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도 미국 증시 진출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의 접근성 확대와 기업가치 재평가 측면에서 미국 상장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자금 조달 필요성과 사업 구조, 규제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라는 평가다.
14일 삼성전자는 미국 ADR 상장 가능성과 관련해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시장 기대와 반대되는 결정이나, 재계와 학계에서도 삼성전자가 단기간 내 미국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미국 상장을 통해 AI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재원 확보와 글로벌 투자자 기반 확대를 노릴 수 있지만, 삼성전자는 미국 상장 이후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부담 요인을 함께 따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미국 나스닥에서 ADR 거래를 시작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에 진입했다. 공모 규모는 265억달러(약 40조원)로, 외국 기업의 미국 기업공개(IPO)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이다. 조달 자금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 확대와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 첨단 패키징, 극자외선(EUV) 장비 투자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AI 메모리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자본시장을 활용해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투자자 기반까지 확대했다는 평가다.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상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가 효과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서 해외 투자자 기반을 확보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자금 조달 능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왕수봉 교수는 “삼성전자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도 충분한 투자자 기반을 갖추고 있고, 자금이 필요하더라도 국내 조달이나 해외 금융기관을 통한 방법이 있어 미국 상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복합적인 사업 구조 역시 미국 상장을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 기업이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 생활가전,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상장 이후 관리해야 할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황용식 교수는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사업 포트폴리오가 넓고 미국 시장에서 설명해야 할 사업 구조와 리스크 범위도 크다”며 “미국 상장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기업 전체 관점에서 비용과 효과를 따진 전략적 판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 역시 “삼성전자는 여러 사업부와 이해관계자가 연결돼 있는 만큼 미국 상장 이후 발생할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단순히 반도체 기업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판단 요소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미국 증시 상장 이후 발생하는 규제 부담도 고려 요소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에 따라 연차보고서인 ‘Form 20-F’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에서 공개한 주요 정보와 주주 대상 중요 사항도 ‘Form 6-K’를 통해 미국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재무제표와 내부통제뿐 아니라 경영진 보상, 특수관계인 거래, 기업지배구조 등 경영 전반에 대한 정보 공개 요구도 커진다. 특히 삼성전자는 삼성물산·삼성생명 등 계열사가 얽힌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미국 시장에서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SK하이닉스는 SK스퀘어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 비교적 설명 부담이 낮다는 평가다.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윤선중 교수는 “기업이 해외 상장을 추진하는 이유는 자본 비용을 낮추거나 추가 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며 “삼성전자는 미국 상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와 SEC 규정 대응, 거버넌스 측면의 부담을 종합적으로 비교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삼성전자가 이미 해외 투자자가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미국 상장의 필요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삼성전자 보통주와 우선주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있으며,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서는 글로벌주식예탁증서(GDR)가 거래되고 있다. 미국 시장에 별도 ADR을 발행하지 않더라도 해외 투자자가 삼성전자에 투자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다는 의미다.
다만 삼성전자가 미국 상장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을 넘어 해외 투자자 확대와 글로벌 현지화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SK하이닉스 사례를 보면서 삼성도 기존 판단이 옳았는지, 수정할 부분이 없는지 검토하는 과정은 필요할 수 있다”며 “미국 상장은 자금 조달뿐 아니라 미국 시장 진출과 해외 현지화 전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전략적 의사결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삼성전자에게 미국 상장은 현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전략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자금 조달 필요성이 크지 않은 데다 사업 구조와 규제 부담을 고려할 때 기대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향후 반도체 사업 재편이나 글로벌 자본 조달 전략 변화가 발생할 경우 미국 시장 활용 가능성은 다시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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