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내역 미공개 꼼수…디자이너들 분통
출근 통제·퇴근만 재량…변질된 노동 제도
잠실 롯데월드몰에 입점한 젠틀몬스터 매장. /연합뉴스
[포인트경제] 재량근로시간제 운영 과정에서 임금체불이 적발돼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던 젠틀몬스터 운영사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체불임금 정산 과정에서 구체적인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정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시정지시에 따라 미지급 수당을 지급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전환했지만, 정산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서 전·현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산정 기준도 없다"…디자이너들 "납득 어려운 정산"
이번 논란의 핵심은 체불임금 산정의 투명성이다. 주 70시간 이상 근무하며 야근을 반복했던 일부 전·현직 디자이너들은 소급 지급액이 수천 원에서 수만 원 수준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급액 자체보다 개인별 야근 인정 시간과 시급 산정 방식 등 구체적인 계산 근거가 공개되지 않은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감독 결과에 따른 체불임금 세부 산정 내역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의무 규정이나 처벌 조항은 없다. 노동계는 이 같은 법적 공백 때문에 사측이 정보를 독점하고, 결과적으로 근로자가 지급액의 적정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한다.
▲ 현장 면담 없는 '형식적 감독'… 노동계 "실질적 재량권 박탈당한 것"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노동부의 형식적인 근로감독이 결과적으로 사측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노동부는 3년 치 체불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본 전·현직 디자이너 등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 면담이나 실태 조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은 채, 사측 관계자만 만나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의당 노동·시민단체 '비상구'에서 활동하는 최미숙 공인노무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재량근로시간제는 서면 합의 여부보다 근로자가 실제로 노동시간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며 "출근은 통제하면서 퇴근만 재량으로 운영됐다면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통카드 이용 내역이나 메신저 업무 지시 기록 등은 사용자의 실질적인 지휘·감독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상구 역시 최근 성명을 통해 "피해 노동자들을 배제한 채 사업주가 제출한 자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교통카드 이용 내역과 사내 메신저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대조해 확인했어야 했다"고 노동부의 부실 감독에 강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비상구는 체불임금 지급 과정에서 개인별 산정 기준과 세부 내역이 완전히 은폐된 점을 지적하며,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 후속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노무사는 사측의 꼼수 정산에 불복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근로감독과 개별 진정은 절차와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르다"며 "정산 결과에 이의가 있다면 교통카드 이용 내역, 메신저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개별 진정이나 민사 절차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주요 노동관계법 위반 현황. /자료=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AI 생성 이미지.
▲ 눈가림식 제도 개선…“진정한 권리구제 이뤄져야”
이번 사안은 재량근로시간제의 실제 운영 방식뿐 아니라 체불임금 산정의 투명성과 근로감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체불임금 정산의 투명성과 재량근로시간제 운영을 둘러싼 의문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젠틀몬스터가 구축해 온 브랜드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청년 디자이너들의 장시간 노동과 보상 문제에 대해 회사가 보다 투명한 설명과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회사는 논란이 일자 재량근로시간제를 폐지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등 뒤늦게 노무관리 전반에 대한 개선 작업에 나섰다. 고용노동부 역시 연차 사용 방식 등 이행 여부를 지속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동계와 전·현직 노동자들은 사측의 이 같은 조치가 '보여주기식 면피'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핵심인 '체불임금 산정 기준 공개'와 이에 따른 실질적인 추가 권리구제가 이뤄지지 않는 한, 젠틀몬스터를 둘러싼 '깜깜이 정산' 논란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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