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이 결승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또 하나의 월드컵이 막을 올린다. 70여개국이 국가대표팀을 보내 예선전과 토너먼트로 겨루는 11일간의 세계학생토론대회(WSDC), 38년 역사의 ‘토론 월드컵’이다. 축구 대표팀은 아쉬움과 논란 속에 일찍 여정을 마쳤지만 이 여름 또 하나의 한국팀이 국가대표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뛴다.
이 글이 실릴 즈음 필자 역시 나이로비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곧 심사석에 앉는다. 2004년 최초의 한국 국가대표팀을 선발해 코치로 처음 참가한 이래 심사위원으로, 심사위원장으로, 2010년부터는 본부 이사로 이 대회와 함께해 왔다. 2007년에는 서울에서 개최를 이끌기도 했다. 그 첫 팀 이후 올해 나이로비에 서는 한국 대표팀은 스물세 번째다. 일찌감치 2006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8강 진출로 돌풍을 일으킨 역사도, 해마다 토너먼트에 오르거나 아깝게 놓치기를 반복해 온 여정도 한국 축구 대표팀과 닮았다. 2024년에는 다시 8강에 오르며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고 올해 성적도 기대된다.
이 대회의 규칙은 늘 의미심장하다. 참가팀은 자신의 신념과 무관하게 찬성 혹은 반대, 배정된 입장을 논증해야 한다. 여덟 번의 예선 가운데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논제는 두 번, 나머지는 한 시간 전에야 공개되는 즉석 논제다. 깊이 준비된 내 주장을 다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편의 가장 강한 논리까지 빠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20년, 심사석에서 지켜본 승자는 언제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팀이 아니라 반대편을 가장 깊이 읽어낸 팀이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말은 어느 때보다 넘치지만 대화는 드물다. 온라인 공론장은 논증 대신 진영으로 갈리기 일쑤이고 교실은 여전히 정답을 빨리 맞히는 훈련에 익숙하다. 반박하되 경청하고, 이기되 존중하는 ‘잘 다투는 법’을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
미국 교육에서 토론은 기본기이자 특기이기도 하다. 많은 대학이 장학금을 걸고 토론 인재를 뽑는다. 필자가 몸담은 조지메이슨대(GMU)도 그 전통의 한가운데에 있다. 1974년 창단된 토론팀은 전미 랭킹 최상위권을 지켜 왔고 지난해에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가 60년간 이어온 전국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 트로피 ‘소드’를 들어올렸다. 경쟁이 전부가 아니다. 버지니아주 최대 규모의 중고교생 디베이트 캠프를 직접 운영하며 토론을 소수의 스펙이 아닌 지역 청소년의 시민 훈련으로 넓혀 왔다.
같은 DNA가 송도에도 이식되고 있다. 나이로비가 고교생의 무대라면 대학생의 무대는 이달 초 호주 울런공에서 먼저 열렸다. 1975년 시작된 아시아·태평양 최고 권위의 대학 토론 챔피언십 ‘오스트랄스’에서 지난해 창단한 메이슨코리아 토론팀이 EFL(영어를 외국어로 사용) 부문 결승전 무대에 섰다. 창단 1년여 만의 성과다. 여기에 5월 평생교육법 개정에 힘입어 미국에서 여름마다 운영하는 디베이트 캠프를 송도에서 국내외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열 계획이다.
월드컵의 트로피는 한 팀만 들어올린다. 그러나 모든 참가자가 가져가는 것이 있다. 반대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경험이다. 그 경험이 흔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필자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2002년 축구의 함성을 기억하는 이 나라에 토론 월드컵을 다시 송도로 불러오는 일이다. 그 함성 속에 자란 세대들이 세계가 주목하는 오늘의 역동적인 한국을 만들고 있듯이 이곳에서 자랄 아이들이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고 존중하면서 반박하고 조율할 줄 아는, 우리의 내일을 이끌어 갈 주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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