. 말은 인상이었지만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었다. 노동계가 제시한 최저임금위 실태 생계비는 월 275만원 안팎인데, 올해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215만원(주 40시간·월 209시간)에 그친다.
생계비에 60만원 가까이 모자란 임금을 놓고 동결을 말하기는 어렵다. 저소득층의 주머니가 채워져야 얼어붙은 내수가 풀린다는 논리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최저임금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임금의 아래를 국가가 받쳐 주는 최소한의 선이다. 그 선마저 물가에 밀려 내려앉으면 제도를 둘 이유가 없어진다.
오른 시급은 원가를 타고 밥상에 닿는다
문제는 이 인상이 유통·식품업에서 곧장 원가로 바뀐다는 데 있다. 주휴수당을 더한 실질 시급은 이미 1만2,840원이다. 인건비는 식품공장 포장 · 검수, 물류센터 분류 · 상하차, 매장 진열 · 조리까지 상품이 소비자에게 닿는 모든 단계에 붙어 있다. 김밥이나 칼국수, 김치찌개처럼 값이 싼 메뉴일수록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몫이 커 시급 변동에 민감하다.
시점도 좋지 않다. 올 상반기 밥상물가는 고유가 · 고환율에 이미 크게 올랐다. 가공식품만 봐도 북어채가 1년 전보다 15.1%, 고추장이 12.1% 뛰었고, 삼겹살 1인분(200g 환산)은 2만1,000원을 넘어섰다. 최저임금이 밥상물가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오른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 몫은 가격 인상이나 용량 축소,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소비자에게 넘어간다. 값을 못 올리는 매장은 대신 사람을 줄인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나눠 쓰는 쪼개기 알바, 자정 이후 문을 잠그는 심야 무인 매장, 셀프 계산대와 물류로봇이 그 자리를 채운다. 임금을 올린 취지가 오히려 일자리 수를 줄이는 쪽으로 나타난다.
대구의 8,038원, 지켜지지 않는 법
이 딜레마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근로자 비율, 곧 최저임금 미만율은 12.4%로 2001년(4.3%)의 세 배 가까이로 높아졌다. 일부 업종은 30%를 웃돈다. 법정 시급을 올릴수록 이를 못 지키는 사업장이 늘어난다.
현장은 통계보다 선명하다.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선 지 3년째지만 대구 대학가 편의점에는 아직 시급 7,000~8,000원짜리 자리가 흔하다. 경북대 학보사가 인근 편의점을 조사했더니 응답한 23곳 중 13곳이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했고, 평균 시급은 8,038원으로 올해 최저임금보다 2,282원 낮았다.
한 점주는 면접에서 "편의점은 최저(시급) 안 주는 거 알고 지원한 거죠"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토론회에서는 2017년 최저임금 수준인 시급 6,500원을 받는 대학생 사례도 나왔다.
이 풍경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말한다. 청년에게 최저임금은 사실상 받을 수 있는 최고 임금이라 반드시 지켜져야 할 마지막 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조차 현장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빚에 눌린 자영업은 이를 감당하지 못한 채 편법으로 숨는다. 올 1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55조원, 연체액은 22조원으로 역대 최고다. 못 지킬 법은 힘을 잃고, 그 부담은 가장 약한 쪽으로 쏠린다.
정치는 어디에 있나
결국 답은 시급표에 몇 원을 더하고 빼는 데 있지 않다. 공익위원들도 이번에는 결정만 하고 끝내는 대신, 올 하반기 고용노동부에 최저임금 제도개선 추진단을 두고 적용 대상과 결정 기준을 다시 살피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해마다 부결과 표결을 되풀이해 온 업종별 구분 적용, 배달 라이더와 특수고용직을 겨냥한 도급제 적용이 다시 논의 대상에 오른다.
경영계의 요구도 이 지점에 모인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경제본부장은 15일 "지불 여력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숙박 · 음식업 등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무산된 점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업종별 구분 적용을 제도화하고, 결정 과정에서 사업주의 지불 능력과 생산성을 우선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 받는 청년층과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내놨다.
노동 존중을 국정 기조로 내건 이재명 정부의 처지는 간단치 않다.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지키겠다는 약속과 790만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이라는 현실을 함께 놓고 균형을 찾아야 한다. 경영계는 지불 능력을 결정 기준에 넣자고 하고, 소상공인 업계는 일자리안정자금 부활과 경영안정자금 확대를 요구한다. 이 요구에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답하느냐가 1만700원이라는 숫자보다 무거운 과제다.
고쳐야 할 것은 380원이 아니다
임금은 올라야 한다. 그러나 그 인상이 원가와 물가, 고용과 최저임금 미만율을 거쳐 되돌아오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해마다 30원을 표결로 가르는 방식으로는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지키지 못한다. 업종과 지역, 사업장 규모를 가리지 않고 같은 시급을 일괄 적용해 온 40년 된 틀, 그리고 오른 법정 시급과 대구 편의점의 8,000원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그 증거다.
손봐야 할 것은 시급표의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정하고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방식이다. 세종의 밤샘 표결이 남긴 진짜 숙제가 여기 있다.
조자경 경제산업2부장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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