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망루를 지나 비포장 도로를 몇 분간 오른 끝에, 처음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자갈 틈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마치 몇 년째 차 한 대 드나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버려진 공영 주차장이었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공기는 눅눅하고 무거웠고, 사람들을 집 안에만 머물게 할 법한 그런 더위였다.
이렇게 우리는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이라 불리는 이곳에 첫발을 들였다.
주차장 한편에는 작은 마을 사무소가 있었다. 그 앞에 몇몇 주민들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서자 그들의 눈빛은 곧바로 날카로워졌다. 인사를 건네도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기자예요?" 누군가 물었고, 그렇다고 답하는 순간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기자 많이 봤어요. 근데 말해봐야 뭐가 돼요,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화재로 집을 잃은 주민들도, 사무소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화재가 날 때마다 방송사 카메라들이 몰려와 이곳을 "서울의 마지막 슬럼"이라 부르며 촬영하고는, 몇 시간 뒤 그대로 떠나갔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마을은 다시, 있던 그 자리 그대로 남았다.
다들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몇몇은 아예 먼발치에 서서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 경계하고 주시해야 할 눈엣가시였다. 그날도, 그다음 날 다시 찾았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곳곳의 판자촌이 정비되며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그렇게 성장해 1지구부터 8지구까지, 아홉 개의 지구로 나뉠 만큼 거대해졌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버려진 쓰레기 더미와 폐지 고물 수거장을 지나 10분 남짓을 걸었고, 이윽고 작은 우체동 몇개가 나타났다. 손수 만든 듯 한, 아직도 우편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분명한 소박한 우체통이었다. 근처 벽에는 파란 스프레이로 쓰인 정체 모를 숫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의미는 나중에 설명을 더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집들은 "협소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좁고 다닥다닥 붙어 있엇다. "집" 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구조물이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사는 따뜻한 집이었다.
한 판자에는 "7-15-1 공가 폐쇄 무단 훼손시 법적(형법 140조) 조치함 2026.5.5"라고 검은 글씨로 눌러쓴 경고문이 있었다.
그 위에는 초록 테이프로 고정된 공식 안내문도 함께 붙어 있었다: "7지구 15동 1호 거주자의 임시이주에 의해 공가 폐쇄된 간이공작물로서 무단침입 또는 훼손시에는 형법 제319조(건조물침입) 및 제366조(재물손괴)에 의하여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손글씨의 거친 경고와 관공서 특유의 건조한 문체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이 마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사람이 떠난 자리마다, 이렇게 하나씩 못이 박혀갔다.
여기서부터 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구불구불하고 길게 이어졌다. 이 좁은 길들을 따라 걷는 내내 우리는 어느 아이가 한떄 가지고 놀았지만 다시는 찾으러 오지 않는 물건들과 계속 마주쳤다.
세워둔 채 버려진 자전거, 잡초에 반쯤 파묻힌 장난감 자동차,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듯한 색 바랜 작은 물건들. 한떄 이 골은 누군가의 등굣길 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아이들은 이제 다른 어딘가에서,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을뿐. 구룡마을이 진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지점부터였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와 습기가 뒤섞여 뿜어져 나오는 악취에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좁은 길목 어딘가를 지나던 초반, 우리는 화장실 하나를 발견했다. 굳게 닫힌 나무문 뒤에는 제대로 된 변기 대신, 그나마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개조해 만든 양변기가 있었다.
아무 설명도 듣기 전에, 이 물건 하나가 이미 구룡마을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것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도에 존제하지 않던곳의 기초시설이란 게 어떤모습인지를. 그러다 저 멀리 차가 다닐 만한 크기의 자갈길이 보였고, 우리는 무릎 높이까지 자란 풀숲을 헤치며 모기와 벌레들과 싸우면서 그 길까지 나아갔다.
