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시든 꽃잎처럼 온몸이 가열돼 힘이 빠진다. 작열하는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옥탑방이니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시외버스가 비포장 신작로를 달릴 때 돌담 위의 호박꽃과 초가지붕 위의 박꽃마저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축 늘어진 풍경이 기억난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송사리도 잡고 밤엔 가재잡이도 했다. 무엇보다 참외 서리, 수박 서리는 아슬아슬한 추억이다. 지금이라면 허용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이지만 그땐 참외밭 주인도 눈감아 줄 만큼 허술한 감시를 했던 것 같다. 살쾡이에게 닭을 잃거나 멧돼지에게 채소밭이 망가지는 것과 다른, 인간이라는 애민정신, 박애정신이 발동했을까. 넓은 수박밭 가운데 원두막이 있고 길가의 미루나무에서 종일 매미가 울던 시골 풍경이 초등학교 여름방학 책처럼 그립다.
간혹 오래된 집이 헐리기도 하지만 교동 구시가지는 아직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향교 앞 인쇄골목의 춘천메밀막국수가 공원 조성 공사로 사라졌다. 사철 자주 들락거리던 집이다. 겨울이면 따뜻한 무쇠 난로가 바깥으로 연통을 내밀고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냈다. 난로 위의 누런 주전자엔 메밀 삶은 물이 구수하게 김을 내뿜었다. 이 집은 사라졌지만 나는 그림과 글로 그때의 모습을 기록해 뒀다. 물론 이사한 팔달산 자락, 언덕 위의 이 집도 가끔 들른다. 점심시간이면 예전처럼 긴 대기 줄을 서야 한다. 차곡차곡 시간의 무늬를 다시 새겨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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