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영은 이중언어 사용자다. 중국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열 번 남짓 이사를 했다. 사이에 낀 경계인으로서 정체성 혼돈의 성장통을 겪기도 했으나 문학을 접한 뒤로는 혼돈이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영토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문학 중에서도 가영은 한국문학에 관심이 많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국 현대시에 대한 열망을 오랫동안 품어 왔다. 틈틈이 시를 쓰고 번역도 하면서 난징대 한국어문학과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공부하는 내내 더 많은 한국시를 접하고 싶었으나 중국어로 번역된 한국 시집은 30여종에 지나지 않는다. 김소월, 윤동주로부터 시작해 가장 젊은 시인이 원로급의 문정희 시인이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번역가다. 일상의 언어로 시인은 언어 너머의 자연과 무, 침묵의 세계를 옮겨온다. 거기엔 명명되지 못한 존재의 그늘, 조명받지 못한 세계의 그늘도 함께한다. 번역가로서 시인은 실패가 숙명이다. 꽃의 자태와 향기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 옮겨오길 시도하지만 언어로 굳어지는 순간 찰나의 황홀은 이내 최초의 생생한 실감을 잃고 박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균열을 외면하지 않는 감각으로부터 미적 도약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벽을 만난 담쟁이 넝쿨처럼 벽 앞에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벽을 타고 넘는 동력이 번역의 경이라면 어떨까. 비록 시의 번역은 시의 반역이라는 비아냥이 있지만 번역문학으로서의 독자성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산둥대에서 ‘한국문학번역워크숍’ 소식이 들려왔다. 난징대뿐만 아니라 베이징외국어대를 비롯해 한국어문학과가 개설된 여러 대학이 함께 워크숍에 참여한다. 한국에선 소설가 조경란과 시인 손택수가 초대됐다. 작가와 시인에게 작품의 창작 배경을 직접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의 굴절이나 변형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번역가로선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즉석에서 해소할 수 있다.
며칠 동안 소설반과 시반으로 나뉘어 진행된 워크숍은 제남의 표돌천 샘물처럼 그칠 줄 모르고 밤늦도록 이어졌다. 번역은 느린 독서가 전제인 만큼 제목에서부터 조사 하나까지 토론하고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씨름했다. 시반에선 ‘첫눈이 폭설이었다’는 시구에 스민 연애의 감정을 어떻게 옮겨올 것인가를 두고 오랜 고민을 했다. 시인은 가능하면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직역을 추천했으나 마땅한 어휘를 찾지 못해 의역을 해야 했다. 아버지에 관한 시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시인이 ‘아버지의 등을 밀며’를 낭독해줬을 땐 동석한 지도교수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잠시의 침묵 가운데 시인은 이것이 시가 지닌 울림의 힘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시는 뜻과 주제와 이해를 넘어 어떤 분위기와 느낌, 울림을 큰 축으로 한다고 말이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서로 다른 언어가 서로를 향해 열리면서 새로운 장을 형성하는 힘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후원하는 이 워크숍은 3년 동안 지속할 예정이다. 워크숍의 산파로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권영민 교수에 따르면 오래전 미국에서도 같은 맥락의 워크숍이 있었는데 거기에 참여한 학생이 한강의 소설을 번역하면서 노벨상에 이르는 길을 텄다. 이 워크숍은 한국문학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매개가 될 것이 틀림없다.
가영은 가을에 서울로 박사과정 유학을 온다. 워크숍의 열기를 이어 한국의 젊은 시들을 만나볼 예정이다. 최근 각종 해외 문학상 수상의 성과를 보인 한국의 여성시가 세계문학과 만나는 현장을 엿볼 기대도 크다. 그 사이 한국문학번역원은 정규 학위과정을 개설한다고 한다. 중국의 친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번역에서 소외된 지역문학의 소개 역시 관심을 가져볼까 한다. 한국문학 번역이 스타 작가나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소수민족으로서 살아온 가영에겐 너무나 절실한 대목이다.
그나저나 초청 문인들은 잘 돌아갔을까. 산둥항공 비행기가 이륙하면 선반 모니터에 송나라 때 활동한 시인 이청조의 캐릭터가 뜨면서 각종 안내를 한다. 가영은 자신의 번역이 문학에 날개를 다는 일이 되길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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