그 길을 따라 조금 걷자 화재민들의 쉼터처럼 보이는 텐트가 나왔고, 그 뒤로는 백 평이 넘는 부지 전체가 파란 방수포로 덮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지난 1월 4지구에서 일어난 화재의 현장이었다. 한 평 남짓한 방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한순간 번진 불은 몇 년에 걸쳐 쌓아온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저 방수포는 그 한순간의 증거이자, 그들이 치열하게 지켜온 모든 것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방수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검게 타버린 집 한 채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다. 무너진 벽 너머로, 미처 꺼내지 못한 책들이 그을린 채 놓여 있었고, 새까맣게 탄 가전제품과 카세트테이프도 함께였다. 모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난은 그때마다 잠시 이 마을을 저녁 뉴스로 되돌려놓을 뿐이었다. 세상의 관심이 식으면, 불탄 집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주민들은 화재를 두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집들은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은 너무 좁고, 지어진 재료는 너무 쉽게 타올라서, 다음 화재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다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고, 더 높은 곳에서는 철망으로 둘러싸이고 이끼 낀 담요를 지붕 삼은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치열하게 지켜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쓰레기 더미 사이를 지나며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주민들이 끝까지 쓰려고 쌓아둔 연탄들과 그 옆에 놓인, 이미 다 타버린 채 푸른 이끼가 올라온 연탄재였다. 다가올 겨울을 또 한 번 나기 위한 준비였다.
손바닥만 한 거미들과 모기떼, 벌레들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구룡마을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풍경과 마주했다. 한쪽에는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가 싶은 풍경이, 같은 시선 안 다른 한쪽에는 시가 40억 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이질적이고 씁쓸한 그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1988년 가장 먼저 사람들이 정착한 1지구로 향했다.
곳곳에 깨진 창문 너머로 이주하며 미처 챙기지 못한 살림살이가 보였고, 한때는 붐볐을 미용실은 문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사이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있었다: 현수막들.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라 믿는 것을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개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닥칠지 모르는 채, 그럼에도 오늘을 버텨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이틀, 사흘을 거듭 찾아가면서도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주민들의 태도는, 우리가 같은 길을 몇 번이고 오가고 같은 얼굴들을 몇 번이고 마주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도 마주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먼저 알은체를 하거나 짧게 말을 건네오기도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마을로 들어오는 만물상 트럭과도 마주칠 수 있었다. 생필품은 물론이고 신발, 옷, 부채, 성냥까지, 그야말로 온갖 것을 실은 트럭이었다. 한 주민은 그 트럭에서 쥐약을 사며, 요즘 나오는 쥐약은 쥐가 잘 죽지 않는다며, 예전에 쓰던 것으로 달라고 부탁했다.
그 주변에는 우리가 아무리 걸어도 찾지 못했던 주민들이 한두 명씩 모여 앉아 트럭에 실린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작은 슈퍼가 보였는데, 다른 여느 슈퍼와 다름없이 도시 어디서나 볼 법한 식료품과 과자,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그 안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둑한 가게에 홀로 앉아, 들어서는 우리를 조용히 반겨주셨다.
저녁이 되자 또 다른 종류의 을씨년스러움이 찾아왔다. 몇 개 없는 가로등이 겨우 길을 밝히는 가운데, 저 멀리 한 건물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빛나는 십자가였다.
마치 홀린 듯, 우리는 모기에 물리는 것도 잊은 채 그 빛을 따라 올라갔다. 낮에 보았던 빈부의 대비는 밤이 되자 더욱 선명해졌다: 한쪽에는 강남 아파트 단지의 눈부신 불빛이, 다른 한쪽에는 몇 안 되는 가로등이 겨우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구룡마을이 있었다. 나오는 길에 본 풍경은 낮과는 달랐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자동차들이, 퇴근시간이 지나자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집들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개발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고, 화재는 언제 다시 날지 알 수 없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이곳 사람들은 연탄을 쟁여두고, 지붕을 고치고, 쥐약을 바꿔 사며, 오늘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구룡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사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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