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연택 기자
홈플러스는 멈췄다. 하지만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미국에서 고려아연 투자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국내에서는 대주주 책임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해외에서는 고려아연 프로젝트의 주역을 자처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책임보다 홍보가 앞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MBK와 영풍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호텔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을 주제로 리셉션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윤종하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MBK·영풍 관계자와 미국 현지 로비업체, 테네시주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MBK와 영풍은 자신들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Largest Shareholder Group)'으로 소개하며 프로젝트 지원과 협력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부회장은 MBK의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소개했고, 행사장에서는 MBK 홍보영상도 상영됐다. 영상에는 '좋은 회사를 인수해 더 나은 회사로 만든다'는 투자 철학과 함께 MBK·영풍의 협력 모델이 다양한 투자 프로젝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행사는 MBK가 미국에서 복수의 로비업체를 선임한 행보와도 맞물려 관심을 끌고 있다.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통해 스콰이어 패튼 보그스(Squire Patton Boggs), 더 매키언 그룹(The McKeon Group), 체크메이트 퍼블릭 어페어스(Checkmate Public Affairs) 등 미국 로비업체 3곳을 선임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리셉션 역시 미국 내 대외 여론전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논란은 행사 시점이다. 홈플러스는 운영자금 고갈로 지난 13일부터 전국 대형마트 영업을 임시 중단했다. 서울회생법원이 이달 3일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한 이후 긴급 운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정상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법원은 계속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으며, 오는 17일까지 회생계획 이행에 필요한 2000억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청산 절차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홈플러스 노동조합과 MBK 간 대화도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에 따르면 14일 예정됐던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과의 면담은 MBK 측이 당일 일정을 연기하면서 무산됐다. 노조는 긴급 운영자금 확보와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등을 요구할 계획이었으나 협의 자체가 불발됐다.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MBK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국민연금공단에 MBK 관련 투자와 위탁운용사 자격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권 역시 메리츠금융그룹의 긴급 운영자금(DIP) 2000억원 가운데 MBK가 1000억원에 대해서만 연대보증을 제공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채권 회수 불확실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MBK의 이번 행보가 과거 입장과 결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현 경영진, 기술진이 주도해 추진해 온 미국 투자 사업이다. 그러나 MBK와 영풍은 지난해 해당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의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반대하며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제동을 건 바 있다.
이와 관련해 MBK는 "미국 제련소 사업의 전략적 가치를 단 한 번도 부인하거나 반대한 적이 없다"며 "당시 가처분은 미국 투자 자체가 아니라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과 의사결정 절차의 적법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홈플러스 기업회생과 고려아연 투자는 성격과 주체가 전혀 다른 사안"이라며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서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최선의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미국 행사가 기존 행보와 상충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고려아연과 별도 협의 없이 미국 현지에서 자신들을 프로젝트 지원 주체로 부각한 데다, 프로젝트를 실제 기획·추진해 온 고려아연 경영진 및 기술진, 노동조합이 경영권 분쟁 초기부터 MBK·영풍과의 협력에 반대하며 현 경영진을 공개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 영업 중단과 청산 가능성, 노조와의 면담 무산, 정치권의 청문회 추진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고려아연 프로젝트의 핵심 협력 주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행사를 개최했다"며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고려아연 경영진과는 대립을 이어오면서 대외적으로는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듯한 메시지를 낸 것은 상반된 행보로 비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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