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가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기는 영리한 게임을 시작했다. 구글 인공지능(AI) 서비스 제미나이를 활용해 ‘채널십오야’ 막내 PD들과 기획 대결을 벌이고, 결과를 대중의 평가에 맡긴 것이다.
나 PD는 AI의 도움 없이 오직 종이와 펜만으로 기획을 짠다. 겉으로는 ‘인간 vs AI’ 혹은 ‘선배 vs 막내’의 대결 구도이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모두가 얻는 것이 분명한 구조다. 막내 PD는 자신의 기획력을 마음껏 펼치고 나 PD는 여전히 통하는 연출 감각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화 카리나 편의 반전: ‘익숙함’을 비튼 기획의 힘
나영석 PD 사단으로 구성된 제작사 에그이즈커밍의 자체 유튜브 채널 ‘채널십오야’에서 진행하는 해당 콘텐츠는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첫 회의 주인공은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다. 평소 ‘채널십오야’에 자주 출연해 익숙한 출연자인 만큼 기존과 다른 매력을 발굴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흥미로운 점은 대중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였다. 나 PD가 연출한 ‘현실에서 카리나인 내가 이세계에선 21살 지민이?’는 조회수 131만 회를 기록했고, 막내 PD의 ‘멧갈라 말고 맷돌갈라’ 역시 조회수 115만 회로 바짝 추격했다.
영상 조회수에서는 나 PD가 앞섰지만, 온라인 투표에서는 막내 PD가 더 많은 득표를 얻었다. 시청자 상당수가 막내 PD의 기획을 나 PD의 작품으로 착각하면서 막내 PD가 온라인 투표에서 앞서는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좋아요 수 등 각각의 비율 가중치를 합산한 최종 승자는 나 PD였다. 하지만 1화부터 대중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 흐름이 펼쳐지며 이번 대결은 단순한 조회수 경쟁을 넘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특히 막내 PD가 기획한 ‘멧갈라 말고 맷돌갈라’는 나영석 PD 특유의 연출 문법을 높은 완성도로 구현해냈다. 잔잔하고 무해한 흐름은 물론 제작진이 출연진과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션을 툭 던지는 방식도 닮아 있었다. 여기에 에그이즈커밍 이명한 대표를 미션 조력자로 배치한 디테일까지 더해지면서, 많은 시청자가 해당 영상을 나 PD의 기획으로 착각할 만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막내 PD는 제미나이를 활용해 카리나의 멧갈라 참석, 콩국수를 좋아하는 취향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기획에 반영했다. 나 PD는 제미나이의 도움 없이도 그동안 카리나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추며 쌓은 이해도와 다수의 예능을 기획·연출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적극 활용했다.
최근 트렌드인 웹소설 형식을 차용한 제목부터 GPS 기반 게임과 드라마 문법을 결합한 연출까지 기존 나 PD의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콩콩팥팥’ 같은 예능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방식이었다. 익숙한 스타일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문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역 연출자로서의 감각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 2화 ‘하와수’ 대결: 단순 승패 넘어선 ‘AI 추리전’
2화의 주인공은 MBC ‘무한도전’의 전설적인 콤비 ‘하와수’ 박명수와 정준하다. 이번에도 색깔은 확연히 갈렸다.
먼저 실시간 라이브 채팅을 활용한 ‘술래잡기’ 콘텐츠는 과거 ‘무한도전’의 레전드 특집인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를 연상시키며 재미를 선사했다. 또 다른 콘텐츠인 ‘내 친구의 악플을 소개합니다’에서는 과거 두 사람이 서로에게 했던 막말을 악플로 위장한 뒤, 정작 본인이 뱉었던 말을 스스로 읽고 대변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앞서 1화 카리나 편에서 대중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던 만큼, 이번 대결 역시 베일이 벗겨지기 전까지는 승패를 예단하기 어려웠다. 시청자들은 단순한 시청을 넘어 “어떤 콘텐츠가 AI의 도움을 받은 결과물인가”를 날카롭게 추리하며 대결 자체를 하나의 ‘놀이 문화’로 소비했다.
지난 14일 공개된 결과에 따르면 ‘술래잡기’가 나영석 PD, ‘악플 소개’가 막내 PD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현재 수치상으로도 ‘술래잡기’(조회수 51만 회, 좋아요 3만 개)가 ‘악플 소개’(조회수 34만 회, 좋아요 7000개)를 상대로 확실한 판정승을 거뒀다.
이로써 두 번째 라운드 역시 나영석 PD의 우승으로 돌아가며 그의 연출 감각이 다시 한번 증명된 가운데, 마지막 대결 주제가 공개됐다. 최종 라운드의 주제는 바로 ‘나영석 본인’이다. 나 PD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콘텐츠화할지, 또 막내 PD는 선배이자 직장 상사인 나 PD를 어떻게 다루어 낼지 마지막 라운드에 관심이 쏠린다.
◇ “다가올 미래와의 협업”...‘나영석 사단’이 진화하는 방식
에그이즈커밍 심창민 PD는 일간스포츠에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다가올 미래이자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며 “AI 시대에 예능이 이를 어떻게 다루고 활용할 수 있을지 제작진 내부적으로도 호기심이 컸다”고 전했다. 이어 “때마침 구글 제미나이와 협업할 기회가 생겼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서바이벌’ 장르와 결합해 이번 기획을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역시 이번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 평론가는 “나영석 PD가 과거 지상파 연출 시절에는 다소 진부하다는 지적도 받았으나, 독립 이후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과감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트렌디하게 변주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나 PD는 본인이 전면에 나서는 데 그치지 않고 후배 연출자들을 끊임없이 양성하고 출연시킨다”며 “이는 대중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나영석 사단’이라는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는 영리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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