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전국 곳곳에서 극심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농업과 소규모 건설업 등 뙤약볕에 상시 노출되는 야외 고위험 업종에 집중된 이주노동자들이 온열질환 등 폭염 피해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국적과 고용형태를 가리지 않는 폭염 대응 대책을 마련하고 작업중지권 등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보호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연일 폭염이 계속되면서 야외 작업 중 이주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8시 18분께 충남 홍성군의 한 축사에서 네팔 국적의 30대 노동자 A씨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당시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오른 점 등을 고려해 온열질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4일에는 충북 괴산군의 한 조림지에서 풀베기 작업을 하던 베트남 국적의 20대 노동자 B씨가 온열질환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새벽 끝내 숨졌다.
질병관리청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외국인 온열질환자는 249명으로 5년 전보다 약 5배 급증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았거나 증상이 경미해 병원 응급실을 찾지 않아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이주노동자까지 고려하면 온열질환 피해 규모는 공식 집계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
질병관리청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외국인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온열질환 중증화 위험이 높은 집단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이주노동자는 국내 취업자의 3~4%에 불과하지만 산업재해 사망사고 비중은 1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폭염을 비롯한 산업재해에 더욱 취약한 실정이다.
문제는 농업과 건설업, 제조업 등 폭염 노출 위험이 높은 산업 현장에서 인력 부족이 심화하면서 이주노동자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농어촌 현장에 배정된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11만7113명으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는 농어촌과 산업 현장을 유지하는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정작 폭염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 현장의 필수 인력으로 활용하면서도 정작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셈이다.
이주노동자가 폭염 등 기후재난에 취약한 이유로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 제도적 사각지대 등이 꼽힌다.
경북연구원 권용석 박사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경북 이주노동자 폭염 보호망 3축 구축안’을 보면 농업과 소규모 건설업 등 뙤약볕에 장시간 노출되는 야외 고위험 업종에 이주노동자가 집중돼 있다. 특히 고용허가제(E-9) 특성상 사업장 변경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폭염 속에서도 스스로 작업을 중단하거나 열악한 근무환경을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주거환경 역시 폭염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상당수 이주노동자는 비닐하우스 내부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등 단열이 취약한 가설건축물에서 생활하고 있어 야간에도 열이 식지 않는 열대야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세 농가의 경우 전기요금 부담 등을 이유로 냉방기 사용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사례도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재해 보상과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5인 미만 영세 농가의 산업재해보험 가입률이 낮아 온열질환이 발생해도 적절한 보상과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은 데다 폭염 대응 안내가 한국어 중심으로 제공되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정보 접근성에서도 소외돼 있는 실정이다.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규칙 개정을 통해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하도록 했고 올해는 18개 언어로 제작한 폭염 예방수칙을 배포하는 등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관계법 적용이 미치기 어려운 영세 농가와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이 같은 규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사례가 많아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 박사는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집중된 농촌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도 필요하다”며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점검과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여건에 맞는 폭염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현장 점검과 보호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해외에서는 폭염을 노동 안전 문제로 보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사업주의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산업안전보건청(Cal/OSHA)을 통해 기온이 82℉(약 27.8℃)에 도달하면 고용주가 야외 근로자에게 식수와 그늘, 적정 휴식 시간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주에게 행정 처분 등 강력한 제재를 부과한다.
일본 역시 폭염에 따른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해 노동안전위생규칙 개정을 통해 기온과 습도를 반영한 열지수(WBGT)에 따라 작업 환경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현장에는 실시간 측정 장비와 냉각조끼 등 온열질환 예방 장비 보급도 확대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별도 안전 지침도 운영 중이다.
국내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현장 중심의 폭염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남 보성군은 전남노동권익센터와 협력해 농가를 직접 찾아가 시원한 음료와 안전용품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북 임실군 등도 폭염특보 발령 시 무더위 시간대 야외 작업 중단을 권고하는 등 지역 여건에 맞춘 선제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주노동자는 한국 산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인력임에도 가장 힘들고 위험한 작업 현장에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가 마련한 폭염 대책은 영세 농가와 소규모 사업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염 시 휴식과 그늘, 식수 제공 등 기본적인 보호조치조차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리·감독을 강화해 안전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고 무엇보다 노동자가 안심하고 작업을 중단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다국어 예방수칙도 배포뿐만이 아니라 실제 이주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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