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용자와의 교섭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 헌법 역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모든 권리에는 경계가 있다.
권리가 사회적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다른 공익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야 한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제시한 '해고자 복직' 요구는 바로 그 경계를 다시 묻는 사례다.
임금 인상이나 근로환경 개선은 현재 근무 중인 조합원의 노동조건과 직접 연결된다. 반면 이미 해고가 확정되고 법적 판단까지 종료된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 특히 법원이 정당한 해고라고 판단한 사례를 다시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올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쟁이 적지 않다.
노동조합은 이를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노사관계 정상화와 화해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노조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 가운데 상당수가 노동운동에 대한 과도한 대응이었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역사적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 이후 일부 공공기관과 기업이 노사 합의를 통해 해고자를 특별 복직시킨 사례가 존재한다. 법적 의무라기보다 사회적 화해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일반적인 원칙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법원은 사실관계와 법률을 바탕으로 판결을 내린다. 물론 사법부의 판단이 언제나 완전무결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치주의 사회에서 최종 판단을 존중하는 것은 사회 운영의 기본 원칙이다. 그 판단이 끝난 뒤 다시 파업과 단체교섭을 통해 결과를 바꾸려 한다면 법원의 권위는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기업의 인사권 역시 중요한 가치다. 누구를 채용하고 어떤 사유로 징계하며 복직 여부를 결정할 것인지는 본질적으로 경영권의 영역에 속한다. 회사가 스스로 판단해 화해 차원에서 복직을 결정하는 것과 파업 압박 속에서 복직을 수용하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자율적 결정이지만 후자는 집단적 압력에 따른 결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형평성이라는 문제도 따라온다. 같은 규정을 위반한 직원 가운데 노조의 지원을 받는 사람은 복직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복직되지 않는다면 조직 구성원들은 어떤 기준을 받아들여야 할까. 징계의 일관성이 흔들리면 조직 규율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해외에서도 노사관계가 성숙한 국가들은 법원의 판단과 단체교섭의 영역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하는 편이다. 독일은 공동결정제도와 산별교섭이 발달했지만 법원이 정당성을 인정한 해고를 노조가 파업을 통해 번복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노조는 해고 이전의 절차적 정당성을 다투거나 노동법원에서 권리를 구제받는 방식에 더 무게를 둔다.
미국 역시 노조의 영향력이 큰 자동차 산업이 존재하지만 부당해고 여부는 대부분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판단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체협약으로 모든 인사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법적 절차와 교섭의 기능을 구분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에는 노사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가 있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와 복직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당시에는 민주화라는 시대적 전환기라는 특수성이 존재했다.
국가와 기업이 노동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특별 복직이 사회적 합의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예외적 상황을 오늘날 일반적인 노사관계의 원칙으로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논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국민 여론이다. 상당수 국민은 임금협상과 해고자 복직 요구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현재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 개선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미 법적 판단이 끝난 인사 문제까지 파업의 요구안에 포함되는 것에는 거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노동권 자체를 부정해서라기보다 단체행동권이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은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제도의 신뢰는 사회적 공감에서 나온다. 정당한 권리 행사와 과도한 요구의 경계가 흐려질 경우 가장 먼저 약해지는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의 신뢰일 수 있다. 노조가 확보해 온 사회적 정당성 역시 이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결국 이번 현대차 파업은 단순히 한 기업의 노사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체교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법원의 확정판결은 어느 정도 존중돼야 하는가, 그리고 노사 화해라는 가치가 법치주의와 어떤 균형을 이뤄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노사관계는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아니다. 기업도 노동자도 결국 같은 조직의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다. 그렇기에 화해도 중요하지만 원칙은 더욱 중요하다. 법원의 판단이 사회적 합의보다 가볍게 취급되는 순간, 노사 모두가 의지해야 할 마지막 기준은 흔들릴 수 있다. 법치와 노동권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유지되어야 할 두 개의 축이다. 이번 논쟁이 그 균형점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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